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 Literature
시가 내게로 왔다
호르텐시아
2007. 11. 28. 00:37
이번 학기 초반부터 내내 말해 왔듯, 문학에 머리끝까지 잠겨 지낸다. 그중 특기할 만한 게 시. 영국 시보다는 미국 시가 좋다. 앤 브래드스트릿과 에드워드 테일러를 시작으로 휘트먼을 거쳐 프로스트까지 왔다. 프로스트는 첫인상이 소박하고 단조로운 반면 곱씹을수록 잊혀지지 않는 뒷맛이 있다. 크게 부풀었다 줄어드는 풋잠 속, 흐릿한 사과의 상像이 며칠째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의 시와 산문은 글쓴이를 빼어닮아 검정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눈을 빛내며 말없이 서 있다. 산문이지만 소로우나 에머슨도 그렇고, 아무래도 내 마음 밑바닥 어딘가에 뉴잉글랜드적 감성으로 통하는 길이 있나 보다.
- 월레스 스티븐스와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가 최근 마음의 화두다. 스티븐스의 'The Emperor of Ice-Cream'은 한 창녀의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다. 흐릿한 램프 불빛 아래 죽은 자는 송판 위에 눕고, 산 자는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렇다, 장례식의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 버젓이 살아남아 불그레한 얼굴로 '여기 소주 한 잔 더'를 외치는 산 사람들이다.
느낌이나마 전달하고 싶어 무딘 솜씨로 급하게 번역하면,
Call the roller of big cigars,
The muscular one, and bid him whip
In kitchen cups concupiscent curds.
Let the wenches dawdle in such dress
As they are used to wear, and let the boys
Bring flowers in last month's newspapers.
Let be be finale of seem.
The only emperor is the emperor of ice-cream.
시가말이 사내를 불러라
근육의 팔을 지닌, 그에게 부탁컨대
부엌의 먹음직스런 응유를 휘젓도록.
계집들이 빈둥대게 두어라
평소 입던 옷을 입은 채, 소년들은
지난 달 신문에 싸인 꽃다발을 들고 오도록.
그럴싸한 피날레만 남도록.
유일한 황제는 오직 아이스크림의 황제.
Take from the dresser of deal,
Lacking the three glass knobs, that sheet
On which she embroidered fantails once
And spread it so as to cover her face.
If her horny feet protrude, they come
To show how cold she is, and dumb.
Let the lamp affix its beam.
The only emperor is the emperor of ice-cream.
옷장의 널빤지를 끄집어내어
세 개의 유리 손잡이는 떼버리고, 한때
그녀가 수놓았던 공작비둘기의 침대보를
넓게 펼쳐, 그녀의 얼굴을 덮도록.
삐주룩한 여윈 발이, 드러난다면 필시
그녀가 얼마나 차갑고, 무딘지 알 수 있으리라
램프가 빛을 달게 두어라
유일한 황제는 오직 아이스크림의 황제.
장례란 결국 산 자의 몫, 해장국을 퍼먹고 밤새워 고스톱 치는 사람들 앞에 죽은 자는 슬퍼할 권리조차 없다. 아이들은 낡아빠진 신문지에 싼 조화를 들고 찾아오고, 대접할 것이라곤 아이스크림 뿐이다. 망자의 마른 발조차 채 덮지 못하는 침대보 곁에서 한때 동료였을 여자들은 평소처럼 짙은 화장을 하고 한숨을 섞어 잡담을 나눈다. 죽음은 종종, 평범하다. 통렬하도록. 아픔 혹은 슬픔이란 형용사는 지나친 인습으로 타락하고 오늘도 삶의 경계는 미완으로 남는다. 말로 다하지 못할 노래, 시.
-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미국 시는 인터내셔널리즘과 디스 이즈 아메리카!를 분방하게 오가며 자라 왔다. 카를로스는 그중 후자를 떠받치는 시인이다. 그는 엘리엇의 지나친 염세주의, 관념성, 인터내셔널리즘을 경멸하며 어떤 의도도 주장도 없는, 순수한 현실, 오직 만질 수 있고 실재하는 현실로써 시를 세우려 애썼다. 이 시점에 오면 이제 시어의 조탁은 뒷전, 포에타는 저버린 채 부서진 의미 찾기에 날 새는 줄 모르는 모더니티의 진수를 보여준다. 난해하기로도 두 시인 다 난해하고, 현실을 벗어난 상상력의 엉덩이를 과감히 걷어차는 태도 역시 두 시인이 꼭 같다 (그러나 이매지네이션이 인류의 구원이자 만병통치약이라 믿었던 시절의 낭만파 시인들이 더 쉽게 잘 읽힌다는 건 어딘가 아이러니).
