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 11:
진실은 비오는 밤을 가로질러 달리는 불꽃, 아스팔트에 비친 석양, 목구멍을 태우며 넘어가는 피의 맛, 녹슨 쇠를 이어붙인 폭풍의 왼쪽 날개. 넌 무엇이 두려워 떨고 있지? 검은 사슴 같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그녀는 웃었다. 9월의 밤 바람을 등 뒤로 늘어뜨리고 또각, 소리를 내며 어른의 옷을 걸치고 돌아오는 길, 그녀는 내내 내 눈동자 뒤에 숨어 감춤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엿보았다. 그래서 오늘 밤도 느티나무는 느티나무라는 기표를 저버린 채, 매일 밤 이십억 개의 꿈으로부터 스며나와 지구의 심장부에 고인 검은 액체를 떠 마시는 전신전령이었다. 곧 죽어 금빛으로 허공에 떠돌 외로운 메시지들이 부스스 소리를 내며 철모르는 가로등 불빛에 흔들렸다.
이젠 카스탈리아의 샘으로 가는 길조차 잃어버린 걸까? 움찔하며 되묻는 내게- 바보야, 웃어. 고개를 들어 달을 보라구. 넌 자유로워. 내 손을 잡고 함께 달리는 한 언제나 그랬어. 그녀는 하프에 앉은 나비, 현을 울리는 진동, 겨울 하늘에 홀연히 피어나는 쾌속의 구름, 열네 살의 내 눈을 들어올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지구에 두 발을 곧게 디디고 24시간의 속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마음 속의 상냥한 목소리. 그녀가 만지고 듣고 맛보는 손길은 생살을 파고 누비듯 거침이 없어, 오랜만에 그 무엇보다 잔혹한 기쁨을 내게 주었다.
누구도 생짜 그대로의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진실을 물에 적셔 설탕을 입히고 잘 드는 칼로 썰어 문학이라는 이름의 제단에 올려 태울 때, 비로소 모두가 안심하고 맛볼 수 있다. 손끝에 일어난 거스러미를 비틀 때처럼 예민하게 조여오는 통각, 그 아픔 덕분에 나는 가장 나답게 살아 왔다. 누구의 언어도 빌리지 않은 채- 오직 나의 글로써.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하루하루, 다닥다닥 붙은 나날의 시고 쓴 과육, 비바람에 익어 백색으로 영근 달의 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