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生活

간밤에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표값은 순수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치렀다. 혼자 가는 여행. 위험하다는 것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실은 두렵지 않은 게 아니다. 다만 여기서 머뭇거리면, 평생 혼자서는 여행을 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모든 순간은 꼭 한 번 찾아온다. 그 순간을 저버리면 영혼이 시든다.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을 뿐이다.
어쩐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열에 들뜬 듯 가벼워, 추위조차 눈부셨다. 도서관에 들어가는 대신 벤치에 앉아, 초콜릿 밀크를 따서 프랭클린 동상에 건배를 했다. 책을 펼치자 알파벳의 새까만 자모가 눈을 찔러왔다.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바라본 하늘은 이미 겨울의 빛으로 푸르렀다. 현존하는 모든 추억을 앞질러 달리는 가장 선명한 파란색. 가슴이 뜨거웠다.
홀로 있는 시간은 애틋하다. 사무치도록. 견디지 못하고 마음이 시나브로 달아난다.
정적인 루시의 우아함과 오딜의 야생성. 케이트가 지닌 아르카익의 미소, 우유와 피, 자애와 폭력. 그리스 비극처럼 운명 앞에 파멸하는 인간의 의지. 이런저런 원형과 심상이 행간을 비추고, 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내부에 감춰져 있을 어떤 종류의 보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쥴은 루시에게 말한다. "He's not the sort that runs after someone passing in the street. What he's mad about, what he worships, is character, and he dosen't go for sensuality in itself. Lina, with the facade she puts up, wasn't a character: he turned away from her instinctively. But you're one, Lucie. So are Gertrude and Odile. ...Direct personalities always see the other person as a whole."
타는 듯한 기쁨과 공포를 내장 어딘가에 품고, 읽기 어려운 책 한 권을 손에 쥔 채, 그저 그대를 떠올렸다. 눈빛과 손끝과 말투에 걸려 보일 듯 말 듯 내비칠 본질을 상상했다. 내 목소리를 듣고 있었을 당신을, 혹은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을 나를. 마악 붙인 겻불 같은 감정이 순식간에 타들어가ㅡ 외마디 두려움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재작년에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번 꿈틀거리는 마음 앞에 던져 본다. 살아 있는가? 그렇다면, 생활하고 있는가?
나는, 대체 무얼 빌미로 살아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