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The Scent of Copper Pennies- By Tim Pratt (2)
“산타 크루즈에서 오래 지냈나요?” 삼나무 거리를 따라 걸어가며 그녀는 내게 물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걷고 있었다. “아뇨. 몇 달 전에 여기 왔어요. 더도 덜도 아니고, 내키는 대로. 직장도 별로였고, 안 좋던 관계도 끝이 났거든요. 인터넷에서 일자리 지원을 했고 그 중의 한 곳이 여기였어요.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환점이었네요.”
적어도 메릴리의 관심사가 뭔지는 알 것 같았다- 삶의 돌쩌귀 같은 전환점, 많은 것들이 바뀌는 순간. “아아. 만일 노스 캐롤라이나에 머물렀다면 지금의 삶도 많이 달라졌겠죠.”
“오늘 밤에 날 만나진 못했겠죠.” 그녀가 말하며 팔짱을 끼어왔다. 팔 너머로 전해지는 그녀의 촉감은 따스했고 생기에 넘쳤으며 근사했다. 강조하건대 섹스만을 원한 건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밤을 아름다운 낯선 여인과 만나 하룻밤을 보내는 환상으로 지새운 걸 설령 신께서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저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고, 살갗을 직접 느끼고 싶었고, 따스함을 나누고 싶었다. 단 하룻밤만이라도 온몸으로, 홀로 있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갖고 싶었다.
“여기 장례 회관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묘지도 찾으려면 쉽지 않을 걸요. 캘리포니아에서만 유독 그래요.*”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녀가 말을 꺼내기 전까진. “희한하군요. 왜일까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부유하고 젊은 사람들이 여기 살아요. 인구통계학적으로 신선하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싶진 않을 거에요. 아마도.” 온화한 날씨였지만 그녀는 몸을 떨면서 숄을 여몄다. “누구라도 그럴 거에요.”
우리는 계속 걸어 담쟁이로 덮인 차고를 지나고 회반죽으로 장식된 벽을 지나쳤다. “사람들 틈에 섞여서 눈에 띄지 않는다고 했나요…?” 여전히 빈정대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 쥐색 셔츠와 청바지와 짧은 머리에 대한 아이러니한 촌평일지도 몰랐다. 문신이나 피어싱 따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남자를 향한.
“쉬지 못하는 혼령을 겁주어 쫓아내려고 축제가 생겨나요.” 그녀가 말했다. “그게 축제의 기원이에요. 우리에겐 우리 나름의 핼로윈이 있어요. 다른 문화에선 그게 '죽은 자의 날'이고, 거기선 혼령들을 몰아내기보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가까워요. 잘 달래서 본래 그들이 가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야만 할 때도 종종 있지만. 가끔 궁금해요, 잠재적인 영들이…”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생각들을 떨쳐버리려는 듯. “다른 의식들도 있어요. 사람이 죽은 직후 영혼을 떠나보내기 위해 여는 의식들 말이에요. 영혼은 머무르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북을 쳐서 겁을 주어 쫓아내요. 또 어떤 사람들은 거울을 감추어서, 영이 거울에 비춘 자기 모습에 넋을 잃지 않도록 막아요. 사람들은 죽은 자가 위험하다고 믿어요. 정확히 어떻게 위험할진 모르지만. 우리 나라에서 검정은 애도의 색이에요. 지금 걸친 것처럼요. 죽은 자들은 잘 보지 못해요. 만일 검게 차려 입고 그림자 속에 섞인다면 그들은 당신을 보지 못해요. 보지 못한다면 해칠 일도 없겠죠? 어떤 나라에선 흰빛이 애도의 색이지만 의미는 같아요. 잿빛도 마찬가지죠. 가면이나 북으로 죽은 자를 놀래켜 쫓아내든가, 혹은 보이지 않게끔 하든가…”
메릴리는 문이 닫힌 옷 가게의 돌 계단에 앉았다. 나도 그 옆에 앉았다. 그녀는 내게 기대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
“잠재적인 영에 대해서 말했었죠,” 내가 상기시켰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고, 몸을 움직여 좀더 가까이 붙었다. “언제나 속속들이 알려고 하는군요.” 그녀는 다정하고도 무심하게 말했다. 마치 심장이 11월의 공기에 노출되기라도 한 양 그녀의 말에 몸이 떨려왔다. 문득 추위가 느껴졌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대학에서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주가 움직이는 방식, 기괴한 자가당착, 놀랄 만한 패러독스, 전부 다. 갈림길의 신 같은 건 없어요. 우주가 곧 갈림길의 신일지니.”
