設
중도, 유리 엘리베이터의 미학
호르텐시아
2006. 6. 1. 01:54
시험공부용으로서의 중도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지하 1층엔 매점이 있어 짧은 시간에 저녁을 떄우기 좋고, 공부하다 정신이 산란해지면 자리를 뺏길 위험 없이 오래도록 난간에서 머리를 식힐 수도 있다. 게다가 밤 아홉 시까지는 모든 개가실이 열려 있어 아무 책이나 붙들고 읽어도 된다('문자제국 쇠망약사'는 원서에 지친 어느 한밤 무작정 들고 와 독파한 것이었다). 지난 중간고사 기간엔 마치 집처럼 들락거렸으니.
건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매일 드나들며 느낀 바로, 중앙도서관의 얼개는 상당히 괜찮아 보인다. 백주년기념관처럼 한가운데가 공동인데, 전자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관계로 환기나 통풍이 매우 잘 된다(그 점에서 백주년기념관의 공동은 거의 유명무실하다). 어느 층이든간에 난간에 서면 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한눈에 훝어볼 수 있다. 소리의 반향이 커서 언제 어느 때나 웅성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생동감이 넘쳐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도의 전 구조를 아울러 최고로 꼽고 싶은 것은, 골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유리 엘리베이터이다. 어느 층에 서든 이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도르래가 돌아가며 복잡한 장치들을 연달아 움직일 때마다 나직이 붕- 하고 울리는 기계의 소리는 그 외관만큼이나 아름답다. 필수적 요소와 미적 요소가 교묘하게 가로지르는 점에 서서, 매일같이 열역학 제 1법칙에 충실하게 수천 수백 명의 사람을 실어나르고 있는 것이다.
이녀석의 묘미는 직접 타는 데 있다. 그것도 반드시 올라갈 때가 아니라 내려갈 때여야 한다. 관성의 법칙에 의해 발밑의 중력이 순간 흩어지며 몸이 가볍게 떠오르는 느낌은, 한여름의 미풍만큼이나 상쾌하다. 중도 4층에서 바닥에 도달하는 짧은 순간, 나는 창에 기대 서서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하는 감각을 즐긴다. 꽉 막힌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와는 달리 투명한 창 밖으로 움직이는 풍경은, 나 역시 법칙의 일부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투명함은 상상의 여지도 함께 제공한다. 엘리베이터의 외관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면- 거의 일정한 속도로 고공을 가로지르며 내려오는 자신만이 남는다. 4층에서 아무런 도움 없이 그런 짓을 했다가는 결과는 처참할 텐데(이 경우 가속도 운동이라는 덤이 붙는다), 문이 열리면 어디 한 군데 다치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 걸어나올 수 있는 것이다. 에너지의 흐름은 저 근사한 기계의 몫으로 남겨두고.
물리의 규칙은 단순히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경이로워,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늘 마법처럼 샘솟는 즐거움을 깨우쳐 준다. 그 앞에서 완전히 무감동해질 때까지는 아마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건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매일 드나들며 느낀 바로, 중앙도서관의 얼개는 상당히 괜찮아 보인다. 백주년기념관처럼 한가운데가 공동인데, 전자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관계로 환기나 통풍이 매우 잘 된다(그 점에서 백주년기념관의 공동은 거의 유명무실하다). 어느 층이든간에 난간에 서면 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한눈에 훝어볼 수 있다. 소리의 반향이 커서 언제 어느 때나 웅성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생동감이 넘쳐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도의 전 구조를 아울러 최고로 꼽고 싶은 것은, 골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유리 엘리베이터이다. 어느 층에 서든 이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도르래가 돌아가며 복잡한 장치들을 연달아 움직일 때마다 나직이 붕- 하고 울리는 기계의 소리는 그 외관만큼이나 아름답다. 필수적 요소와 미적 요소가 교묘하게 가로지르는 점에 서서, 매일같이 열역학 제 1법칙에 충실하게 수천 수백 명의 사람을 실어나르고 있는 것이다.
이녀석의 묘미는 직접 타는 데 있다. 그것도 반드시 올라갈 때가 아니라 내려갈 때여야 한다. 관성의 법칙에 의해 발밑의 중력이 순간 흩어지며 몸이 가볍게 떠오르는 느낌은, 한여름의 미풍만큼이나 상쾌하다. 중도 4층에서 바닥에 도달하는 짧은 순간, 나는 창에 기대 서서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하는 감각을 즐긴다. 꽉 막힌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와는 달리 투명한 창 밖으로 움직이는 풍경은, 나 역시 법칙의 일부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투명함은 상상의 여지도 함께 제공한다. 엘리베이터의 외관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면- 거의 일정한 속도로 고공을 가로지르며 내려오는 자신만이 남는다. 4층에서 아무런 도움 없이 그런 짓을 했다가는 결과는 처참할 텐데(이 경우 가속도 운동이라는 덤이 붙는다), 문이 열리면 어디 한 군데 다치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 걸어나올 수 있는 것이다. 에너지의 흐름은 저 근사한 기계의 몫으로 남겨두고.
물리의 규칙은 단순히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경이로워,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늘 마법처럼 샘솟는 즐거움을 깨우쳐 준다. 그 앞에서 완전히 무감동해질 때까지는 아마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