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내처 그림을 그리는 심사

호르텐시아 2007. 8. 5. 14:15
이 글은 아직 쓰지도 않은 바르셀로나 여행기의 네타를 포함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의 일이다. 둘째날에 디카 배터리가 마침내 다 떨어졌다. 배터리 충전기는 아직 오지 않은 짐 속에 있었다. 자외선 차단제나 갈아입을 옷이 없는 건 둘째치고라도, 여행지에 왔는데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니, 비극이었다. 게다가 가우디의 건축물은 하루를 바쳐 오롯이 순례하기로 작정하고 그 날로 전부 미뤄 놓았단 말이다. 시간이 가고 있었다, 째깍째깍.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이럴 때 뭘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일회용 카메라다. 일회용 카메라를 구입해서 찍은 후 나중에 현상하면 된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저 생각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두 번째 기내식까지 먹고 나서야 떠올랐다는 것이겠다. 그럼 그때의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대체 뭘 한 것일까.

호스텔 주인에게 종이를 네 장 달라고 해서 그걸 두 번 접었다. 앞뒤로 네 개씩, 도합 서른 두 장의 네모칸이 생겨났다. 그걸 들고, 돌아다니며, 그렸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사진기가 없으니까 그린다니, 지금 돌이켜보면 참 맛이 간 발상이다 싶지만 그땐 그걸 의식할 겨를조차 없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한 손엔 하이테크, 한 손엔 종이를 움켜쥐고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카탈루냐 미술관, 까사 밀라를 샅샅이 스케치했다. 연필로도 그리고 볼펜으로도 그렸으며, 연필 선 위에 펜선을 덧대기도 했다. 사람들이 종종 멈춰서서 쳐다보기도 하고, 웃으면서 지나갔다. 성당의 가장 높은 구름다리 위에서 집어삼킬 것 같은 눈을 하고 미친 듯이 펜을 놀리는 꼬질꼬질한 동양인 여자애. 헛웃음이 나오는 풍경이긴 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어찌 그림이 사진을 당하겠는가.

그렇게 절박하게 뭔가를 그린 적이 예전엔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그 순간 그 장소에서, 그 날의 햇빛 아래 내가 바라보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란 불가능했다.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발버둥치는 심사, 어릴 적에 생애 한 번은 보고 싶다고 생각한 꿈의 아주 작은 편린만을 베껴 그릴 수밖에 없는 심사는 모 소설에서처럼 뿌넝숴(不能設), 말로 다할 수 없는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그 스케치는 기록 이상의 것이 되었다. 구엘 공원의 첨탑에서는 차가운 타일의 촉감과 흐린 풍경이, 평행이 맞지 않아 비뚤어진 십자가에서는 고공에서 불던 무서운 바람과 열기로 달아오르던 살갖이, 카사 밀라의 정문에서는 시퍼렇게 가라앉은 거리 풍경에 달처럼 둥글던 빨간 신호등이 연이어 떠올랐다. 스케치 실력만 놓고 보면 학생의 취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허나 내겐 당시의 순간을 증거하는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2007년 3월 5일, 바르셀로나에서 살아 숨쉬며 존재하고 있었다는 증거 말이다. 매 순간순간 오롯이 유일하다는 삶을, 부스러기나마 붙잡아 보려던 헛된 (혹은 사람다운) 욕망의 표현 말이다. 가질 수 없는 걸 어째서 가지려 들었냐고 비웃는다면 비웃어도 좋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어리석으니.


간밤에 문득 미국에서 부친 포트폴리오를 뜯었다. 몇 번이고 앞뒤로 넘겼지만 스케치는 찾을 수 없었다. 그때, 구깃구깃해진 종이를 고이 챙겨 와서 미술과제에 섞어 함께 냈었다. 그걸로 하루 결석한 중간평가가 보충되었다. 최종평가를 할 때도 바르셀로나 스케치는 스케치북과 수첩과 함께 포트폴리오에 들어 있었다. 두 개를 냈는데 돌아온 건 하나였다. 학기 초부터 기말까지의 모든 크로키며 스케치, 심지어는 쓰지 않은 채 모아 둔 종이까지 고스란히 들어 있었지만, 자잘한 것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선생이 그걸 가져갔으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두 개의 포트폴리오를 한데 모으는 와중에 놓친 것일지도 모른다. 스케치북이 사라진 걸 깨달았을 때 좀더 열심히 물어봤어야 했건만, 불민한 나는 에세이를 마무리하고 날짜에 맞춰 방을 빼느라 정신이 없었다. 뒤늦게서야 대청소 후 텅 빈 스튜디오에 헛걸음했을 따름이다.

상실감이 벛꽃이 날리는 속도로 천천히, 무겁게 가슴을 눌러왔다. 중요한 걸 잃어버렸다는 깨달음은 언제나 한 발 늦게 찾아온다. 그것이 눈을 부릅뜨고 그린 스케치거나,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줄 몰랐던 옛 사람이거나. 하릴없이 거실을 빙빙 돌며 생각했다. 어찌됐건 괜찮다. 나이를 먹어가는 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이니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 그러니 괜찮아야지. 옛날처럼 그림 하나에 울고불고 할 수는 없잖니.


씨발, 뭐가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잖아.


그 스케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던 것일까. 어느 날 그린 몇 장의 그림이 생의 증거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이 아이러니라면, 그토록 잡아 보고자 허망하게 애썼던 순간이 무로 화해 사라지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붙들 수도 확언할 수도 없는 게 삶이라면 그 생이 흐른다는 길목, 눈에 보이지 않는 은빛 아치의 저편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일까, 그 그림들은. 그렇다면 제 자리를 올바로 찾아간 것일 게다. 저 멀리 미국에 있을 선생을 향해 나쁜 년, 이라고 중얼거린대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상한 맘에 울어도 사라진 스케치는 돌아오지 않는다. 유난히 아팠고 어리석었던 열다섯, 혹은 스무 살 무렵처럼. 알면서도 반쯤 잊고 지내던 연인과의 오래된 기억처럼. 시간의 갱도 앞에 서서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리워하는 일 뿐이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차라리, 보다 능숙하게 그리워하는 법을 아는 일일지 모르겠다.


야발청계향삼협, 사군불견하유주. 그대를 생각하면서도 보지 못한 채 유주를 내려가듯이, 잃어버린 뭔가를 슬퍼하며 밤새워 뭔가를 그리고, 일어나서는 또 뭔가를 쓰는 심사. 그건 아마 그리움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