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Psychology P

Psychology P: #1. 개관- 프로이트에 관심이 있는 당신께 (1)

호르텐시아 2007. 8. 25. 01:53
1.    개관: 프로이트에 관심이 있는 당신께- 기본적인 심리학사와 심리학적 연구 방법, 인간을 규정하는 일곱 가지 심리학적 조망


심리학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아마 대다수 사람들이 ‘독심술’이나 ‘심리테스트’, ‘프로이트’ 정도의 단어를 떠올리겠지요. 특히 전공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위의 첫 번째 단어가 자주 언급되는 걸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심리학=마음을 읽는 테크닉을 가르치는 학문’ 정도로 여기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안타깝게도 틀렸습니다. 심리학과 학생 남의 심리 못 읽습니다.-_-; 그 점에서는 타 학과와 전혀 다를 게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테크닉이 있다면 제가 제일 먼저 배우고 싶군요. '내가 모르는 그놈의 마음을 감쪽같이 읽는다!' 하며 판매를 조장하는 '무슨무슨 심리학'과 같은 서적들은 심리학 이론을 요리조리 끼워맞춰 실생활에 써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완제품에 가깝습니다. 수업에서 정식으로 배우는 것은 이론뿐이니, 마음 읽는 법에 대해 알려줄 리가 없지요.

 심리테스트의 경우 심리학과의 세부 전공과목이긴 하지만, 정작 수업 시간에 만드는 것은 인터넷에 떠도는 매력도 테스트라든지 에고그램과 같은 ‘심테’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한 심리테스트는 MMPI II나 MBTI 같은 공인된 심리검사와 비교할 때, 만들 때 과학적 척도나 기준이 적용되지 않지요. 여기에 관해서는 특집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지요.

  비교적 정확한 연상은 역시 세 번째겠지요. 기타 발전형으로 ‘융’이나 ‘아들러’, ‘라캉’과 같은 답변이 나오기도 합니다. 프로이트는 다들 아시듯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서, 심리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융과 아들러는 프로이트에게 사사받은 네오-프로이트 학파Neo-Freudians이며, 라캉은 언어심리학자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철학자에 더 가깝습니다 (고백하건대, 제가 3년을 배웠지만 라캉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습니다-_-; 개론서 수준에서 소개할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겠죠. 언어심리학을 세부전공으로 선택한다면 촘스키나 소쉬르와 더불어 그의 이론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이 걸쳐 있는 다양한 영역들과 그 영역에서 혁혁한 업적을 남긴 다른 인물들을 고려할 때, ‘심리학=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란 생각 역시 옳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심리학은 어떤 학문이며, 무엇에 대해 다루는 학문일까요? 심리학의 일반적인 정의는, “행동(behavior)과 심적 과정(mental process)에 대한 과학적 연구”입니다. 중요한 키워드는 세 가지입니다. 인간의 행동, 인간의 마음, 그리고 과학.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라면,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학문이 철학이지요. 사실 철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다양한 질문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인간의 정신(마음)과 육체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은 심리학 연구의 바탕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이 철학에서 갈라져 나와 독자적인 분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계기는, 과학적인 방법론의 도입이었습니다. 과학 운운하니까 반사적으로 경계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 어쩔 수 없습니다. 과학적 사고, 과학적 방법론이야말로 심리학을 구성하는 주요한 토대이자 찐빵의 앙금이거든요.

  과학적 심리학의 기원은 빌헬름 분트(W. Wundt)가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에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을 설립한 1879년입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의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지각이나 정서를 세심하게 관찰하여 기록하는 내성법(introspection)을 사용했으며, 실험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 했습니다. 내성법 자체가 개개인의 서로 다른 자각에 의존하고 있어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지요. 이후 수많은 심리학자들에 의해 심리학은 지극히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가게 됩니다.

19세기 말은 화학과 물리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였습니다. 특히 분자를 원자라는 더 작은 단위로 환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심리학자들도 인간의 감각이나 지각을 보다 세밀한 요소로 분석하고자 하였지요. 대표적인 인물이 티치너(E.B. Titchener)입니다. 그는 우리가 느끼는 맛, 감촉 등의 신체적 감각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고나 의식도 세부 요소로 조각조각 쪼개어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대단히 구성주의적인 접근 방식이지요. 한편 같은 시기의 제임스(W. James)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쪼갠 부스러기를 하나하나 분석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는 오히려 한 인간이 보고 듣고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어떻게 환경에 적합하게 작동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의 입장은 다분히 기능주의적이었습니다.


위의 두 시각이 초기 심리학에 체계적인 접근 방법을 제공하자, 드디어 1920년대에 심리학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학파 셋이 등장합니다! 바로 행동주의(Behaviorism), 형태심리학(Gestalt), 그리고 가장 유명한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이지요. 이 셋은 뒷날 발전하는 다양한 심리학의 분야를 떠받치는 줄기 역할을 합니다.

