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LIFE
무서운 꿈을 꿨다
호르텐시아
2009. 7. 27. 05:02
소리지르며 깨긴 꽤 오랜만이다. (한숨)
밤 늦은 시간 불만 달랑 켜진 회의실에서 '불길한 수수께끼의 인물 A'를 잡기 위해 형사와 관련된 두어 명과 논의하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그가 홀연히 나타나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키가 큰데 현실에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인물과 꼭 닮았다. 나를 보고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하더니, 자기가 쓰고 있던 앙고라 털 검은 모자를 건넸다. 다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내 것인 검은 니트 모자를 벗어 둘이 비교하며 훝어보는데, 시간이 늦은 탓인지 형사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하나 둘씩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집에 데려다 주려다 회의가 길어져 늦게까지 남은 어떤 초등학생이 하품을 하며 문을 나가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황급히 뒤를 쫓아 나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회의실에서 꽤 떨어진 제 2회의실에서 어떤 걸인이 뛰어나와 그 아이를 끌고 들어가려는 것이다. 죽일 것이다! 뛰어가서 아이를 뺏으려고 했더니, 아이를 2회의실에 밀어넣어 버리곤 나를 붙잡는다. 자세히 보니 아까 회의실로 향하는 길에 눈이 마주쳤던 걸인이었다. 내내 마음이 켕겼는데 여기까지 뒤쫓아와 사람을 습격하다니. 손에 쥐고 있던 교통카드를 들어 눈 언저리를 치고는 마구 뛰어 돌아오긴 했지만... 영 불안했다. 신변의 위협이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펜의 SDL에서(;;) 친절한 원어민들에게 그 얘길 털어놓았다. 아무도 관심있게 들어주지 않았다. 그저 매일 적당히 얘기하는 가십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다. 덩치 큰 에밀리가 어꺠를 감싸안으며 다 말해 보라고 하더니, 내가 열심히 주절거리는 영어를 적당히 듣고 나서는 몸을 돌려 커피 주문하는 데 끼었다. 깡마른 폴 같은 경우엔 애초에 관심도 두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위험을, 절박한 감정을, 전달할 수가 없었다.
다시 밤이 되었다.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한 수사도 진행해야 하는데, 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이중으로 부담스러웠다. 회의실로 향하는 길에 사람들이 꽤 많이 앉거나 서 있는 학교 중앙광장을 지나치는데, 그 걸인이 마침 내 앞을 가로질러 어슬렁어슬렁 지나가는 것이다. 몸을 숨길 데도 없이 눈이 마주쳤다 (그 와중에도 나는 눈을 부라렸다. 덤벼 볼 테야?). 일단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니 소리를 질렀다. 그 걸인은 그저 씩 웃더니 뭔가 중얼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주변 사람들이 일어나더니 하나 둘씩 날 붙잡는다. 약한 힘이지만 분명했다. 그들은 걸인의 듯대로 움직이고 있다. 조종당하는 걸까? 오싹 소름이 끼치며 강한 예감이 들었다. 이 꿈에서는, 이 내러티브 상이라면, 나는 끝이다!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살려줘.
깨고 나서는 뒤끝에 남아 있는 공포보다도 오히려 공포 밑바닥에 있는 끈적함이 더 맘에 걸린다. 들어주지 않는다. 도와주지 않는다. 저 스토리에서 가장 무서운 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