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
방백 7: 잠시, 멈춰서서 돌이켜보기
호르텐시아
2009. 8. 4. 22:40
어제의 방백 6을 한달음에 내리 적은 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일어나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조금 더 고쳐 적고, 마음에 담은 채 학교에 갔다. 그처럼 후유소요는 반추하는 생물이다. 이런 식이라면 전생엔 소였을 거다. 틀림없어.
꼬박 하루를 쏟아부어 생각을 되새기다 어느 순간, 자신에게 물었다. <과연 내가 본 게 전부일까?>
동틀녘의 지평선처럼 그 질문이 갑자기 마음을 열어젖혔다. 그저 놀라워하며 펼쳐지는 생각의 가장자리를 뒤쫓아 갔다. 체육관을 향해 올라가는 느린 걸음의 속도로.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지 못해 서럽다.>
- 나는 단지 소통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게 아닐까? 물론 정말로 대화가 어려운 사람도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말든 관심조차 갖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소통할 수 없다고 단정짓고 주위를 보면 정말로 소통불가능한 사람 뿐이다.
난 단지 겁을 내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낯선 선배들과 대화하는 게 수월치 못하단 핑계로 높은 파티션 뒤에 숨어, 달아나고만 있었던 게 아닐까? 혼자 책 속에 빠져 마음을 걸어닫고서? 먼저 자리에 와서 말 걸어주는 선후배들에겐 미안하잖아.
차분히 생각해 보자. 자리가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온다. 선배 셋이 떠나고 새로 온 여자 선배들이 자리를 잡는 시기다. 잘 지켜보자.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는지 보자. 지금이 기회일지 모른다. 기억해봐, 네가 먼저 좋아했을 때 분명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 주었다. 그러니 늦지 않았다. 시작이 좋지 않았다고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용기는 언제건 낼 수 있다. 상대를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것만으로 달라지게 할 수 있다.
<하고 있는 일에서 달아나기 위한 목적으로 일에 매달린다는 게 서럽다.>
-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일을 하고 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몰입하고 있을 땐 분명 일을 즐겼다. 프로그램 짜는 것도 즐기고 선명한 색채를 다루는 것도 좋아한다, 분명. 올라탄 큰 궤도는 맘에 들지 않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하나하나 집중해서 즐겁게 하고 있지 않은가.
가시적인 성과도 충분하다. 매트랩 강좌를 다운받아 무작정 하나씩 해보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실험을 완성해냈다. 공감각자 분들도 친절하게 많이들 도와주셔서 데이터도 쌓여 간다. 결과도 충분히 페이퍼로 써낼 수 있을 정도로 유의미하다. 선생님께서도 현재 병행하는 실험에 몇 개 추가해, 해외저널도 같이 준비해 보자고 하셨을 정도다. 장르가 다르다고 여기서 멈추기엔 많은 게 아깝다. 지금은, '어떤 걸 하려 하느냐'가 아니라 '해둔 게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점- 이미 잘 알고 있잖아.
물론 달아나기 위한 것도 좋다, 그러나 그 때문에 눈앞의 작은 즐거움까지 내버려 가며 힘들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최근에야 알았다. 극단적으로 돌변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공부에 집중한다면 블로그를 없애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변화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면 기존의 관계를 전부 끊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소용없는 짓이었다. 물론 공부에 집중했던 시즌엔 한없이 극단으로 치닫는 게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불필요하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힐 필요는 없잖아?
<무서우니까 종종 예전에 들었던 말에서 기억의 가리개를 조심스레 풀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내려다본다. ...그런 말들을 상기하여 두려움을 잊으려는 게 이미 수치스럽다. 수치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꼼짝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요즘 무섭다.>
- 그렇다, 무서웠다. ...몇 분 전까지는. 달아나려는 마음을 붙들어 앉힌다. 생각해봐, 사람은 변해. 과거에 들었던 말은 과거의 것으로 남겨둬야 해. 그건 지금의 내 몫이 아냐. 현실이 충분하다면 옛 것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되잖아? 냉정하게 말해 니가 예전에 진짜 천재였든 재능이 있었든 아니든간에 지금 당장 해놓은 게 없다면, 소용이 없어.
지난 학기에- 나는 누구보다 잘 해왔다. 1학기차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충분히 잘 했다. 이미 학기 마무리 글에도 썼듯이, 그것도 충분히 가시적인 성과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잖아. 예전에 무슨 말을 들었든 잊어버리자. 현재의 자신을 지탱하는 건 바로 어제의 성과다. 오직 그것만을 믿자.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무섭더라도, 무서워서 꼼짝할 수 없더라도 조금만 버티면 분명 괜찮아진다. 틀림없이.
