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Psychology P

Psychology P: #2. 뇌와 마음- 인지신경과학에선 무엇을 연구할까

호르텐시아 2007. 9. 5. 23:48
2. 뇌와 마음- 인지신경과학의 범주 및 개괄적인 역사: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모두들 잘 지내셨나요- 개강의 계절, 9월입니다. 폭풍 같은 개강 덕분에 한참 밀려 버린 인지신경과학의 역사 편입니다. 개강의 여러 면모에 관한 잡설은 차후 다른 포스팅에 하기로 하겠지만, 다음 주부터는 정말로 바빠지는 관계로 이번 주 안에 어떻게든 두 편을 더 업로드하려고 합니다. 부디 이번 편처럼 늦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한번 이런 질문을 던져 봅시다. 인간의 마음과 몸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관련이 있다면, 몸은 마음의 작용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위 질문을 보고,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가 주장한 심신이원론을 제일 먼저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철학적 관점의 해답이지요. 다양한 분야의 심리학자들이 위의 질문에 심리학적인 답변을 내놓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과학의 발달에 따라 뇌의 기능과 역할이 점차 밝혀지면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에도 엄청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지요. 덕분에 ‘몸과 마음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노력의 범주는, ‘뇌와 마음의 관계’로 좁혀지게 됩니다.

  인지신경과학은, 간단히 말해 뇌와 마음의 연관성을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다루고자 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한때 행동과학자로 이름을 날렸던 G. 밀러가 1976년의 어느 날 학회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고안해 낸 명칭이니, 분야 중에서도 신생분야인 셈이지요. 그러나 현재의 인지신경과학을 지탱하는 역사는 생각처럼 짧지 않습니다. 전시대에 꽃을 피웠던 다양한 학파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현대 인지신경과학의 역사이자 학문적 바탕을 이루고 있지요. 어떻게 오늘날의 인지신경과학이 뇌와 마음의 관계를 밝혀낼 수 있게 되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1.    부분 대 전체

  뇌 이야기의 기원은 18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엔 골상학(Phrenology)이란 게 판을 치고 있었는데, 그게 뭔고 하니 인간의 두상에 따라 그 인간의 특정한 성격을 알아낼 수 있다는 이론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갈(J. Gall)은 인간의 뇌가 35개의 기능적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고 주장했지요. 그는 껍데기를 까지 않고도 그 안쪽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Anatomical Personology), 동시대의 학자였던 P. 플로렌스(P. Flourens)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뇌를 조금 잘라낸 새가 여전히 멀쩡하게 살아 돌아다닐뿐더러 금세 회복하는 것을 보고, 그는 한 가지 행동을 하기 위해 뇌가 통째로 기능한다는 확신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실사버젼 골상학입니다... 흠 좀 무섭군요?...
 껍데기를 열고 굳이 안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허영, 꾀, 덕, 분노, 환상 등의 뇌내상태가 훤히 보입니다. 오호.>

  이 두 사람의 관점에 잠시 주목합시다. 갈의 경우, 뇌의 부분부분이 제각기 특정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플로렌스는 하나의 기능을 하기 위해 뇌 전체가 함께 동작한다고 생각했지요. 전자를 국지적 관점(Localized view), 후자를 전일적 관점(Holistic view)이라고 합니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 답일까요? 서로 다른 두 관점 사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갈등이 앞으로 이어지는 뇌 이야기의 핵심을 이룬답니다. 

  플로렌스의 발상은 1860-70년대 경에 이루어진 브로카(P. Broca)와 베르니케(C. Wernike)의 놀라운 발견에 의해 잠시 주춤하게 됩니다. 오늘날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으로 알려진 뇌의 핵심적인 언어 중추를 바로 이 두 사람이 발견했죠. 브로카 영역이 손상된 사람은, 인지기능은 정상이지만 그걸 입 밖으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기껏 몇 단어와 욕지거리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죠. 반면 베르니케 영역이 손상되면, 입에서 말은 술술 유창하게 나오는데 앞뒤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 보이죠. 무섭죠? 이 둘은 국지적 관점을 뒷받침하는 아주 크리티컬한 연구 결과였습니다. 더 나아가 독일 생리해부학자였던 브로드만(Korvinian Brodmann)은 뇌를 이루는 세포들의 생리학적 특질과 구조(Cytoarchitectionics)를 분석해 52개의 서로 다른 영역으로 표시한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브로드만의 지도는 특정 뇌 영역과 정확하거나 혹은 비슷하게 일치한답니다.

