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たし
겨울, 되새기며
호르텐시아
2007. 12. 5. 03:01
- My vegitable love should grow / Vaster than empires, and more slow
내 식물과도 같은 사랑은 자라나겠죠 /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 To his Coy Mistress, Andrew Marvell
- 책을 펼치다 우연히 발견한, 최근 가장 아름다웠던 말로 시작하고 싶었다. 한때 좋아하던 작가의 단편 중 위의 싯귀에서 인용한 제목이 있다. 이렇게 또 한 가닥의 시냅스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서로를 잇는다. 마벨의 시와, 르 귄의 픽션.
[세계는 딱히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나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다른 일에는 대범하게, 되는 대로 명랑하게 지내는 편이 좋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은 분명히 있다. 그래서 노력했다. 할 수 있는 한. 그것만큼은 유일하게 내 손으로 결정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가끔 한없이 슬퍼지면, 위의 말을 곱씹었다. 활자란 생각보다 쓸 만한 진통제다.
학기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뭘 얼마나 했는지 조심스럽게 되새겨 본다. 그 동안, 정말로 할 수 있다 싶은 건 모두 했다.
발표는 모두 여덟 번 했다. 그냥 신청해서 한 발표는 여섯 번, 즉석에서 나가서 한 발표는 두 번. 레포트는 네 개. 세 개는 영어, 하나는 한글.
매주 영어로 토론을 하고, 모두 열세 편의 영어 에세이를 써서 냈다. 주제는 보통 '엘리엇과 예이츠의 시, 조이스의 단편에 드러난 성적 사랑에 대한 태도를 서술하고 당시의 상황과 관계지어 논하시오' 같은 것들이었다. 영작 튜터로 봉사했다. 네 편의 활동보고서와 열두 편의 영작에 관한 어드바이스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외 사소한 숙제들이 몇 개 있었지만 잊어버렸다.
시와 희곡, 단편을 읽었다. 셰익스피어 희곡 여섯 편을 두 번에 걸쳐 읽고, 바이런과 셸리의 장시를 읽었다. 호손과 헤밍웨이, 런던과 트웨인, 조이스의 단편을 읽었다. 휘트먼과 디킨슨, 파운드와 엘리엇의 시를 읽었다. 낭만주의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영국사와 미국사를 읽었다. 한 편 한 편 읽어나갈 때마다 찌르는 듯한 고통과 기쁨이 동시에 엄습했다. 처음엔 충실한 수업 준비를 위해, 나중엔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책상 앞에 앉았다.
약간이지만, 셰익스피어의 운문을 번역해 보았다. 연극을 했다. 배우 겸 의상 담당을 맡았다. 시간을 쪼개 말하기 대회에 나갔고, 말하는 법 첨삭도 받았고, 영시 낭송 대회도 나가 USB를 얻어왔다. 스스로가 좀 우스꽝스러웠지만 어쨌든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해보았다. 안 한 것보단 나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그들을 벗으로 여기진 않았지만, 적절한 예의와 호의를 갖고 대했다. 영작을 도와 주거나 설명을 해 주고, 필기도 필요하다면 복사를 떠 주었다. 어차피 지식이란 종이에 적은 글줄에 불과하니, 얼마든지 나눠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내 머릿속에 감흥과 이해의 궤적이 살아 있는 한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사람과 그레이하운드를 동시에 뛰게 하면, 사람은 지치지만 그레이하운드는 지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레이하운드는 목적지까지 얼마나 먼지, 지금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학기가 꼭 그랬다. 주어진 것들을 했다. 잘 자고, 충실히 먹었다. 어쩌면 이번에 고른 영문학도 심리학처럼 쉬운 전공일지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많은 전공들에 비해. 곁에서 얘기를 들으면, 모두가 정말로 힘들게 뭔가를 해내고 있다. 그러니 나만이라도, 이토록 쉽게 사는 나만이라도 배움 앞에 불평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일단 하기로 마음먹으면 다른 가능성은 모조리 잊어버리는 나는, 바보일지 모른다. 손가락을 자르기로 결정한다면(물론 힘든 결정이겠지만) 오로지 자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그럴 땐, '자르지 않으면 안 될까' 따위의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어리석은 희생도 가능할 것만 같아 무섭다.