<그 '재능'이란 게 있을까? 그것은 어떻게 발현될까? 모르는 일이다.>
-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 뭔가 쌓이고 있다. 멈춘 와중에도 움직임은 이어진다. 중요한 건 두려움을 버리는 일이다. 헛된 공상에 기대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걷고 있는 '이' 길은 아니다. 조금씩 확신이 굳어져 간다.>
- 그렇다면 놓치지 말고! 이미 community psychology를 전공한 연구교수님과 데이트 약속까지 잡아두지 않았는가. 그저 커피 한 잔으로 흘려보내지 말고 세심하게 준비해서 꼼꼼히 물어보자. '액티브'한 심리학에 대해서. 수요일에 열리는 초빙 강연도 가서 들어보자. 금요일에 오시는 분께도 calibration method를 제대로 배워두자. 마음에 안 든다면 드는 것을 찾아야 한다. 드는 것을 못 찾으면 대신 그 시간에 뭔가라도 익혀두어야 한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기회는 너무나 많다.
<무능하게 남기보단 노회하게 변하겠다. 밟거나 밟히는 선택지밖에 없다면 차라리 전자를 택하겠다. 최악의 경우라면 나의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최악>이 아니라면?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무능하지 않으면서도 친절할 수 있다. 밟지 않고서도 예의바른 방법으로 자신을 각인시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두려운 것 뿐이다. 두려워서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것 뿐이다. 이미 덕이 갖는 효용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 그 믿음을 너무 손쉽게 내던져 버리지는 말자.
매슬로의 말을 기억하자. 사람은 선한 동시에 강하며, 또한 성공적일 수 있다.
불안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엉켜드는 와중 단단하고 반짝이는 지면을 찾아 발을 올렸다.
여기서부터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변할 수 있다. 변화시킬 수 있다.
더 나아질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 지금보다 훨씬 더.
회의에 근거가 없듯 믿음에도 근거는 없다.
신문지에 불씨가 달라붙듯 전혀 터무니없을 것 같은 희망을 조금씩 확신으로 바꾸어 갈 뿐이다.
내겐 힘이 있다. 잊고 있었을 뿐.
들여다볼 수 있다면 바꿀 수도 있다. 나 자신을. 내가 체감하는 현실을.
나는, 내가 체감하는 현실을 바꿔나간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꼬박 하루를 쏟아부어 생각을 되새기다 어느 순간, 자신에게 물었다. <과연 내가 본 게 전부일까?>
동틀녘의 지평선처럼 그 질문이 갑자기 마음을 열어젖혔다. 그저 놀라워하며 펼쳐지는 생각의 가장자리를 뒤쫓아 갔다. 체육관을 향해 올라가는 느린 걸음의 속도로.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지 못해 서럽다.>
- 나는 단지 소통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게 아닐까? 물론 정말로 대화가 어려운 사람도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말든 관심조차 갖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소통할 수 없다고 단정짓고 주위를 보면 정말로 소통불가능한 사람 뿐이다.
난 단지 겁을 내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낯선 선배들과 대화하는 게 수월치 못하단 핑계로 높은 파티션 뒤에 숨어, 달아나고만 있었던 게 아닐까? 혼자 책 속에 빠져 마음을 걸어닫고서? 먼저 자리에 와서 말 걸어주는 선후배들에겐 미안하잖아.
차분히 생각해 보자. 자리가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온다. 선배 셋이 떠나고 새로 온 여자 선배들이 자리를 잡는 시기다. 잘 지켜보자.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는지 보자. 지금이 기회일지 모른다. 기억해봐, 네가 먼저 좋아했을 때 분명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 주었다. 그러니 늦지 않았다. 시작이 좋지 않았다고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용기는 언제건 낼 수 있다. 상대를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것만으로 달라지게 할 수 있다.
<하고 있는 일에서 달아나기 위한 목적으로 일에 매달린다는 게 서럽다.>
-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일을 하고 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몰입하고 있을 땐 분명 일을 즐겼다. 프로그램 짜는 것도 즐기고 선명한 색채를 다루는 것도 좋아한다, 분명. 올라탄 큰 궤도는 맘에 들지 않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하나하나 집중해서 즐겁게 하고 있지 않은가.
