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많이 벌면 하고 싶은 것

호르텐시아 2005. 11. 20. 02:57


솔직히 지금 나를 볼 떄, 지금 나의 적성을 볼 때 이담에 커서(?) 돈을 많이 벌 인생을 살리라 생각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많이 벌면- 하고 싶은 게,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두 가지가 있다.


- 성매매없는세상 '이룸' 의 정기적 후원자가 된다.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정기적으로 매달 돈이 들어온다면, 누군가를 돕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여성주의 학회에 몸담았던 이후로 줄곧 마음에 두었던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기로 마음먹으면 애초에 구체적인 게 좋은 법.
후원단체야 물색해 보면 여러 곳이 있겠지만- 어쩐지 마음에 닿았다. 지금도 누군가는 갇힌 창살 뒤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신음하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직업소개소에 속아 몇천만원에 팔려 빚을 갚기 위해 매일 낯모르는, 사랑하지 않는, 나를 사람이 아닌 섹스 기계로 보는, 남자와 매일 수십 번씩 섹스해야 한다면. 같은 여자로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비참하고 슬픈 일이다.
성매매를 옹호하며 이런 단체의 활동을 욕하는 남자들은 어째서 압구정이나 청담동 길거리에서 비싼 옷을 걸치고 원나잇하는 여자들만 떠올리는 걸까. 그렇게 욕구가 급한가- 아니 그들은 대체 무슨 상황에 처해 있길래 몸의 욕구를 머리가 이기지 못한다는 걸까. 성매매하는 여성이 섹스로 밥 벌어먹고 살 인권을, 그 사람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아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결국 뒤에서 창녀는 더럽다느니, 등 온갖 욕설로 씹어댈 건 또 누군가. 바로 그 사람들 아닌가. 

누군가가 아파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 거리를 하나 사서 요리를 사랑하는 아마추어 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들로 꽉 채운다.

자, 이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이 아니라 거의 떼돈을 벌어야 가능한 일이겠다.-_-
솔직히 이것은 이번 학기에 한 생각이다. 거의 매일 아침에 나가 밤 아홉시 열시에 들어오곤 하니 학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다 해결한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싸게 먹어도 매일 5-6000원씩 깨진다. 아무리 싸봤자 한 끼 제대로 먹으려면 학관서도 2000원은 넘으니 말이다.
물론 더 싸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삼각김밥에 샌드위치. 마실 것은 생략. 오, 좋다. 돈이 남아도네(남아도냐?). 그러나... 매일매일 한달 내내 두달 내내 밖에서 끼니를 때워보자. 끝내는 자신의 혀를 불신하게 될 것이니. 질리는 건 둘째치고, 당장 맛이 좋다(즉 짭짤하고 달착지근하고 자극적이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일단 몸이 안다. 어딘가 찌부드드하고 껄적지근한 느낌이 위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기분. 오늘도 정크 푸드를 드셨군요. 모르겠다고? 쯔쯔. 1년만 더 그렇게 사먹으며 다녀 봐라.
그러나 음식으로 장사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어디까지나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고객의 건강까지 챙길 여유가 어디 있는가. 잘 팔리면 장땡이다. 그런고로 하여, 학교 주변의 식당가는 거대기업의 이윤에 종사하는 양식 위주의 체인점(한스델리, 소렌토, 파스타리오, 놀부보쌈, 맥도날드 등등등)과 오로지 싸게싸게 승부하는 조미료 대박의 기사식당형, 거의 그 둘로 양분되어 있다. 아우, 질렸다. 남들은 어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질렸다. 예전에는 밥집이라면 코웃음을 쳤지만 요새는 차라리 한식이 땡긴다. 그나마 덜 지지고 볶는 슬로푸드니까.  
이런 현실에서, '신선한 재료로 자부심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 만드는 소박하고 단순한 요리'는 가정집의 식탁 위에서나 찾을 수 있는 귀중품이다. 다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그리고 먹어야 하는데 먹을 게 죄다 그런 식이니 먹을 수밖에 없다. 슬픈 현실이다.

결국 끝없는 양적 성장이 건강을 좌우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이윤을 위해 끝없는 경쟁을 추구한다. 위에서 말한 밥집구도의 이분화도 어쩔 수 없는 경쟁의 결과이다. 그래서 아예 비싸고 고급스럽게(그렇다고 과연 고객의 건강까지 배려할지는 절대의문) 가든지, 아니면 손님을 끌기 위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인공의 맛에 의존하든지. 이런 분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무리 자신감과 긍지를 가지고 요식업계에 뛰어든 사람이라도 '신선한 재료로 자부심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 만드는 소박하고 단순한 요리'로는 절대 생존불가능하다는 것을 꺠닫게 될 것이다.

그럼 차라리 경쟁의 폭을 대폭 낮추면 어떨까. 아예 목 좋은 데에 거리를 하나 산다. 개인소유로. 그리고, 요리를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건강하고 맛난 음식을 먹여주고 자신만의 요리를 창작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아마추어 요리사들에게만 개업을 허가한다(돈이 없으면 좀 싸게 줄 수도 있다). 그럼 조그만 개인의 독창적인 식당이 뿅뿅 하나둘씩 생겨나 거리를 꽉 채운다. 애초에 거대기업 체인점이 들어와 횡포를 부릴 수 없도록 차단한다. 억만금을 준대도 난 안 넘길거다. 그 거리를 사들여서 내가 바라는 건 돈이 아니니까.

그럼 전체적으로 비슷한 입장에서 경쟁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길을 지나가다가, 여기저기 둘러보고, 취향에 맞는 가게를 선택하면 된다. 사실 아직 안 해봐서 진행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이 정말로 인스턴트의 맛에 죄다 길들여져서 하나같이 파리를 날릴지도 모른다. 그럼 아마추어 식당주들은 비정한 현실을 깨닫고 인공의 맛이 넘쳐나는 불량식사로 돌아서겠지. 그러나 어쨌든 현시점에서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내심 지금의 나와 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면, 역시 그것도 또 모르는 일이다. 혹시 서울의 명물 거리로 떠오를지 누가 알겠는가. 참, 가게 확장이나 체인점은 절대 허용 안한다. 딴데 목 좋은 데 사서 개인적으로 하라고 등 떠밀 테니. 어디까지나 그 거리는, 수많은 개인들이 만드는 다채롭고 독창적이며 건강한 식사의 보금자리로 남아줘야 하니까.


대강 돈을 벌면 하고 싶은 건 이 정도다. 아, 예술가의 후원자가 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어쩐지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사실 저 식당 말고 이룸과 더불어 꿈이 하나 더 있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뭐였을까?
그치만.... 돈이란 모으면 모을수록 노랭이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쓸 데가 늘어나서 그런 것일까. 어쨌든 잔고 100만원은 절대로 마지노선이니 다음달엔 20만원을 넣지 않으면 안된다, 고 되새기는 자신에게 한숨이 나온다.

그치만, 나중에 정말 학생신분을 벗어나 경제적으로 오롯이 먹고 살 수 있게 되면 절대로 노랭이는 되지 말아야지. 꼭 하고 싶은 걸 할 거야. 위에 써 놓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