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LIFE
자리
호르텐시아
2009. 8. 21. 01:40
새로운 자리로 옮긴 지 며칠, 우연히 손이 닿아 스탠드가 켜졌다. 맙소사, 엄청나게 밝아! 놀라는 날 보며 옆 자리 친구가 빙글빙글 웃었다.
뭐야, 스탠드 안 켜고 지냈어?
아- 거기선 스탠드를 켜도 지금 자리랑 밝기가 같았어. 그래서 몰랐지.
뭐야, 크기도 지금 자리 반밖에 안 됐잖아. 엄청 열악한 환경이었군.
그냥 웃었다. 지금도 그때가 딱히 불편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좁은 공간의 다른 말은 아늑함이었고 파티션이 드리운 그늘은 오히려 마음을 고요하게 해 주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려고 머리를 굴려, 나름대로 맘에 드는 공간을 만들며 즐겁게 지냈다. 생각해 보면 어떤 환경에 있든 불평을 모르고 지내왔던 것도 같다. 비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새 자리는 책꽂이를 벽에 붙여 틔운 탓에 상당히 넓은데, 그 자리를 전부 쓰지 않는다. 눈 앞의 책꽃이가 끝나는 지점까지만 물건을 놓는다. 사실 혼자 쓰기엔 이전 자리도 충분했었다. 이따금 의자에 기대앉아 비워 놓은 책상 부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책상을 비워둔 만큼이 평소 내 맘 속 여유의 크기가 아닐까, 혼자 생각하기도 한다. 조금 덜 쓰고 덜 놓는데도 기분은 풍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