지금의 눈엔 모든 게 명확해서, 단지 커다란 그림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 갈 뿐이다. 하고픈 게 있고 해야만 하는 게 있다. 그 길을 따라 두려움 없이 조금씩 나아간다. 뭘 하려 하는지 말할 필요는 없다. 실천으로 보여주면 된다. 많이 다쳐 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많은 걸 사랑하고, 한없이 믿어 보고자 애쓸 수 있다. 아직은, 아직은 젊다고. 어쩌면 매 순간순간 지독한 뒷맛을 남기는 절망마저도 내 나이의 특권이라고, 그렇게 여겼다.
그래도ㅡ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내 손으로 내 팔을 부러뜨리거나, 불구로 만들거나, 가난해질 수는 없었다. 각박한 유년 시절도 가족간의 불화도, 나는 결코 온몸으로 체험하지 못했다. 몰이해의 벽은 늘 높았고, 그 언저리에 무력하게 부딪치는 내가 있었다. 텍스트는 구원이자 위안인 동시에 거의 유일한 추체험의 기회였다. 상처주고 싶지 않았는데 상처를 주었을 때, 이유 모를 미움을 살 때, 가장 열심히 읽었다. 내게 상처주고 나를 미워하는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내민 손을 밀쳐버리는 타인이 느낄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지금도 많은 말들이, 혹은 내가 그저 지어냈을 많은 말들이, 무거운 추처럼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아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린 교묘한 말들- '넌 가난을 몰라' '넌 부러울 게 없어' '넌 아직 덜 겪어 봐서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넌...' 에 대항해 싸웠다- 쉽게 포기하고, 쉽게 미워하고자 하는 자기합리화에 대항해 싸웠다. 가장 냉정한 눈으로 인간을 보고 싶었다. 계속 사랑하고 싶었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돌아서고 잊어버리는지, 자신이 입은 상처엔 예민하면서 남에겐 무심코 상처입히는지, 얼마나 불평 많고 못 믿을 기만적인 존재인지 똑똑히 알면서도- 혹은 그 이상의 것을 알아도 그저 좋아하고 싶었다. 말 없이 싸울 일들은 늘 많았다.
그래도 가끔 잿빛 하늘에 달이 검게 녹슬고 가장 믿고 사랑하는 이가 던진 날카로운 말이 가슴에 박혀 사라지지 않을 때면 난 마치, 쓴 맛 나는 절망의 과육으로 가득 찬 과일 같았다. 얇은 껍질 사이로 행여나 즙이 배어나오지 않도록, 쓰고 독한 감정으로 타인을 더럽히지 않도록, 조용히 울었다. 가끔은 정말로 무거웠다. 모든 것이.
내겐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재능이나 수완이 부족해서 일분 일초를 사는 것답게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남아 있지 않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 빈 주머니로 꼿꼿이 서서 웃을 수 있도록. 어떻게 될지 잘은 모른다. 인간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변하고 또 변해 간다. 앞으로 다른 누가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변해 갈 자신을 상상한다. 다만 한 가지만, 이것만큼은 꼭 10년 동안 지켜 갈 수 있도록, 해보자. 언제나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상냥하도록. 비록 완전하지 못할지라도, 결국 누군가에겐 상처와 실망을 남길지라도, 최소한 노력만큼은 멈추지 말자고. 나를 싫어하는 이의 장점을 냉정하게 인정하자고. 그 모든 대가는 내가 짊어지고 간다고. 더욱 강해져야 지켜낼 수 있으니, 지금 겪는 슬픔과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리고.
밖에선 이런 얘기는 모두 비밀로 하고, 더 많이 함께 웃고 웃길 수 있도록 말이지. 하하하.
눈 앞의 한 사람에게 털어놓고 짐지우기엔 부끄럽고 미안한, 그러나 자꾸 쌓여 호흡을 짓누르는 말을 이렇게나마 블로그에 적으면, 누구도 무겁지 않으니까 다행이다.
"But my body was like a harp and her words and gestures were like fingers running upon the wires..."
"그러나 내 육체는 하프와도 같았고 그녀의 말과 몸짓은 현을 훑어내리는 손가락과도 같아..."
- Araby, James Joyce
두서 없는 글을 조금 더 두서 없는, 아름다운 말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이제 잠이 들고, 내일은 다시 공부할 수 있다. 기쁘다. 곁에 사랑이 있다. 조금 다른 언어로 이루어진 이야기와 이야기를 쓴 이들이 전해 주는 수많은 형상의 사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