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

살아가는 이유

호르텐시아 2010. 2. 17. 01:30

원글은 이쪽 (새창열림)

"예전에 hubris님이 쓴 글 중에서, 절망에 빠졌을 때 조금 더 살아봐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아이와, 죽어버리자 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차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는 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험기간이라면서 손으로 쓱쓱 그린 웹툰 만화를 올리는 십대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얘들이 좌절스러운 학창시절을 자살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엄마가 학원을 잘 골라줘서가 아니고, 아빠가 다른 아빠들보다 돈 잘 벌어와서가 아니고, 부모님이 인성교육을 잘 시켜줘서가 아닐 것 같다. 인터넷에 자기가 그린 만화를 올리고 거기에 조횟수와 댓글이 올라가는 걸 일주일 더 보기 위해서는 아닐까. 절망적인 세상, 치열한 경쟁속에서 얘들을 살게 하는 건 자기가 그린 (부모님이 보기엔 시시해뵈는) 창작품이 아닐까 하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다. 그 첫 순간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열네 살 때인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면 죽어야 했다. 사흘 정도 밤낮 없이, 그러나 차려준 밥은 챙겨 먹고 학교 갈 수 있을 정도로, 시나브로 고민하다 결국 답은 못 찾고 털레털레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계절은 가을이라 가지들이 보랏빛으로 매끄러운 가운데 휘영청 빛나는 보름달이 하늘에 박혀 있었다. 멋있었다. 잠시 서서 숨을 내뱉으며 올려다보았다. 문득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이 들었다. 둥글고 둥근 땅 위에 나 혼자 볼록하게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먼 어딘가에 볼록한 무언가가, 은빛으로 예쁘게도 빛나는 무언가가 나를 내려다본다. 그 생각이 재미있어 혼자 웃었다. 문득 볼록한 무언가가 되어 또다른 무언가를 넋을 잃고 쳐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 무한한 경이로 느껴졌다. 고개를 내리고 집을 향하며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이제 죽지 않아도 되었기 떄문에. 살아갈 만한 멋진 이유가 두 손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후 몇 번이고- 셀 수 없이- 죽고프단 생각이 찾아오게 되지만, 그때 발견한 경이로움이 날 지켜 주었다. 적어도 대학에 들어와 1년을 살기 전에 멋대로 죽어버리지 않게끔. 어쩌면 지금까지도 아주 약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