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たし
私
호르텐시아
2005. 9. 14. 01:21
가십보다 말 속에 담긴 진실의 분량이 훨씬 많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현실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사물에 덧입힌 꿈의 색이 바래고 온기를 잃은 탓에, 이제 벽돌은 벽돌, 회양목은 회양목, 새벽은 새벽일 뿐이다. 심상을 끌어내려 해도 어느 샌가 혀가 굳은 듯 말을 잊었다.
단지 다른 사람이 나를 높이 사면, 사랑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눈을 크게 뜨고 삶을 예의 주시하던 기백은 그것이 단지 치기였더래도 좋다. 이제 나는 겨우 돌아서서 그렇게 버리고 싶던 시절을 되짚으며 추억한다. 좀더 어렸던 나를, 전의로 충만했던 그녀를, 어른인 척 하면서 절실함을 비웃는, 다른 사람에게 바쳐진 현재의 나가 아니라, 오로지 내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ㅡ 다른 것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외치는 이기를 위해.
우리는 늘 너무 많은 시간을 타인과 상황에 팔아 넘기고 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증명하지 못하는 삶은 단어의 함의 이상으로 참담하다.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삶은 어쨌든 녹록치 않다.
내면에서 문득문득 떠올랐다 사라지는 감정과 기억은, 어디론가 모래처럼 빠져나가 버리는 걸까. 그 짧은 순간에 우리의 진실한 자아가 머무는 걸까. 단지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사고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관찰을 멈추지 않는다면 붙들 수 있을까, 찰나의 자신을. 자아 역시 덧입을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나는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다. 나로 있고 싶다. 나 자신으로서, 타는 듯한 독을 매 순간순간 혈류에 간직하며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공자를 만나면, 공자를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단지 다른 사람이 나를 높이 사면, 사랑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눈을 크게 뜨고 삶을 예의 주시하던 기백은 그것이 단지 치기였더래도 좋다. 이제 나는 겨우 돌아서서 그렇게 버리고 싶던 시절을 되짚으며 추억한다. 좀더 어렸던 나를, 전의로 충만했던 그녀를, 어른인 척 하면서 절실함을 비웃는, 다른 사람에게 바쳐진 현재의 나가 아니라, 오로지 내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ㅡ 다른 것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외치는 이기를 위해.
우리는 늘 너무 많은 시간을 타인과 상황에 팔아 넘기고 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증명하지 못하는 삶은 단어의 함의 이상으로 참담하다.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삶은 어쨌든 녹록치 않다.
내면에서 문득문득 떠올랐다 사라지는 감정과 기억은, 어디론가 모래처럼 빠져나가 버리는 걸까. 그 짧은 순간에 우리의 진실한 자아가 머무는 걸까. 단지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사고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관찰을 멈추지 않는다면 붙들 수 있을까, 찰나의 자신을. 자아 역시 덧입을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나는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다. 나로 있고 싶다. 나 자신으로서, 타는 듯한 독을 매 순간순간 혈류에 간직하며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공자를 만나면, 공자를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