想-象

불쾌함 (or Tragic Flaw)

호르텐시아 2007. 11. 12. 02:03
원칙이 있다. 보통은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허나 아주 드물게, 내가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꼭 그만큼 타인을 거절하게 되는 그 순간은 언제나 껄끄럽다. 내가 바라지 않는 일을 타인에게 하지 않는다ㅡ 그렇게 살고 있는데도, 종종 어기게 될 수밖에 없는 건 어째서일까. 피가 거꾸로 솟아 볼이 붉어진다. 지금부터 할 과제는, 내가 몹시 싫어하는 하디의 테스다. 머릿가죽이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욱신거린다. 입맛이 쓰다.


사람들이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상냥하게 웃고 있는 세계를 좋아한다. 가끔씩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에 손대는 자를 내칠 때마다,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분이 탁해진다. 그에겐 잘못이 없다. 내 잘못도 아니다. 그래도 역시, 받는 데 익숙한 삶을 살았더라면 좀더 좋았을까. 드물지만 가끔 기대 이상의 것을 받게 될 때가 있다. 굉장히 기뻐지는 순간 낯선 불쾌함이 밀려온다. 피처럼 쓰고 진한 불쾌감. 한번쯤 받아보고 싶었지만 체념했던 무엇을 상대가 건네는 순간, 그 손을 때려 든 것을 떨구게 하고 만다. '너는 아무리 노력해도 코어엔 절대로 닿을 수 없어.' 언젠가 이런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생각 이상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럴 때면 늘 뼈와 이빨을 떠올린다. 마른 뼈를 물어뜯는 단단하고 하얀 이빨. 부엽토와 모래층 아래 잠긴 반석처럼 넘을 수 없는 경계. 자기조차 어쩔 수 없는 마음의 금.

썩은 낙엽처럼 두텁게 쌓인 불안을 헤치고 타인의 마지노선에 도달했을 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을 건드리려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물처럼 고인 슬픔 가운데, 섬세한 기쁨이 비죽이 솟아올라 말을 건넸다. 여기까지군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군요. 당신은 나와 같군요.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요. 알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누구나 비극적 결함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오래된 상처는 흉터 아래 신선한 피를 머금고, 사람은 정해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 늘 그렇듯 마음의 공고한 폐쇄회로는 만원이다. 그러나 비극이 아니다. 만년필을 사랑하듯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람을 사랑하듯 만년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익숙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존재한다. 타고난 습관, 낡은 기억이 짐지운 멍에, 옳고 그름을 떠나 생을 거침없이 끌어가는 그 힘의 이름으로. 꼭 자기 심장만큼의 무게를 걸머진 각자의 방식대로.

섣불리 손을 내밀지 않아도 때로는 그저 이대로, 좋은 것이다. 결함으로 생겨나는 괴로움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