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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을 다쳤을 때

호르텐시아 2010. 3. 17. 02:08


인대를 다칠 때 가장 괴로운 건, 한번 다치면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통념이다. 아는 분 말마따나 인대는 "밧줄"이기 때문에 한번 늘어나면 여간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비단 인대만이 아니다. 한번 손상된 부위는 완전히 낫지 않아 어떻게든 흔적을 남긴다는 그 말- 몸은 꾸준히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낡고 닳고 부서져 간다. 누구도 그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육체라는 말랑한 거푸집 속에 들어 있는 삶 역시, 한때 지녔던 것을 잃어 가는 과정의 연속일 뿐인 걸까?-

가능성이라곤 없는 내리막길. 늘어난 인대는 원하든 원치 않든 자꾸만 내게 그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짜증을 냈고 부루퉁해졌고 왜 빨리 낫지 않느냐고 안달을 하며 침대에서 굴렀다. 인터넷에서 관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찾았고 남자친구에게 그레이스 아나토미를 뒤져 발목과 인대의 상세한 구조를 알아보게 했다. 하지만 맘 속에서 진정 필요로 했던 답은 그게 아니었다.

변할 수 있다고 말해줘. 훨씬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해줘, 나와 당신들의 삶이란 게 단지 낡고 닳고 부서져 가는 과정의 연속이 아니라고 말해줘. 지금 당장 죽어버리면 안되는 이유를 말해줘. 다친 몸이 절대로 예전의 몸처럼 돌아갈 수 없다면, 최소한 부서질 몸을 넘어서는 뭔가를 알려줘. 단 하나라도 괜찮아. 누구라도 좋아. 부탁해. 제발.



마침내 남자친구가 논문을 하나 찾아냈다. 뼈가 굳듯이 인대도,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다친 부분은 더 튼튼해진대요. 아프더라도 조금씩 운동해 준다면 더 강해져요. 그 말을 듣자마자 모든 우울이 사라졌다. 작지만 검증된 증거 한 개. 나아질 수 있다는 말 한 마디. 그걸로 충분했다. 부모님은 행복한 표정으로 더운물에 발을 담그고 발목을 추스리는 딸을 보며 의아해했다. 어젯밤엔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그렇게 통곡을 하고 울더니만 하루만에 갑자기 달라졌어. 알 수가 없네.



... 이건 사실 좀 웃으며 썼다. 요컨대 내게만 절실한 오버액션. 남들이 웃어도 나만은 어쩔 수 없는 그런 부분. 더럽게 진지한 로직. 그럴 때마다, 자신은 남들과 전혀 다른 추동으로 느끼고 움직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