設
가능성을 주는 말 한 마디의 위력
호르텐시아
2006. 6. 25. 22:33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일이다. 나는 어머님의 소개로 수상한 과외를 연결받아 시작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애들을 모아다 학년과 레벨에 맞춰 그룹별로 나누고, 그 그룹을 돌려가며 스파르타식으로 관리하는 개인기업 형식의 과외였다. 두사부일체라 했던가. 두목(...)은 풍채가 당당하고 머리가 벗겨진 50대의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학생의 성적(이 물론 주된 관심사이긴 하지만) 못지않게 학생이 가진 다른 재능들도 탐구해 보고 진로를 점치는 습관을 지니고 계셨다. 자신있는 게 있으면 어디 한번 가져와 보라는 분부에, 나는 그리던 그림과 쓰던 소설을 대충 모아 파일로 만들어 그분께 넘겨드렸다.
파일을 돌려주시면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림은 형체는 곧잘 그리지만 그림 쪽으로 나가기는 좀 무리겠구만. 그보다 글을 써보지. 글에 번개처럼 번쩍 하는 감각이 살아 있네. 작가를 해도 충분히 잘할 수 있겠어."
그분이 정말로 믿을 만한 감식안을 갖추었는지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사실 지금까지도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살면서 처음으로, authority라 불릴 만한 것을 갖춘 어른에게 들은 '평' 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저도 모르게 점점 그림을 그리는 횟수와 열정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가, 지금은 거의 그림이나 만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중학교 졸업 때까지만 해도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은 분명 만화가였는데도. 그에 반비례해 뭔가 끄적거리는 빈도나 관련한 열정은 늘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제는, 전업작가는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계속 글을 쓰면서, 글에 관련된 직업을 하나쯤은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특별히 아껴 주었던 사촌오빠는, 대학 입학할 때 메일 한 통으로 격려의 말을 대신했다. '나는 늘 널 천재나 혹은 그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대학을 졸업할 때는 교수들의 수준과 비슷하게 되도록 노력해라. 물론 한국의 교육환경은 열악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너의 노력이 요구되는 거다.'
물론 작가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당장 이번 소설 창작에서 A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조차 없는데 무슨. 스스로가 보는 자신은 천재도 노력파도 아닌 평범한 학생이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교수의 수준에 이르는 것은 그야말로 요원해 보인다. 저기, 아무래도 잘못 보신 것 같은걸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말 스스로가 nobody라 느껴질 때, 형편없는 지의 절대량이며 실력에 절망하고 있을 때 문득 마음을 돌아보면, 당시에 들었던 그런 말들이 굳건히 버티고 서 있다는 점이다. 저, 그래도 말이지.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해주진 않았을 거 아니야. 손톱만큼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좋은 거 아니겠어. 자, 조금만 더 노력해 보자, 라고 말들이 수줍게 속삭인다. 어쩌면 말한 당사자조차 잊어버렸을지 모를- 보잘것없는 말 몇 조각을 질기게 붙들고 있는 한, 계속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어디선가 꾸준히 생겨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어릴 적 선생님이 해 주신 '~는 ~를 참 잘 하네, 열심히 해서 ~가 되어보렴' 과 비슷한 말 한 마디가 계기가 되어, 정말로 그 길로 나간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흔하진 않아도 때때로 접하는 케이스이다. 설령 비현실적일지라도, 가능성을 품은 말 한 마디는 그렇게 사람의 가슴속에 두고두고 남아 빛을 던져 준다.
혹시 아는가. 당신의 친구나 후배나 혹은 조카나 사촌에게 무심코 던진 한 마디 칭찬이나 격려가 들은 이가 마음에 품고 가는 평생의 말이 될지. 혹독한 비평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우연히 눈에 띈 누군가의 가능성 앞에서 칭찬을 지나치게 아끼지는 말도록 하자. 그 말이 행여 듣는 이의 인생을 결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P.s 물론 저런 말을 하는 입장에 서려면 스스로의 authority를 확충해야 한다는 아주 중요한 선결 조건이 있으니, 노력합세다. (웃는다)
파일을 돌려주시면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림은 형체는 곧잘 그리지만 그림 쪽으로 나가기는 좀 무리겠구만. 그보다 글을 써보지. 글에 번개처럼 번쩍 하는 감각이 살아 있네. 작가를 해도 충분히 잘할 수 있겠어."
그분이 정말로 믿을 만한 감식안을 갖추었는지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사실 지금까지도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살면서 처음으로, authority라 불릴 만한 것을 갖춘 어른에게 들은 '평' 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저도 모르게 점점 그림을 그리는 횟수와 열정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가, 지금은 거의 그림이나 만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중학교 졸업 때까지만 해도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은 분명 만화가였는데도. 그에 반비례해 뭔가 끄적거리는 빈도나 관련한 열정은 늘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제는, 전업작가는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계속 글을 쓰면서, 글에 관련된 직업을 하나쯤은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특별히 아껴 주었던 사촌오빠는, 대학 입학할 때 메일 한 통으로 격려의 말을 대신했다. '나는 늘 널 천재나 혹은 그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대학을 졸업할 때는 교수들의 수준과 비슷하게 되도록 노력해라. 물론 한국의 교육환경은 열악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너의 노력이 요구되는 거다.'
물론 작가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당장 이번 소설 창작에서 A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조차 없는데 무슨. 스스로가 보는 자신은 천재도 노력파도 아닌 평범한 학생이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교수의 수준에 이르는 것은 그야말로 요원해 보인다. 저기, 아무래도 잘못 보신 것 같은걸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말 스스로가 nobody라 느껴질 때, 형편없는 지의 절대량이며 실력에 절망하고 있을 때 문득 마음을 돌아보면, 당시에 들었던 그런 말들이 굳건히 버티고 서 있다는 점이다. 저, 그래도 말이지.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해주진 않았을 거 아니야. 손톱만큼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좋은 거 아니겠어. 자, 조금만 더 노력해 보자, 라고 말들이 수줍게 속삭인다. 어쩌면 말한 당사자조차 잊어버렸을지 모를- 보잘것없는 말 몇 조각을 질기게 붙들고 있는 한, 계속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어디선가 꾸준히 생겨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어릴 적 선생님이 해 주신 '~는 ~를 참 잘 하네, 열심히 해서 ~가 되어보렴' 과 비슷한 말 한 마디가 계기가 되어, 정말로 그 길로 나간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흔하진 않아도 때때로 접하는 케이스이다. 설령 비현실적일지라도, 가능성을 품은 말 한 마디는 그렇게 사람의 가슴속에 두고두고 남아 빛을 던져 준다.
혹시 아는가. 당신의 친구나 후배나 혹은 조카나 사촌에게 무심코 던진 한 마디 칭찬이나 격려가 들은 이가 마음에 품고 가는 평생의 말이 될지. 혹독한 비평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우연히 눈에 띈 누군가의 가능성 앞에서 칭찬을 지나치게 아끼지는 말도록 하자. 그 말이 행여 듣는 이의 인생을 결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P.s 물론 저런 말을 하는 입장에 서려면 스스로의 authority를 확충해야 한다는 아주 중요한 선결 조건이 있으니, 노력합세다.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