가시적인 성과도 충분하다. 매트랩 강좌를 다운받아 무작정 하나씩 해보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실험을 완성해냈다. 공감각자 분들도 친절하게 많이들 도와주셔서 데이터도 쌓여 간다. 결과도 충분히 페이퍼로 써낼 수 있을 정도로 유의미하다. 선생님께서도 현재 병행하는 실험에 몇 개 추가해, 해외저널도 같이 준비해 보자고 하셨을 정도다. 장르가 다르다고 여기서 멈추기엔 많은 게 아깝다. 지금은, '어떤 걸 하려 하느냐'가 아니라 '해둔 게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점- 이미 잘 알고 있잖아.
물론 달아나기 위한 것도 좋다, 그러나 그 때문에 눈앞의 작은 즐거움까지 내버려 가며 힘들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최근에야 알았다. 극단적으로 돌변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공부에 집중한다면 블로그를 없애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변화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면 기존의 관계를 전부 끊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소용없는 짓이었다. 물론 공부에 집중했던 시즌엔 한없이 극단으로 치닫는 게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불필요하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힐 필요는 없잖아?
<무서우니까 종종 예전에 들었던 말에서 기억의 가리개를 조심스레 풀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내려다본다. ...그런 말들을 상기하여 두려움을 잊으려는 게 이미 수치스럽다. 수치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꼼짝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요즘 무섭다.>
- 그렇다, 무서웠다. ...몇 분 전까지는. 달아나려는 마음을 붙들어 앉힌다. 생각해봐, 사람은 변해. 과거에 들었던 말은 과거의 것으로 남겨둬야 해. 그건 지금의 내 몫이 아냐. 현실이 충분하다면 옛 것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되잖아? 냉정하게 말해 니가 예전에 진짜 천재였든 재능이 있었든 아니든간에 지금 당장 해놓은 게 없다면, 소용이 없어.
지난 학기에- 나는 누구보다 잘 해왔다. 1학기차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충분히 잘 했다. 이미 학기 마무리 글에도 썼듯이, 그것도 충분히 가시적인 성과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잖아. 예전에 무슨 말을 들었든 잊어버리자. 현재의 자신을 지탱하는 건 바로 어제의 성과다. 오직 그것만을 믿자.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무섭더라도, 무서워서 꼼짝할 수 없더라도 조금만 버티면 분명 괜찮아진다. 틀림없이.
<그 '재능'이란 게 있을까? 그것은 어떻게 발현될까? 모르는 일이다.>
-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 뭔가 쌓이고 있다. 멈춘 와중에도 움직임은 이어진다. 중요한 건 두려움을 버리는 일이다. 헛된 공상에 기대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걷고 있는 '이' 길은 아니다. 조금씩 확신이 굳어져 간다.>
- 그렇다면 놓치지 말고! 이미 community psychology를 전공한 연구교수님과 데이트 약속까지 잡아두지 않았는가. 그저 커피 한 잔으로 흘려보내지 말고 세심하게 준비해서 꼼꼼히 물어보자. '액티브'한 심리학에 대해서. 수요일에 열리는 초빙 강연도 가서 들어보자. 금요일에 오시는 분께도 calibration method를 제대로 배워두자. 마음에 안 든다면 드는 것을 찾아야 한다. 드는 것을 못 찾으면 대신 그 시간에 뭔가라도 익혀두어야 한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기회는 너무나 많다.
<무능하게 남기보단 노회하게 변하겠다. 밟거나 밟히는 선택지밖에 없다면 차라리 전자를 택하겠다. 최악의 경우라면 나의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최악>이 아니라면?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무능하지 않으면서도 친절할 수 있다. 밟지 않고서도 예의바른 방법으로 자신을 각인시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두려운 것 뿐이다. 두려워서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것 뿐이다. 이미 덕이 갖는 효용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 그 믿음을 너무 손쉽게 내던져 버리지는 말자.
매슬로의 말을 기억하자. 사람은 선한 동시에 강하며, 또한 성공적일 수 있다.
불안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엉켜드는 와중 단단하고 반짝이는 지면을 찾아 발을 올렸다.
여기서부터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변할 수 있다. 변화시킬 수 있다.
더 나아질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 지금보다 훨씬 더.
회의에 근거가 없듯 믿음에도 근거는 없다.
신문지에 불씨가 달라붙듯 전혀 터무니없을 것 같은 희망을 조금씩 확신으로 바꾸어 갈 뿐이다.
내겐 힘이 있다. 잊고 있었을 뿐.
들여다볼 수 있다면 바꿀 수도 있다. 나 자신을. 내가 체감하는 현실을.
나는, 내가 체감하는 현실을 바꿔나간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