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Penn

핑계, 그 후

호르텐시아 2007. 4. 16. 10:17
네. 돌아왔습니다. 사실 저 분노포스팅의 가장 큰 원인은 미술 수업 때문이었습니다.


...후유에겐 고질적인 병이 있어요. 말하자면 새벽형 인간 증후군.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돌아갈 때가 된다고 생각하니 슬슬 태엽이 풀려서, 3월 내내-_-;;;; 아침 9시에 시작하는 미술 수업에 지각을 했습니다. 바로 지난 시간엔 지각한데다 실라버스를 잘못 읽어서 준비해가야 할 파이널 과제 프레젠테이션도 제대로 못했구요. 크윽. 뒤늦게 발견한 중간고사 포트폴리오 성적표엔, "자네의 가장 큰 문제는 지각이네" 라고 써 있었죠. 그리고 지각점수가...! 부끄러워서 차마 말 못 하겠어요. 그래서 순간 각성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잘못했다, 그건 내가 게을러서 그런거다, 하지만 앞으로는 잘할 수 있으니 한번만 기회를 달라, 하고 주저리주저리 장문의 메일을 써서 보냈는데... 답장은 달랑 한 줄이더군요. "Show me."

...와.
그,그래. 까짓거 보여주면 되잖아. 너무해. 신경 안쓰려 했지만 마음에 조금... 스크래치 났습니다.

목요일은 세액공제. 집에 부탁해 팩스로 받은 W-2 폼을 옆에 끼고 CINTAX를 작성해 프린트하고, 오피스에 내려가 어드바이스를 받았습니다. 22.54달러뿐이지만 일단 받을 건 돌려받아야죠. 헌데 제가 작성한 건 연방정부용 뿐이라더군요. 주정부용은 따로 있답니다. 이미 프린트가 고장나서 도서관을 두어번 왔다갔다한지라 그건 나중에. 그리고 큰 종이에 두 장 파이널 초안을 잡고, 스케치북에 여섯 장 정도 디테일한 부분을 추가로 작성. 그리고 오후 네 시의 조명 인테리어 드로잉을 끝내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후 친구가 참석하는 관현악 연주를 감상했다, 12시까지 뒤풀이자리에서 놀다 들어와서 씻고 두시 반까지 중간고사 페이퍼를 손봤습니다.

정신차려보니 금요일 아침 8시네요. 일단 일어나서 씻고 옷을 꿰어입고 도서관에 가서 주정부용 택스 폼을 뽑아서 다시 작성하고(할 게 뭐가 그리 많은지) 서류봉투에 넣어 봉했습니다. 바로 일할 시간이 돼서 아침은 관두고 12시까지 일한 다음에 40번가 우체국에 가서 택스 리턴을 완료하고, 돌아와서 도서관 어시스턴트 파티에서 피자로 점심을 때웠습니다. 1시에 아키올로지 수업에 가서 3시간 동안 서서 쓰레기를 닦고 다시 22번가에 내일 쓸 챠콜을 사러 갔습니다. 한 11블록 되는데, 지하철을 탈까 했는데 돈이 들어서 관두고 그냥 걸어갔다 왔어요.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서 눈물이 다 났습니다. 돌아와서 한 시간 가량 쉬고, 아프리카의 여왕을 20페이지 정도 읽은 후 오후 11시의 조명 인테리어 드로잉을 끝냈습니다.

할 때는 정신없이 빡빡했는데 하나씩 적어놓고 보니까 얼마 안 되는 것 같아서 슬픕니다. 능력부족인걸까...
그래요 120프로라고 그래놓고는. OTL

문제의 토요일.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서 8시에 수업에 도착했습니다. 선생님 오기 전에 미리 이젤도 셋해두고 판도 올렸어요. 그치만 선생님은... 대학원생이라, 파이널 크리틱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_-;; 숙제 열심히 했는데 봐주지도 않고, 수업 끝나는 4시까지 내내 딱 한번 와서 보고는 "great start" 한 마디만 하더라구요. 다른 학생들은 이것저것 지적도 해줬는데... 아니, show me라면서 자기가 안보면 어떡해 ;ㅁ; 덕분에 마음에 좀더 스크래치가 났지만 일단 참고 남아서 한 시간 더 그렸어요. 30시간이 기본투자인데 한 40시간 투자해 보기로 했슴다. 봐주지 않겠다면 작품의 퀄리티로 보여줄 수밖에 없잖아요. 흑.

지친 몸을 끌고 터덜터덜 집에 와서 일단 잤습니다. 배가 고파서 깼어요. 계란이라도 지져 먹을까 하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응? 없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금요일 오후에 고추장에 밥비벼 계란 얹어 먹고, 고추장과 계란을 그냥 테이블 위에 두고 왔던 것입니다.  재니스가 또 남자애들 불러 파티를 한다고 온 부엌을 엎어 놓았거든요. - _- 나가보니 고추장만 덜렁 있고... 내 계란이.

내 계란.
...재니스 이년. 용서하지 않겠다.

찬장에 먹을만한 게... 6개월째 접어드는 인스턴트 수프밖에 없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더운물에 타서 한술 떴는데 가래맛이 났어요(...)
배고파서 일단 다 먹었습니다. 아직 한 봉지 더 있어요. 요새 잔고가 생각보다 부족해져서 이제 5월까진 함부로 돈을 쓰면 안 되지 말입니다. 비프 저키 안녕...



파이널 과제는... 40인치에 2미터짜리 종이에 챠콜로 자화상 ㄱ- 을 그리는 것입니다. 배경은 자유. 그날 머리도 대충 묶었고 옷도 부스스한데다, 광원이 발치에 있기 때문에 이건 뭐 거의 호러입니다... 찍어서 올리면 시집 다갈 것 같은 느낌.-_-;;

영문과 파이널은 10페이지짜리 페이퍼인데, 참고자료로 써야 할 아티클이 여섯 개 됩니다. 기한은 5월 1일까지인데, 제 영어실력을 생각하면 ㄱ- 원래 기한이었던 4월 26일까지 초안을 낸 후 다른 사람보다 한번 더 리바이징을 받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일본어는... 10페이지짜리 그림동화를 완성할 게 있고, 동화책 프레젠테이션이 있고, 최후의 아키올로지는 아직도 열세 개 남았고, 그 외에 옷을 환불하거나 DHL을 알아보거나...하는 사소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시즌이 시즌인지라 닥쳐온 A불안 증후군 때문에 머리가 좀 아픕니다만... ;ㅅ; 무시하고 해야 능률도 오르겠죠.

그리고 모자란 돈을 어떻게든 확충하기 위해 주당 10시간에서 20시간으로 일을 늘렸어요.(...) 간식도 앞으로 다 끊기로 했고 ㄱ- 하지만 5월에 미국에서 미아가 되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말입니다...

문득 생각한 건데... 왜 이렇게 진척도 안 되고 게으른가 싶었더니, 그게 다 방에서 하는 거라서 그런가 봐요. 그림도 방에서 그려야 하고 페이퍼도 결국 방에 앉아서 작성하는 거니까... 영어라서 꿈적꿈적하다 보면 시간은 엄청 걸리고. 어쨌든... 모든 일을 잘 완수하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기를. 귀국해서부터가 이제 시작이긴 하지만 일단 닥친 불이 급하군요 ;ㅅ; 그냥 불만 끄고 볼 게 아니라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두고 싶습니다. 으윽. 그럼 달려야지요. 달리는 수밖에.


*방금 온라인 뱅킹으로 보니 저번 주 월급이 들어왔네요. 조금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