  행동주의는 정신분석학만큼 유명하진 않은데, 그 참신함과 중요도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을 보상과 처벌- 즉 당근과 채찍을 통해 디자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행동에 보상 혹은 처벌을 주어서 더 자주 일어나게 만드는 것을 강화, 그 반대의 경우를 소거라고 합니다. 처벌을 통한 강화의 예를 들면, 수업시간에 준비물을 안 가져온 학생에게 벌을 내리면 다음부터는 좀더 준비물을 잘 챙겨 오려 하겠지요. 반대로 보상을 통한 소거의 예를 들면,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울지 않고 잘 기다린 아이에게 칭찬을 해 주면 울거나 떼쓰는 행동은 점차 줄어들겠지요. 환경 역시 특정한 습관을 강화함으로써 행동을 유발하는 역할을 합니다. 말하자면 과학적 방법론의 한 극단인 셈입니다. 다들 잘 아시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도 행동주의적 연구의 하나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 설립자인 왓슨(J.Watson)이나, 후예인 손다이크 (E.L. Thorndike)나 스키너(B.F. Skiner)가 특히 유명한데, 특히 왓슨은 사고나 감정 등 의식 경험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이었습니다. 왓슨은 심지어 이렇게 말했을 정도입니다. “어떤 어린애이든 내게 데려와라. 원하는 대로, 정치가이든 파일럿이든 선생이든 운동선수든 바라는 대로 이루어 줄 터이니.” 이쯤 하면 좀 무섭지요? 사실 그는 어느 시점에서 심리학자를 완전히 그만두고 경영인으로 변신하여 엄청난 성과를 올리지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패스합니다. 손다이크는 보상이 뒤따를 때 행동이 강화하는 것을 발견했고, 스키너는 도구적 조건형성- 무력하게 침만 흘리던 파블로프의 개와는 달리 특정한 행동이 환경에 특정한 영향을 미쳐 더 강화되거나 소거되는 현상을 연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원숭이가 종을 우연히 건드렸는데 바나나가 떨어지면 매우 종을 열심히 치겠지요.

사진을 보면 엄청나게 깐깐하게 생겼는데, 한창 때에는 자기 딸을 스키너 상자에 넣고 실험했다는 악성 루머가 떠돌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루머입니다. 실제로는 아이들에게 자상한 평화주의자였다고 하는군요.

<스키너의 초상입니다. 그래도 비교적 온화한 걸로 골랐습니다.
교과서 버젼은 루머가 현실이라고 믿게 만들 정도입니다.>

<스키너 박스의 구조입니다.
바닥의 전기 바는 말하자면 채찍-소거용, 버튼과 먹이 창구는 당근-강화용입니다.
쥐가 버튼을 또깍 누르면 먹이가 굴러나옵니다.
먹이 박탈은 쥐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어서, 물 박탈로 직접 조건화시켜 봤는데
숙달된 쥐는 1분에 96번까지 눌러대더군요.-_-;
소거시키려면, 버튼을 눌렀을 때 물 대신 전기 쇼크를 주면 됩니다.>


    이 행동주의가 미국을 휩쓸던 때 독일에서는 형태심리학- 게슈탈트(독일어로 형태, 또는 윤곽이라는 의미) 심리학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어지는 자극 자체 뿐 아니라 자극이 만드는 패턴, 그리고 그런 덩어리 패턴을 겪음으로써 쌓이는 경험이 우리의 지각을 결정한다고 믿었습니다. 가령 삼각형에서 세 변의 가운데 부분이 얼마씩 지워져도, 우리는 그것을 꺾쇠 세 개가 아닌 삼각형 모양으로 느낄 수 있죠. 한때 인터넷에서 떠돌던 ‘캠릿브지… ‘의 원리도 비슷합니다. 보통 우리는 단어를 통째로 인식하는 데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글자들이 뒤죽박죽이라는 사실에 놀라는 겁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감각 및 지각심리학의 토대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심리학의 애쉬(S. Ash)나 레빈 (K. Lewin) 같은 경우, 이러한 게슈탈트 원리를 확대하여 대인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사용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보는 건 독립된 부분 하나하나가 아니라, 뭉뚱그려진 전체적 인상이라는 거죠.
 
<색소폰 부는 아저씨일까요, 젊은 아가씨일까요?
당신의 눈에 보이는 건 어느 쪽의 패턴?>


정신분석학은 모두가 다 아실 만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창시되었습니다. 이 분야는 일종의 성격이론이자, 정신치료법이며,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조망으로써 매우 폭이 넓습니다. 흔히 말하는 무의식(Unconsciousness)이란 본래 정신분석학의 용어입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평소에 자각하지 못하는 사고나 정서, 충동, 소망, 동기 등이 숨어 있고 그것이 충족되지 못했을 시, 이상 형태나 말 실수(Freudian Slip) 등으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 무의식에 숨어 있는 다양한 추동(Driven)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성욕(Libido)과 공격성입니다. 외부의 방해 때문에 추동이나 소망이 좌절될 경우, 사람은 다양한 방어기제를 통해 정신을 보호합니다.
 가령 뺨 맞고 한강에 침 뱉는 ‘전위’(displacement)나, 실연당했을 때 미친 듯이 술을 퍼마시고 잠드는 ‘해리’(Dissociation), 실은 애인을 바라는 솔로가 강력하게 커플지옥을 주장하는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등이 좋은 예지요. 다들 잘 아시는 이드, 에고, 수퍼에고나 빙산의 일각 모형 역시 정신분석학의 한 부분이지만, 너무 길어질까 싶어 이 정도로 정리합니다. 이 방어기제도 열여섯 가지 정도 있는데, 시간이 남으면 특집편으로 정리해서 적어보고 싶군요. 굉장히 재미있어요. 단 어디까지나 시간이 남으면, 입니다.-_-;