굉장히 섹시한 시 한 편 함께 봅시다. 역시 즉석 번역.
Your thighs are appletrees
whose blossoms touch the sky.
Which sky? The sky
where Watteau hung a lady's
slipper. Your knees
are a southern breeze -- or
a gust of snow. Agh! what
sort of man was Fragonard?
-- As if that answered
anything. -- Ah, yes. Below
the knees, since the tune
drops that way, it is
one of those white summer days,
the tall grass of your ankles
flickers upon the shore --
Which shore? --
the sand clings to my lips --
Which shore?
Agh, petals maybe. How
should I know?
Which shore? Which shore?
-- the petals from some hidden
appletree -- Which shore?
I said petals from an appletree.
당신의 허벅지는 사과나무,
꽃핀 그 가지가 하늘에 닿는다네
어떤 하늘? 와투가 숙녀의 슬리퍼를
걸어 놓은 하늘이지. 그대 무릎은
남국의 바람- 혹은
한 줄기 눈보라. 아흐! 대체
프레고나르는 어떤 사내였던지?
-그 답이 뭐든간에, 아, 그래. 무릎 아래
선율이 미끄러져 떨어진다, 마치
그 새하얀 여름날의 하루처럼,
당신 발치의 키큰 풀들은
해변을 간질이네- 어떤 해변?-
모래가 내 입술에 달라붙어-
어떤 해변?
꽃잎이겠지, 아마도 어찌
내가 알겠는가?
어떤 해변? 어떤 해변?
- 숨겨진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꽃잎- 어떤 해변?
사과나무에서 흘린 꽃잎이라네.
와투나 프레고나르 모두 풍경을 배경으로 연인들의 행각을 솔직담백하게 즐겨 그렸던 화가들이다. 감흥을 선사하는 진정한 음담패설이 여기 있으니, 보다 많은 남자분들의 품위있는 사담을 위해 건배.
하지만 사실 진정으로 감동을 받은 시는
so much depends
upon
a red wheel
barrow
glazed with rain
water
beside the white
chickens.
바로 이것, Red Wheelbarrow. 해석은 쉬울 뿐더러 시를 망치니 따로 달지 않는다.
과외 가는 길, 버스의 녹색 둥근 기둥과 파란 의자, 흔들리는 사람들. 난시로 흐릿한 차창 너머 재처럼 가라앉는 노을, 붉고 푸른 휘황찬란한 가로등, 담대하게 길을 가로지르는 자동차의 빨간 빔과 겁없는 학생들의 까만 눈동자, 몇 번이고 거듭 이 모든 풍경을 마음에 담았는지 모른다. 사소한, 중대한, 시간, 풍경, 사건이 순간에 지나쳐 가면 난 그 의미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채ㅡ뒤에 남겨져 질식할 것처럼 넘쳐나는 의미의 갈래 속에서 해맨다. 몇 번이고 노래하고 싶었지만 노래하지 못한 풍경들, 기표가 기의에서 미끄러지는 순간을 통렬하게 절감하고 또 절감하는 11월, 1월, 토요일, 목요일의 오후 한때... 이렇게 선명한 붉은 손수레가 빗물에 젖어 빛나고, 그 곁에 눈부신 백색의 병아리들이 있는 아주 평범한... 그러나 너무 많은 의미가 매달린 순간들.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인 그 순간을. 세 단어와 한 단어가 번갈아 너울친다. 오늘 이 시를 읽고 하루종일 두근거려 잠자기 직전에 참지 못하고 이렇게 남겨 둔다.
P.s
갈수록 언어를 다루기가 어려워진다. 번역투의 문체에 오염된 걸까? 더 전엔- 한숨에 써내려간 다음날 창을 켜 읽어보면 간밤의걱정이 부질없다는 걸 알게 될 정도로, 겁없는 시절이 있었다. 혹은 그저 자기만족이었을지 모른다. 지금 자라는 눈높이에 손이 따라가지 못한다는건 슬픔을 넘어선 무엇이다. 돌처럼 단단하고 벽처럼 차가운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