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교토
2009, 교토- 니죠죠, 휘파람새의 성
호르텐시아
2009. 7. 29. 02:51
"… 절은 어둠 속에서 청동 뿔이 달린 무거운 투구를 쓰고 칼 두 개와 비단 부채를 지니고 매복하고 있는 거대한 사무라이 같았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천상의 두 나라, 279p
셰익스피어 수업 시간에 구로사와 아키라의 쿠모노스 죠, '거미의 성'을 감상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가부키와 노의 양식을 입은 맥베스의 재현으로서, 충직한 장군 와시즈는 거미의 숲에서 마녀의 예언을 듣고 북쪽 성의 주인이 될 마음을 품는다. 그의 아내 아사지는 레이디 맥베스보다도 강렬한 욕망의 소유자로 남편이 군주를 시해하고 대신 그 자리에 오르도록 부추긴다. 탐욕과 배신의 대가로 주어진 거미의 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거대한 성의 내부로 이르는 길은 좁고 어두웠으며 귀기를 띠었다. 그날 밤은 끊임없이 뱅뱅 돌며 이어지는 다다미방과 높이 솟은 망루의 꿈을 꾸었다.
이제 음산하고 장대한 이미지로만 간직했던 일본의 성을 직접 볼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한큐센 특급의 내부. 종점은 카와라마치. 들과 변두리 시가지를 가로질러 간다.
옛 무궁화호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 맞은편에는 일본인 모녀가 앉았는데, 즐거운 목소리로 내내 얘기를 나누었다.
그 모습을 안 보는 척 보고 있자니 서로 사이좋게 소풍 나온 기분이 들어 괜히 흐뭇했다.>
우메다 역에서 특급을 잡아탔다. 이후 여행길에서도 새삼 깨닫게 되지만, 교토에 머무는 이틀 내내 한번도 사철을 놓치거나 교통 때문에 시간을 뺏긴 적이 없었다. 뛰어가서 바로 타면 특급이었다. 심지어 시내를 가로지르는 복잡한 버스 노선에서도 한번 헤매지 않았으니, 교토를 노닐던 여행자의 신이 두 한국인을 어여삐 여겨 발에 행운의 주술이라도 걸어 준 걸까.
<이처럼 카와라마치 역 내엔 한글로 된 간판이 붙어 있다.
큰 역이나 지하철엔 한글 표기가 되어 있어 좀 나은 편인데,
그래도 시내에 들어가면 한자를 기본으로 읽을 줄 알아야 여행이 수월하다.>
놀랍게도 카와라마치 역엔 버스 노선도 하나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역내 서비스 센터의 직원들은 영어를 전혀 못해서, 역시나 일본어를 써야만 했다. 버스 노선도를 부탁하니 그런 건 없다며 흑백 프린트를 한 장 건네었다. 무심코 상단의 날짜를 읽었다. Kyoto City Bus Stop of Shijo Kawaramchi. Octo.2007. 이런 제길. 프린트의 앞장은 역의 요약도와 각 출구별 버스 노선이 표기되어 있었고, 뒤는 교토 시가지의 약도였는데 초심자에게는 과히 어려워 보이는 디자인이었다.
어째서 마땅히 있어야 할 컬러 버스 노선도가 없는가, 하고 나와서 마구 분통을 터뜨렸지만 어찌하랴. 일단 니죠죠로 향하는 12번 버스를 타기 위해 7번 출구로 향했다. 가는 비를 맞으며 십오 분쯤 기다리자, 탁한 연두색 바탕에 푸른 줄이 그어진 교토 시 버스가 덜컹거리며 우리 앞에 멈춰섰다.
