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7 미술수업- 생전 처음 그려본 누드 크로키
무려 일주일도 더 전의 그림들을 지금에야 올린다.-_-; 그 당일날 그만 목탄화지를 전부 써버렸다. 처음 받아 왔을 때 약 8-90장 정도 남아 있었고 2주차에 30장 가량 쓴 걸 생각하면, 근 60장을 하루에 다 쓴 셈이다. 팔도 아프지만 가져갈 걸 추리는 데 오래 걸렸다. 분량을 1/3로 줄인 다음 부엌에 늘어놓고 Fixative를 세 번씩 뿌려 주니(목탄이나 파스텔 같은 medium은 금방 지워지므로 고정액이 필요하다), 손아귀가 저렸다. 그러고 나니 이제 만사가 귀찮아져서, 착착 접어 날짜 적고 클립으로 끼워 포트폴리오에 넣어버렸던 것이다.
그렇다. 그날 그렸던 건 누드 크로키. 문 앞의 종이에 'Model in Session- don't bother!' 라고 적혀 있어 설마 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웬 흑인 여성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황할 새도 없이 이젤을 놓고 자리를 잡고 나니 바로 시작되었다 OTL medium은 언제나 그렇듯이 Newsprint에 vine charcole.

30초 드로잉. 종이 바꿔 끼우느라 정신없었다.; 거기다 모델은 휘칵 움직여 버리고! :@

역시 30초 드로잉. 선이 오픈되어 있다. 의자 위에 무릎을 올리고 구부린 '형태'만을 잡아냈다.

이것은 1분 드로잉. 조금 여유가 생기자 발바닥에 ground가 생겨난 걸 알 수 있다. 선의 강약(Line weight라고 했다)도 생겼다. 어깨 쪽의 잡선은 머리카락이다.
직업모델인 듯, 능숙하게 아름다운 포즈를 취했다. 미리 가운도 준비해 놓았고, 춥다고 온풍기를 틀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흑인의 조금 마른 듯한 몸매는 어딘가 우수가 느껴진다. 팔다리도 선도 가늘어서 품위가 있었다. 덕분에 좀 눈에 익자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릴 맛이 난달까.

2분 드로잉. 발목에 걸리는 하중의 긴장감을, 라인을 두껍게 넣어 표현할 수 있다.

역시 2분 드로잉. 하중은 오른발에 실려 있다. 상대적으로 하중 없이 뒤로 처진 왼발은 가볍게 오픈시켰다. 선의 강약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방향도 표현할 수 있다.

15분 드로잉. 등에 숨겨진 근육에 중점을 두었다. 뿌연 건 선이 틀려서 손으로 문지른 자국이다. 선생님은 거듭 거듭 그림을 "fresh"하게 만들 걸 요구했다. 손을 멈추지 말고, 계속 지우면서, 겉보기와 다른 부분을 고치라는 뜻이다. 미묘하게 기울어진 등의 근육과 견갑골, 비어져 나온 옆구리와 하중으로 눌린 엉덩이의 살이 보인다.
새삼 배운 건, 머리가 몸 전체의 중심 및 propotion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림으로 표현할 땐 어깨 위에 얹혀 있는 둥그런 물체, 혹은 종종 육신을 잃어버린 대갈치기(...일단은 전문용어라고 해두자) 취급을 받아도; 역시 인간은 척추동물이고 그 척추의 한쪽 끄트머리가 바로 머리다. 따라서 머리의 위치는 전체 몸을 지탱하는 중심선을 거의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비율도 중요하다. 머리란 건 생각보다 크다고! 왜화(...)의 8등신 미녀(...)에 단련된 손은 자꾸만 녀석을 축소시켜 그리고, 덕분에 계속 지적당했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 medium을 바꾸었다. 이번 것은 CHA-KOLE. 대문자 K를 증명이라도 하듯, 딱딱하고 새까만 게 아주 성품이 까칠할 것 같은 목탄이었다. 문질렀을 때 지워지는 수준도, 포도 목탄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

...새삼 깨달았다. 이 CHAKOLE...
정녕 간지아이템이로구나. 어쩜 아까하고 그림에서 풍기는 간지가... 차원이 다른데?ㄱ- 같은 15분 드로잉이건만;; 잉크가 없어 하이테크로 그려간 제스쳐가 있는데, 그건 차마 눈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다.-_-;; 역시 하이테크는 글씨용이야. 여전히 선생님은 전체적인 형태 및 그림자와 하중에 따른 선의 강약을 강조했다.

15분 드로잉. 치명적인 왼손삐꾸마저 가려줄 뻔한 챠콜의 간지.
그리고 언제나처럼 마지막에 등장하는 오늘의 주인공....

45분 드로잉. ...꿈에 나올까 두렵다.ㄱ-
그림자와 무게, 실리는 하중을 고려해 웨이트를 넣었다. (처음에 윤곽선만 넣었을 땐 선생님이 갸웃갸웃하면서 "You made her... too long & linky" 라고 했다. 그때 나는 봤다. 모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 걸-ㅂ- 푸하하) 머리도 사이즈가 작아서 중간에 미친 듯이 문질러 지우고 불렸다. 일단 무게감을 넣고 나니 선생님 만족'ㅂ' 다만, 분명 하중의 일부를 담당해야 할 왼발 끝이 마무리가 덜 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도 아주 기초적인 원근은 적용된다. 멀리 있는 선은 흐리게.
정말 살면서 이토록 많이 빨리 그려본 적 처음이었다.-_-; 폭풍 같은 토요일이었다. 그래도 보람은 있었네. 조만간 그저께의 수업도 업로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