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향한 말

INTP는 냉혈한이 아니야

호르텐시아 2009. 3. 30. 01:54


7년차, 네 번째로 검사지를 다시 손에 들었다. I, N, T, P. 똑같다. I가 주욱 올라와 E 옆에 서고 N과 S는 2점 차, 심지어 P도 주욱 내려가 J 근처로 갔다. 사람들 속에 억지로 자신을 밀어넣고 구체적인 팩트를 인용하고 바쁜 스케줄에 익숙해지면서 노력한 결과물, 다시 말하면 밋밋한 인간 (웃음)

하지만 T만큼은 여전히 20점을 훌쩍 넘는다. Thinking. 기준하여 좋고 싫음보다 옳고 그름이 우선. 처음 받았을 때는 충격을 받았다. 여성의 약 70%가 F란다. 정이 많고 상냥하고 사람을 잘 챙기며 마음 씀씀이가 좋고 잘 웃는, 무엇보다 양털처럼 따뜻한 F란다. 미안, 나머지 30%에 해당해 버렸다. 게다가 INTP는 남들의 사적인 얘기나 사교나 인간적인 부분에 관심이 없고 거만하며 추상적이고 지적이란다. 뭐 그렇다.



그래도 말이야,

이런 내게도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 정도는 있어.


있는 그대로의 너를 기억해.
타인과의 싸움에 상처를 입었을 때, 감정적으로 다쳤을 때, 자기혐오에 시달릴 때, 
네가 지닌 용기와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다시 알려줄게.
네가 남기는 기록과 판단과 의미, 모두 기억해서,
나의 경험과 좋고 싫음을 모두 떠나- 너라는 유일한 사람의 총합을 보고 싶어.

로맨틱한 말도 따뜻한 손짓도 난 할 줄 몰라.
안부를 묻거나 사람을 챙기거나 미소짓는 것도 많이 서툴러.
그래도, 내게 넌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너니까.

난 여기에 있어.
늘 여기에 있었어.
시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네게 시간이 필요하면 여유를 줄게.
네게 거리가 필요하면 거리를 둘게.
쉽게 변하는 호오도, 대가를 바라는 의존도 내겐 없으니.


네가 내게 상처입혀도 나는 괜찮아. 아마 너보다 둔할 테니까.
네가 잔인한 진실을 말해도 나는 괜찮아. 그게 팩트라면 견딜 수 있어.
네가 따뜻한 말이나 관심, 표현을 보이지 않아도 나는 괜찮아.
약간의 감정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네가 적이 되어도 너에 대한 평가는 변하지 않아.
내가 기억하는 너의 장점, 재능, 가치, 모두 그대로니까.

나도 가끔 상처를 입어. 그래도 아마 좀더 빨리 아물지 몰라, 이렇게.
네가 상처주려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네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네가 내 생각을 해서 그랬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쓰게 웃고 잠자리에 들면 내일이 찾아온다는 사실은 검증된 최강의 팩트, 당연하잖아?



네가 날 좋아하지 않아도, 넌 여전히 한 사람이야.
내가 아닌 누군가에겐 틀림없이 좋은 사람일.
내가 널 좋아하지 않아도, 난 네게 의무를 다해.
너도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상처입고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니까.

네가 날 미워한다는 이유만으로, 널 미워하지 않아.
네가 날 미워한다는 이유만으로, 네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냐.
네가 날 미워한다는 이유만으로, 네 가치를 폄하할 수 없어. 그건 옳지 못하니까.



너의 있는 그대로를 납득해.


이것이야말로 T일 수밖에 없는 내가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방식.

그러다 짓밟혀도, 어쩔 수 없지. 그땐 짓밟힌 것조차 팩트가 될 테니까.

슬프지 않은 게 아냐. 사랑할 줄 모르는 게 아냐. 냉혈한이 아니야. 그 말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