타고 가는 동안 맵을 잘 읽어보니 차츰 방향이 눈에 들어왔다. 교토 시가지는 생각보다 구획이 잘 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큰 거리는 이치죠, 니죠, 산죠, 등으로 늘어나며, 남북을 관통하는 큰 거리는 센본, 카라스마, 카와라마치 등으로 고유한 이름이 있다. 거점인 시죠 카와라마치를 예로 들면, 동서의 시죠 거리와 남북의 카와라마치가 만나는 모퉁이의 정류장인 것이다. 친절하게도 버스 맨 앞에 달린 조그만 전광판이 부지런히 딩동거리며 다음 정류장을 알렸다. 하단에 영어 표기도 병행하고 있었지만 한자를 숙지하는 편이 더 빨랐다. 나중엔 슥 보기만 해도 어디로 어떻게 향할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니죠죠로 들어가는 카라몬(당문). 화려한 맛이 있다. 역시나 수많은 사람들이 멈춰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 안쪽에 보이는 것이 외부에 개방된 니노마루로 들어가는 입구.>
니죠죠는 교토의 여러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거주하기 위해 만든 어전이다. 히데요시의 시대는 그것으로 끝나고 이로써 최후의 막부인 도쿠가와 바쿠후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기세 좋게 폴짝 뛰어 내렸다. 호기롭게 문으로 걸어 들어가니 말라붙은 해자와 돌 다리가 있었다. 해자를 건너고 나서야 비로소 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마저도 처음 등장하는 건 니노마루(二丸)로서, 말하자면 바깥채에 해당한다. 영주가 기거하는 혼마루(本丸)로 가려면 다시 안쪽의 해자 하나를 더 건너야만 한다. 과연 엄중한 경계태세다.
니노마루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일절 금지였다. 노란 옷을 입은 지킴이들이 새된 목소리로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높은 천장을 인 대들보는 짙은 검은색에 가까운데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맨발을 마루에 조심스레 디디며 한 걸음씩 어두운 성으로 들어섰다. 다다미방은 모두 활짝 열려 있었으며 흰 잉크로 쓰여진 검은 팻말이 방의 이름과 용도를 알렸다. 둘둘 말린 시간의 배두렁이에서 오래된 목재와 바구미, 이제는 닳아버린 옛 위엄의 냄새가 풍겼다.
<쿠로쇼인을 지나 시로쇼인으로 돌아 나오려는 초입.
북서쪽으로 내내 이어지는 장방형의 미로 끄트머리에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난간이 있다.
어두운 성에 면한 정원수는 독을 머금은 듯 싱싱하게 푸르렀다.>
안은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웠다. 오직 창호지로 스며드는 오전의 엷은 빛이 채광의 전부였다. 통로는 좁았으며 전체적으로 다다미방을 에둘러 감싸고 있어, 언제나 나아가는 왼편은 창, 오른편은 방이었다. 열린 방의 저편 그림자 속에서 소나무며 호랑이, 목단꽃이 요염한 금빛으로 떠올랐다. 관광객의 소음이 없었다면 고적한 가운데 기괴한 아름다움을 풍겼으리라.
최초의 큰 방은 제후들의 대기실로서, 이어 인사와 헌납을 위한 다다미방이 따로 있었다. 좁은 그 방 옆을 지나자 다시 커다란 다다미방- 장군이 직접 지방 무관들을 대면하는 어전 격의 오오히로마가 등장했는데, 이것은 이치노마, 니노마 등의 보다 작은 다다미방 구조로 나뉘어져 있었다. 만일 그 시절처럼 미닫이문이 달려 있었다면 이는 이중 삼중의 은폐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뉘어진 다다미방의 더 안쪽엔 쵸다이가마에라는 무사은폐실도 갖추어져 있었다. 예기치 않은 닌자의 습격을 대비한 것이 아닐는지.
<다시 시로쇼인을 거쳐 쿠로쇼인으로 들어오면서. 유일하게 찍을 수 있었던 사진이라 아쉽다.
쇼인은 곧 서원으로, 서재뿐 아니라 장군의 거실 겸 침실 기능을 했다고 한다.
쇼인 안에선 산 사람 대신 펏펏한 피부의 여자 인형들이 헤이안 시대의 검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장군 인형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니죠죠는 성채가 아닌 전각으로서, 정치와 생활이 그 속에서 함께 이루어지는 현실적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성 내부의 공간은 남성적이고 음울했으며 비밀스러웠다. 높은 망루와 어두운 지하를 갖춘 영화 속 성처럼 연극적 비주얼이 가미된 압도적인 음산함은 아니었으나, 음험한 기운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채 씻겨 없어지지 않고 서까래와 들보 곳곳에 배어들어 보는 이를 짓눌렀다. 무수한 통로와 방들은 분명 산 인간을 위해 지어졌으되 궁극적 목적은 삶의 영위가 아닌 예방에 불과했다. 발 밑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휘파람새 소리, 우구이스바리의 마루가 몰래 빨아들이려 했던 죽음은 몇이나 될까? 창호지에 발라져 있던 작은 벛꽃 무늬만이 옛 사람의 온기를 간직한 흔적이었다.
