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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요리는 마법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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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공원은 한산했다. 공원 가운데의 심장숲은 비스듬히 낮아진 햇살을 한몸에 받으며 달콤한 황록색으로 빛났다.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 언저리의 녹색 구릉에서 유모차를 끄는 아주머니 둘이 잡담을 나누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아리사는 곧바로 숲 한가운데로 이어지는 오솔길로 향했다. 늘씬하게 뻗은 마가목의 검은 줄기며 연녹색 포플러의 잘생긴 잎사귀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했다.

문득 무성하던 나무들이 옆으로 갈라지며 빈터가 나왔다. 검은 부엽토가 두툼히 깔린 빈터 한가운데, 조약돌이 줄지어 박혀 둥그스름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아리사는 조약돌 바로 앞까지 다가가 금기를 넘는 수인을 맺은 다음, 폴짝 뛰어들어가 그 속에 웅크리고 있던 이끼 낀 돌상의 앞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해치(解豸). 일어나.

돌상 같은 게 느릿느릿 움직이더니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했다. 자갈이 절그럭대는 소리가 났다. 아리사는 땅에 주저앉아 종이봉투에 든 걸 주섬주섬 끄집어내었다. 달착지근한 냄새에 짐승이 코를 킁킁거렸다.

먹자.아리사는 팥도너츠를 반으로 쪼개 해치의 송곳니 사이로 넣어주었다. 다른 빵들도 챙겨 짐승의 코앞에 놓았다. 해치는 만족스럽게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잔디는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품종이라고들 하지만, 늘푸른나무 하나 없는 심장숲이 겨울에도 이토록 파란 건 다 해치 덕분이었다. 언제부터 이 영물이 여기에 머물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도시가 생겨나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기 훨씬 이전부터 해치는 이곳에서 졸고 있었다. 사람들은 영물을 존중하는 뜻에서 숲을 둥그렇게 에워싼 공원을 만들었다. 종종 초등학생이나 여중생들이 놀러와 해치에게 빵을 먹여 주었다. 어른들도 골치아픈 일이 있으면 찾아와 도너츠 두어 개를 바치고 시비를 가리곤 했다. 그렇게 해치는 도시의 모두에게 친밀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짐승의 목구멍에서 기분좋게 굴굴대는 소리가 났다. 아리사는 상긋 웃었다. 오토는 참 솜씨가 좋아. 그치.

해치의 감긴 눈이 익살스럽게 반쯤 뜨였다. 얼핏 게을러 보이는 자태였건만,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엿보이는 눈동자만큼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지혜로 반짝였다. 오늘- 아리사는- 물어볼 것- 있다. 그렇지- 않나.

그녀의 입가에 걸렸던 미소가 조금 축 처졌다. 잘 아네. 역시.아리사는 종이봉지 속에서 아직 따끈따끈한 비스킷을 꺼내 반으로 쪼갰지만, 먹진 않고 그저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 왜 이렇게 한심할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아줄은 아직 숙련학교 졸업도 안 했는데 벌써 자기 글로 변신 마법도 해내잖아. 해치, 나한텐 재능이 없는 거야? 정말로?

짐승은 느릿느릿 답했다. 씨앗은- - 꽃은- 씨앗- 재능은- 없으니- - 재능- 있다.아리사는 침묵했다. 인간보다 현명한 해치가 저런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보다 높고 복잡한 법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인간의 미래를 볼 수는 있어도, 말해줄 수는 없다. 다가올 미래를 알려 줌으로써 생겨나는 사소한 변화가 곧 그 미래를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팽팽하게 조여진 금기와 규칙의 틈새에 갇힌 채 오로지 확실한 것만을 말한다. 이미 일어난 진실이야말로 가장 명료한 것들 중 하나다. 해치가 시비를 가리는 영물로 이름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해치는 지금 최선을 다해 말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한때 해치를 비롯한 영물어 사전이 편찬된 적도 있었다. 물론 인간의 머릿수에 비해서는 영물이 턱없이 적었기에, 금세 절판되어 헌책방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녀는 볕 받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따스한 해치의 옆구리에 기댔다. 처음 여기에 놀러왔을 때는 머리꼭지를 훨씬 넘어서던 짐승의 등이 어느 새 그녀의 어깻죽지까지 내려와 버렸다. 해치의 온기가 등을 타고 전해져 왔다.

아주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걸 느끼며 그녀는 비로소 과자를 한 입 물었다.

 

 

 

죄송합니다.-_-; 맨날 너무 짧네요.ㄱ-;; 좀더 악착같이 써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