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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6. 메모
호르텐시아
2007. 12. 8. 13:32
- 최근 읽는 책에서 발췌.
"독학한 사람과 정규적인 공부를 한 사람과의 차이를 그는 이렇게 설정한다. 독학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배웠다. 그의 교양은 자기 자신의 인격의 한계 내로 제한되어 있다. 반대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골고루 다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장점은 엄청난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보기에 자신으로서는 별 흥미도 없는 지식들을, 나아가서는 싫어하는 지식들 또한 습득해야 한다는 것을 더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마음의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건대, 중고등학교 때 멋모르고 외웠던 지식들이 끝내는 도움이 되고 있다. 망토를 만들기 위해 천을 끊으러 갈 때 써먹은 직물에 대한 지식은 중학교 시절 가정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다. 고등학교 기말고사를 앞두고 최대의 골칫거리였던 달과 지구의 3차원적 관계는, 마침내 시계도 없이 헤매던 세비야의 뒷골목에서 하늘에 떠 있는 반달의 위치와 크기만으로 길을 찾아낼 수 있게 해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손을 들어 설명한다: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고. 상대는 납득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문제의 개념을, 참혹하기 그지없었던 고1 시절의 공통수학 시간에 처음 배웠다는 걸 깨닫고 놀란다. 세계가 내 몸처럼 무수한 분자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는 화학의 계시는 심지어 우울한 날마다 마음을 위로해 준다.
좋아하는 과목만 골라 배울 수 있었다면 현재의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기호와 지식의 폭 역시 줄어들었을 테고, 표현도 지금보단 덜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고등학교 정규과정을 마친 우리나라 학생들은 그 어떤 나라 학생들보다도 훨씬 다채롭고 풍부한 마음의 양식을 짊어지고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신입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당황스럽다. 노고의 결과물이 어째서 이렇게 보잘것 없는 걸까? 왜 배운 걸 뼛속까지 써먹지 않는 걸까? 무엇이 부족한 걸까? 어쩌면 단순한 지식의 축적만으로는 생각의 편협함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춤은 공부하는 사람을 위한 특효약이다. 영어와 독일어와 한국어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평의 너머에서 가져온 싱그러운 깨달음이 여기 있다. 뻣뻣한 몸과 어설픈 동작, 부끄러움, 터질 듯한 자의식, 민망하기 이를 데 없는 기분 등등을 모조리 극복한 뒤에야 간신히 결실이 찾아오긴 하지만, 어쨌든 충분히 가치가 있다. 춤을 배우고서야, 나는 비로소 내 골반이 어디 붙어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으니까.
좋은 거 하나 알려드리자면- 뚱뚱하든, 키가 작든, 얼굴이 진상이든, 춤 잘 추는 남자분은 그 자체로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내가 크리스마스에도 솔로인 건 이놈의 술배/골계미/여드름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절대 춤을 배워보시라.
- 누군가를 생각없이 비난하고 싶을 때마다 "그놈은 이기적이야", 비난하고 싶은 부분에서 보편적 특성을 뽑아내어 자신에게도 적용하는 연습 "사람은 다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며? 넌 걔와 뭐가 다른데?". 부담스러운 메커니즘이긴 하지만 굳이 장점 하나를 꼽는다면, 남을 비난하기 직전에 저절로 입을 다물게 된다. 대신 맘껏 뒷담화를 까며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게 된다. 어느 쪽을 포기하는 게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독학한 사람과 정규적인 공부를 한 사람과의 차이를 그는 이렇게 설정한다. 독학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배웠다. 그의 교양은 자기 자신의 인격의 한계 내로 제한되어 있다. 반대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골고루 다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장점은 엄청난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보기에 자신으로서는 별 흥미도 없는 지식들을, 나아가서는 싫어하는 지식들 또한 습득해야 한다는 것을 더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마음의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건대, 중고등학교 때 멋모르고 외웠던 지식들이 끝내는 도움이 되고 있다. 망토를 만들기 위해 천을 끊으러 갈 때 써먹은 직물에 대한 지식은 중학교 시절 가정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다. 고등학교 기말고사를 앞두고 최대의 골칫거리였던 달과 지구의 3차원적 관계는, 마침내 시계도 없이 헤매던 세비야의 뒷골목에서 하늘에 떠 있는 반달의 위치와 크기만으로 길을 찾아낼 수 있게 해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손을 들어 설명한다: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고. 상대는 납득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문제의 개념을, 참혹하기 그지없었던 고1 시절의 공통수학 시간에 처음 배웠다는 걸 깨닫고 놀란다. 세계가 내 몸처럼 무수한 분자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는 화학의 계시는 심지어 우울한 날마다 마음을 위로해 준다.
좋아하는 과목만 골라 배울 수 있었다면 현재의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기호와 지식의 폭 역시 줄어들었을 테고, 표현도 지금보단 덜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고등학교 정규과정을 마친 우리나라 학생들은 그 어떤 나라 학생들보다도 훨씬 다채롭고 풍부한 마음의 양식을 짊어지고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신입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당황스럽다. 노고의 결과물이 어째서 이렇게 보잘것 없는 걸까? 왜 배운 걸 뼛속까지 써먹지 않는 걸까? 무엇이 부족한 걸까? 어쩌면 단순한 지식의 축적만으로는 생각의 편협함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춤은 공부하는 사람을 위한 특효약이다. 영어와 독일어와 한국어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평의 너머에서 가져온 싱그러운 깨달음이 여기 있다. 뻣뻣한 몸과 어설픈 동작, 부끄러움, 터질 듯한 자의식, 민망하기 이를 데 없는 기분 등등을 모조리 극복한 뒤에야 간신히 결실이 찾아오긴 하지만, 어쨌든 충분히 가치가 있다. 춤을 배우고서야, 나는 비로소 내 골반이 어디 붙어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으니까.
좋은 거 하나 알려드리자면- 뚱뚱하든, 키가 작든, 얼굴이 진상이든, 춤 잘 추는 남자분은 그 자체로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내가 크리스마스에도 솔로인 건 이놈의 술배/골계미/여드름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절대 춤을 배워보시라.
- 누군가를 생각없이 비난하고 싶을 때마다 "그놈은 이기적이야", 비난하고 싶은 부분에서 보편적 특성을 뽑아내어 자신에게도 적용하는 연습 "사람은 다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며? 넌 걔와 뭐가 다른데?". 부담스러운 메커니즘이긴 하지만 굳이 장점 하나를 꼽는다면, 남을 비난하기 직전에 저절로 입을 다물게 된다. 대신 맘껏 뒷담화를 까며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게 된다. 어느 쪽을 포기하는 게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