<니노마루 어전을 돌아나와 혼마루로 향하는 길목의 정원.
옆의 건물은 아마 오오히로마를 거쳐 소테쯔노마로 이어지는 통로라고 추측된다.
네모난 건물들이 차곡차곡 잇달아 붙어 있다.>
엄마는 탁한 공기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빠져나오자마자 긴 숨을 쉬었다. 습도가 90%를 넘는다는 분지 지형, 교토의 여름이지만 계절 특유의 생명력은 종종 그마저도 잊게 한다. 무엇보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다른 무엇보다 강렬한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지센유카이식 정원의 아름다움. 교토의 신록을 보라는 말은 이것을 이름이었나.>
공기는 무게감으로 충만했고 입 속에 머금으면 진한 뒷맛을 남겼다. 열기 속에서 고요히 끓어오르는 선명한 녹색의 자취- 그것이 교토의 정원이다. 니노마루 정원을 설계한 이는 고보리 엔수로, 그는 히데요시를 위해서도 정원을 설계했다고 한다. 카잔차키스는 인간이 도달한 지혜와 관능의 최고봉이라는 말로써 그것을 칭찬했다.
<돌의 무늬와 나무의 그림자가 섬세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든 구조적인 아름다움이 눈에 남는다.>
<흰 수련 위에 누운 소나무의 그림자.>
정원은 둥글게 늘어진 물방울 모양의 연못과 그 속의 섬, 섬과 섬을 잇는 자그마한 돌다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연못을 둘러싼 식물은 제각기 다른 깊이를 지닌 초록으로 이글거렸다. 연못마저 신록을 비추다 못해 탁한 녹색으로 윤기가 흘렀다. 날씨만 맑았더라면 그보다 더 눈부신 형태로 도래한 여름을 찾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어두운 실내에서 나와, 혹은 창으로, 내다보며 느꼈을 조화로운 아름다움은 니노마루 어전의 장중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
예전에 약속한 인증샷을 찍어 올린다.
사실 좋은 사진 중간에 방해한 것 같아 죄송스럽지만.>
<위와 같으나 좀더 선명한 색감의 한 장.
저편으로는 넘어갈 수 없어,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연못의 절반 뿐이었다.
그마저도 매우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두 번째의 해자를 지나 혼마루 옆으로 들어섰다. 혼마루는 들어가 볼 수 없어, 옆의 정원을 돌아 지금은 불타버린 천수각터로 올라갔다. 돌 계단을 올라가자 슬슬 목덜미에 땀이 흘렀다.
<아래에서 올려 찍은 혼마루의 옆면. 나무의 결이 어쩐지 우수를 자아낸다.>
<천수각에서 내려다본 니죠죠의 풍경.
계속 여행을 거듭하며 알게 되지만, 상당수 절이나 신사가 에둘러 올라가는 산길이 있어
아래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킨카쿠지, 긴카쿠지, 키요미즈데라가 그 좋은 예.>
흙과 돌을 다져 평평하게 한 천수각 터에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물을 마시거나 난간에 기대어 풍광을 감상하고 있었다.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도리야키를 나누어 먹고 작은 벤치에 앉아 숨을 돌렸다. 가능하다면 세이류엔도 감상하고 싶었지만, 이후의 일정도 있었으니 힘을 아껴두어야 했다. 나갈 때는 더이상 정원에 눈을 빼앗기지 않도록 자갈을 밟으며 길게 돌아 나왔다. 카라몬 앞의 일본인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니 흔쾌히 카메라를 건네받았다. 한 가족의 가장인 듯, 뒤편엔 그 아내와 자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몸을 돌려 휘파람새의 성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