난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연구’와 ‘슈뢰딩거의 새끼고양이’를 읽었고, 파인만의 강의록과 양자의 얽힘현상에 관한 최신 논문도 읽었다. 넓어지는 지평. 샬롯이 나와 이별하기 직전, 근시안적이고 따분하다고 취급당한 이래 내 세계를 좀더 넓혀 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다세계 이론 얘기군요, 맞죠?”
나는 말했다.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는 일들 전부에 대한 아이디어지요… 원자 수준에서부터. 우주는 선택을 만들어내는 대신 그저 사건을 일으킬 뿐이라든가. 그런 얘기인가요?”
“당신은 결코 수학을 잘하진 못했어요,” 메릴리가 말했다. “하지만 보통 핵심은 잘 꿰뚫었죠.” 그녀는 깊이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당신은 채플 힐에 살았어요. 어느 날 밤 당신은 극장에서 열리는 파티에 갈까 하다 직전에 포기해 버렸죠. 낯선 사람들 속에서 불편해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에요. 어쨌거나 대부분의 배우들은 젠체하는 얼간이들이었으니까요. 대신 당신은 바에 들러서 샬롯이라는 여자를 만났어요. 그녀는 실수로 당신에게 음료수를 쏟았고, 그때 당신은 사랑에 빠졌어요.”
난 그녀를 밀쳐냈다. “샬롯을 알아요?”
메릴리는 고개를 흔들며 포도를 내려다보았다.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반짝였다- 가로등 불빛에 비쳐 내 눈에도 보였다. “아니에요,마이클. 나와 샬롯… 우리의 존재는 상호배타적이에요. 만일 당신이 그 바에 가는 대신 극장 파티에 갔었더라면 거기서 또 다른 벽바라기를 발견했겠죠. 서로를 모르는 두 수줍은 사람이 방어를 풀지 않은 채 조심스레 대화를 나누었겠죠. 그녀는 아마 물리를 전공했을 거에요. 친구가 되었을지 모르고, 라이벌이 될 수도 있었고, 얘기를 나누거나… 혹 사랑에 빠지거나.” 그녀는 다시 머리를 흔들었다. 틀어올렸던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흘러내려 얼굴에 떨어졌다.
그녀는 낯설었다. 난 그녀가 낯설게 보이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낯설었다. 메릴리는 아름답고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저 아리땁고 낯선 이일 뿐이었다.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르는. 이미 난 지나치게 사로잡혀 버렸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나는 말했다.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내 말은, 당신은 지금 여기 있고…”
“아니에요.” 그녀가 날카롭게 말했다.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런 식으로는 아니었어요. 난 스스로를 농락했어요. 여기 오면 안 되었어요. 당신은 '그' 여자를 만났을 수 있었고 연애 사건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지만, 대신 샬롯을 만났고 그녀가 당신을 상처입혔어요. 당신의 중요한 부분을 망가뜨렸다구요.”
아팠고 쏘는 듯한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회복될 거예요.” 난 다소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날 쳐다보지 않았다. 메릴리는 줄곧 아스팔트 포도를 응시하며, 잘 조율된 단조로운 음색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 '캘리포니아의 이 부분만 유독 그래요' 라고 번역한 원래 문장은 'It's like that all over this part of California' 입니다. 어렴풋이 느낌은 오는데 뭐라고 표현할지 매우 애매하네요. 달리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