<이건 실사...나 3D로 올리면 좀 위험할 것 같아서
특별히 예쁜 파스텔톤으로 골랐습니다.*-_-*
맨 뒤의 17, 18번이 일차시신경영역인데,
실제 기능하는 부위랑 정확히 일치한답니다.>


2.    뉴런의 첫 발견- 골지와 카얄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도록, 뉴런 한 가닥을 최초로 ‘현상’ 한 사람이 이탈리아 출신의 신경학자 골지(C. Golgi)입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뉴런-세포들이 얽히고 설켜 덩어리 조직을 이루고, 그것이 다시 모여 통짜의 세포질(syncytium)을 이룬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세포질이 행동이나 기능을 주도하는 것이죠. 플로렌스의 관점은 골지로 이어집니다. 그의 뉴런 학설(Neuron doctrine)은 실로 강력한 것이라, 당대의 학자라고 인정받던 퍼킨지(Purkinje)나 헬름홀츠(Helmholtz) 등 모두가 이 이론에 참여했지요. 사실은 프로이트(!) 역시 신경생리학 연구진의 일원이었답니다. 모르셨죠?

  아직 젊었던 시절의 그는 그야말로 영리하고 야심만만한 신경생리학자였는데, 당시 대학자 헬름홀츠의 영향을 받은 브뤼케(E. Bruecke) 의 실험실에서 다양한 생물의 세포 구조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20대와 30대 초반에 발표한 논문들은 신경해부학 분야에서 그 자체로 뛰어난 것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다른 사람이 그 영광을 차지하긴 했지만, 젊은 프로이트는 뉴런이 신경계의 기능적 단위라는 사실을 거의 발견할 뻔 했습니다. 심리학사에 한 획을 그은 정신분석학 이론은, 그렇게 20대를 보내고 고독한 30대를 거쳐 불혹의 40대에 접어든 프로이트에 의해 비로소 탄생하게 되는 것이랍니다. 이걸 읽는 젊으신 분들, 지금 너무 초조해 말고 기초를 다지며 미래를 대비해 보자고요. 혹시 아나요.

  골지의 뉴런 표본(Golgi Stain)을 보며 향학열을 불태웠던 한 스페인 소년은, 훗날 그 뉴런이 단순한 세포 조각이 아닌 개개의 독립된 기관이며, 한 방향으로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기능을 지녔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그가 바로 산티아고 라몽 이 카얄 (S.R.y Cajal)입니다. 그의 연구 결과는 골지의 뉴런 학설과 정반대 입장으로, 뇌의 부분부분이 제각각의 기능을 한다는 국재적 관점과 연결되죠. 골지가 만들어낸 표본이 그의 이론을 뒤집는 역할을 한 셈이죠. 이 두 사람이 밝혀낸 뉴런과 그 기능은 신경학의 비약적 발전에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세운 업적으로 휴브리스에 빠진 골지는 카얄의 결과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끝까지 자신의 세포 덩어리 이론을 고수하려 했습니다. 과학사에서 종종 엿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역시 씁쓸한 일화겠죠.



<우왁, 이 징그럽게 생긴 게 뭣이냐 하면 바로ㅡ
골지 방식으로 염색한 대뇌피질의 성상세포입니다.
대뇌피질은 뇌의 맨 바깥부분으로, 가장 인간다운 활동을 조정하는 구역입니다.
성상세포는 별처럼 생겼다고 해서 성상세포란 이름이 붙었...지만 좀 많이 찌그러졌군요?
이 녀석은 뉴런 조직과 혈관 사이에 위치하며, 피가 함부로 뉴런 조직에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배리어를 치는 역할을 담당한답니다.>


3.    20세기 이후의 뇌

   카얄의 연구결과가 밝혀진 이래 뇌는 철저히 기능덩어리로 구성된 조직이란 인식이 널리 퍼집니다. 물론 그에 맞선 전일론적 관점의 공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가령 뇌 피질을 뚝 떼어낸 개가 정상적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선보인 골츠(F. Goltz)나, 뇌 수술이 배움이나 배운 것의 수행에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주장한 래슬리(K. Lashley)가 그렇습니다. 잭슨 (H. Jackson) 같은 경우는 뇌 수술이 괴상한 증상을 일으킬 순 있지만, 그 다친 부위가 반드시 특정한 기능을 담당하는 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했지요.

