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입니까

호르텐시아 2006. 11. 26. 15:06
몇 안 되는 지인과 대화하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에 관한 것으로 주제가 흘렀다. 마음을 터놓을 만한 사람이 없어 외롭다, 라는 말은 어디서나 조금만 귀기울이면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마음을 터놓을 만한 사람'인가. 흔히 듣고 흔히 내뱉는 말이기에 생각하면 외려 모호하다.

일단 머리를 굴려, 네 가지 요건으로 정의한 결과:

1. 이 사람이 나를 배신할 확률이 매우 적다. 즉, 외부든 내부든 상대에게 있어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작용하지 않는 이상(널 배신하지 않으면 내가 패망한다/죽는다) 자진해서 배신할 확률은 거의 없다.

2. 진지한 이야기 중에서도 인간관계나 세상살이의 네거티브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을 수 있다.

3. 이 관계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즉, 사소한 계기로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다.

4. 내가 민폐를 끼치는 '뻘짓'을 좀 해도 그냥저냥 이해해 줄(혹은 이해해 줄 거라는 확신) 정도로 긴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 네 가지 요건이 충족될 때, 비로소 '가까운 지인' 혹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 이라는 라벨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취미나 취향이 비슷하다' 나 '행동반경 혹은 공유하는 공간이 비슷하다' 는. 요건이라기보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게끔 뒷받침하는 요소라고 본다. '당신과 내가 비슷하다' 역시 마찬가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조건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다' 는 조건을 하위 집합으로 포함하되(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툭 터놓을 수 있겠는가? *-_-*

1번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완전 전제 조건, 이다. '저새끼 배신할거야'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드는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을 바보는 없다. 특히 이해관계가 얽힐 경우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아니고서도 사람을 배신할 수 있다. 사회에 나가면 사람을 쉽사리 믿을 수 없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여기서 일축.

2번은 엘라 휠러 윌콕스의 시에도 잘 드러나 있듯이, 사람들이 내심 두려워하는 요소이다. 내가 안 좋은 얘기나 부정적인 얘기를 해서 이 사람에게 이미지를 망치지는 않을까. 혹시나 푸념하는 것으로 들리지는 않을까. 그러다 엄한 인간관계 날리면 정말로 실수 중의 실수요, 뻘짓의 뻘짓이다. 적어도 내 눈 앞의 상대는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확신이 설 때, 사람은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할 엄두를 낸다.


3번은 개인적인 케이스에도 해당되는데- 이곳, 펜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기 힘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워낙 인터내셔널이 많다 보니 수시로 왔다가 떠나고, 왔다가 떠난다. 그러나 그중에서 연락이 계속 이어지는 케이스는 드물다. 평소에 인사하고 알고 음식을 나눠먹고 지내도, 떠나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은 친해도, 결국 나중엔 잊혀지게 된다는 생각은 마음을 터놓기 힘들게 한다. 사실 장기적인 관계에 대한 확신은 2번의 믿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내가 지금은 네거티브한 얘기를 할 수 있어도 차후 그 사람이 나를 쌩깐다면 결국 말짱 헛일이 아니겠는가.

4번 역시 2번과 비슷한 맥락이다. 가령 이런 경우를 상정해 보았다. 같은 학교 출신의 제법 절친한 회사 선후배가 앉아 술을 마신다고 치자. 학연과 지연의 영향을 받는 한국의 경쟁 사회에서, 둘은 서로 배신할 확률이 상당히 낮다고 생각된다. 내 편 네 편 가늠하기 힘든 세상에서 같은 학연을 공유한다는 건 중요한 조건이다. 둘이 술을 마시면서, 회사 돌아가는 사정이나 인간관계에 대해 뒷담화를 깔 수 있다. 거기다 이 회사에 다니는 한 꽤나 오래 얼굴 볼 사이다. 딱히 한 쪽이 이직을 생각하지 않는 한(이직을 생각해도 비슷한 계열이라면 언젠가 또다시 얼굴 볼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뻘짓'을 해도 마냥 이해해 줄 수 있는 상대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대개의 선후배는 서열관계다. 선배는 후배를 이끌고 후배는 선배를 따른다는 암묵적인 룰 아래서 관계는 성립한다. 후배는 선배를 믿으면서도 늘 누가 되지는 않나 주의할 것이고, 선배 역시 이 후배에게 약점이나 흠집 잡히지 않도록 체면 관리를 할 것이다. 물론 어지간히 친하다면 술주정 정도는 받아줄 수 있겠지만, 사회 생활을 하는 입장에서는 비교적 민폐의 선이란 게 확실하게 그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대개 인간관계 중 사회적 역할로 맺어진 관계가 4번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친한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의지할 수는 있지만, 선생님이 친구와는 엄연히 다른 것처럼.

살면서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을, 과연 몇이나 만날 수 있을까. 때로 정말 궁금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의 전선에 뛰어들어도, 이런 만남이 가능할까. 그렇기에 사람들이 고등학교며 대학교며, 학창 시절에 친구며 동기를 많이 사귀어 놓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좋고 싫음의 기준은 있지만 아직 직접적인 이해 관계가 도래하지 않은 그 시절에.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습니다. 과연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