현대 심리학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이 전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 이론이 일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많은 심리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썰을 풀었을 때 일반인이 가장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심리학적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누구 아닌 자기자신의 내적 이야기에 가장 맞닿는 내용이거든요.

<밖으로 드러나는 건 벌컥 화를 내는 모습이지만,
그 밑바닥엔 본인도 잘 모르는 다양한 이유가 깔려 있을 수 있습니다.
가령 공포, 부족한 대인관계 기술, 잘못 해석한 사건, 지나친 감각 자극, 사회 룰의 부족한 이해, 등등.>


  제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행동주의가 심리학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했습니다. 1950년대 들어서야 컴퓨터공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심리학에도 새로운 전기가 열립니다. 컴퓨터 덕분에 심리학자들은 심리과정을 시뮬레이션하고 이론화하는 강력한 도구를 얻게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바탕으로 한 정보처리모형이 그것인데, 여기에서 인간을 정보처리자로 보는 개념이 생겨납니다. 외부 세계의 다양한 정보들- 소리, 빛, 대인관계 등을 내부에서 하나의 정보로 받아들여 프로세싱한다는 것이죠. 이 모형을 만드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사이먼(H. Simon)은 훗날 노벨상을 받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현대 심리학의 주요한 트렌드 중 하나인 인지심리학 및 학제적 연구인 인지공학의 발달에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죠.
 
그와 동시에 뇌와 신경계에 관한 의학적 연구가 진보하면서, 신체의 신경적 부분과 심적 과정 및 행동에 주요한 연관성이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분야가 바로 오늘날의 행동신경과학, 혹은 인지신경과학으로 발전합니다. 가령 스페리 (R. Sperry) 는 좌반구와 우반구를 연결하는 뇌량을 절제한 결과가 어떤지를 연구했는데, 이 사람도 훗날 노벨상을 받았지요. 그 외 촘스키의 통사구조 발견이 촉진한 언어심리학, 칙센트미하이가 주창한 긍정심리학, 진화심리학 및 다양한 문화 간의 심리학적 차이를 다루는 문화심리학 등이 새로운 분야로서 떠오르고 있습니다. 다소 지엽적이지만 학교 수업 중에 통일심리학과 같은 문화심리학의 갈래 응용과목도 있더군요.

요즘은 학제(Interdisciplinary)적 연구라 하여 각 학문 분야의 벽을 허무는 공동연구가 종종 시행되는데, 그 단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직심리학은 경영학의 인사관리, 그중에서도 조직행동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한편 소비자심리학은 마케팅 분야와 가깝지요. 심리검사에서 개발한 다양한 척도 및 검사들은 기업체에서 구직자의 인성검사를 실시할 때 사용되기도 하구요. 인문학에 그 뿌리를 두고, 과학적 방법론을 뼈대 삼아 순수과학에서부터 응용사회과학까지 많은 분야를 아우르는 학문이 바로 심리학입니다.의식, 수면, 학습, 기억, 사고, 동기, 정서, 지능, 스트레스, 성격, 심리장애, 이 모두가 심리학의 연구분야에 해당하지요. 실제로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관련된 분야라면 거의 다룬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폭이 넓은데,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심리학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의 역사, 생각보다 길지요? 본래는 한 편의 글인데, 분량상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 편에서는 심리학의 연구 방법 및 조망- ‘심리학적으로 본다’는 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시각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심리학적으로 ‘본다는 것’에 대해서 짧게 적어 두었던 것이 있는데, 지금 여기에 잠시 옮겨 보겠습니다.

<성격심리학에서는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르다' 라고 말한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사람은 변하며,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라고 말한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상황은 의지보다 강하다' 라고 말한다.
이상심리학에서는 '누군가가 우리와 다르다고 편견을 갖지 말라' 고 말한다.

심리학을 배울 때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눈이다.>

 



 Reference:

힐가드와 애트킨슨의 심리학 원론 14판, E. Smith, S. Nolen-Hoeksema, B. Frederikson, G. Loftus 공저, 박학사

이미지 출처:

스키너: www.psychology.iowa.edu/.../homepage.html

스키너 상자: www.theculturebeat.com/?p=101

게슈탈트 도형: www.nwlink.com/~donclark/hrd/history/gestalt.html

빙산일각: www.nas.org.uk/nas/jsp/polopoly.jsp?d=458&a=5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