  훗날 인지신경과학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코슬리는 두 관점 간의 갈등을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뇌의 조그만 부분이 인간의 복잡한 행동이나 능력을 전부 감당할 수 없다는 점에선, 전일론자들이 옳습니다. 그러나, 간단한 과정을 수행해내는 능력은 분명 뇌의 곳곳에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점에선 국재론자들이 옳은 것이죠. 뇌는, 단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작은 조각들이 모여 더 크고 복잡한 일들을 해내는, 시너지 기관의 진수입니다.


4.    뇌와 마음
 
  자, 뇌에 얽힌 두 관점의 다툼을 잠시 벗어나 조금 더 크게 봅시다. 전에 심리학은 철학에서 갈라져 나온 학문이라고 얘기했던 것 기억나시죠? 이러한 실험심리학은 로크에서 흄, 다시 밀로 이어지는 철학의 경험론적 시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은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얻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경험론의 관점이지요. 그에 따라 철저하게 인간의 감각적인 경험과 그에 따른 반응을 연구하는 것이 실험심리학의 모토였죠.

   이러한 실험심리학적 시각- 모든 복잡한 과정은 감각 경험과 그에 따른 반응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시각은, 다시금 연합설(Associationism)로 이어집니다. 이 연합설은 미국의 젊은 심리학자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나가, 행동주의 심리학을 지탱하는 또다른 기반이 된답니다.  그리고 강경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 중 하나였던 밀러에 의해, 인간 뇌가 행하는 인지적인 역할이 비로소 주목받게 됩니다. 여기에 MIT의 컴퓨터 천재- 폰 노이만이나 클라우드 샤논 같은 인재가 가세해 뇌의 활동을 모델로써 시뮬레이션하고, 이후 신호탐지이론과 같이 다양한 인지적이고 실험적인 이론을 만들어내죠. 여기에 길고 긴 뇌 연구의 역사에서 밝혀진 다양한 생리적 사실이 가세합니다. 사람의 뇌가 일상에서 보여주는 인지적인 기능을 밝혀내고자 하는 인지심리학과, 뇌의 생물학적인 구조와 기능을 탐구하는 신경생리학의 합작이 인지신경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낳게 된 것입니다. 조금 어려웠나요?


  좀더 간단하게 정리해 보죠. 인지신경과학에서는, 뇌가 일상의 다양한 일들을 논리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동작하는 뉴런 및 뇌의 덩어리 부위와 관련지어 이해하려 합니다. 앞으로 번갈아 가며 이어질 인지신경과학 파트에서는, 뇌의 다양한 구조, 어떤 부위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 본다는 건 무엇인가, 학습과 기억 및 고차원적인 행동은 뇌의 어떤 부위들에서 어떻게 담당하는가, 등을 다루어 보려 합니다. 이렇게 쓰니 딱딱하지만 알고 보면 상당히 재미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바로 이어지는 다음 편은 사회심리학의 역사입니다. 역사만 세 편 다루니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네요. 하지만 역시 어떤 분야에 대해 이해하려면, 그 분야의 역사를 먼저 훑어보는 편이 큰 그림을 파악할 수 있어 좋지요. 오늘 한 이야기가 심히 자연과학스러웠다면, 다음 편 포스팅은 좀더 폭넓고도 인간적인 이야기가 될 듯싶네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Reference:

Cognitive Neuroscience: The Biology of the mind Second Edition, M. Gazzaniga, R. Ivery, G. Mangun, Norton

철학이란 무엇인가, B. 러셀, 문예출판사

열정과 기질, H. 가드너, 북스넛


그림의 출처:

실사골상학: www.psy.uwa.edu.au/psychos/photos%202002.html

브로드만 지도: medicine.tistory.com/tag/Brain?page=2

골지 스테인: www.coloradocollege.edu/.../Cellular1-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