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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향한 말

social perception의 두 가지 에피소드: 우측보행에 관한 단상

1.

지난 월요일의 일이었다. 운동을 하러 화정에 올라갔는데 로커 앞마다 손가락 반 마디만한 뭔가가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카드꽂이였다. 들어갈 때마다 이용할 로커의 번호가 적힌 카드를 건네주는데, 그걸 꽂아두라고 친절하게 작은 설명을 달아 놓았다. 둘러보니 이미 몇몇 잠긴 로커 앞엔 보란듯이 카드가 꽂혀 있었다.

보는 순간 감탄했다. 이거, 대박인데. 그동안 카드를 받아서 들고 올라가도, 편한 위치의 로커가 열려 있으면 번호에 구애받지 않은 채 쓰곤 했던 것이다. 자연히 카드의 존재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언제부턴가 출입구와 로커룸 앞에 '지정된 번호의 로커를 이용해 달라' 는 공지가 붙여졌다. 추측컨대 체육관 측에서는 이 문제로 꽤 골머리를 앓은 것 같다(개인적으로는 체육관이 많이 붐비지 않으니, 그냥 각자 쓰고픈 로커를 쓰도록 놔둬도 이용엔 큰 불편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공지만으로는 별로 소용이 없었다. 일단 나만 해도 번호 상관없이 계속 쓰고 싶은 로커를 썼고, 심지어 카드를 샤워박스에 넣고 잊어버리는 바람에 두세 개를 한꺼번에 반납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처럼 눈에 띄는 위치에 카드꽂이가 생기자, '어쩐지' 카드를 꽂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성큼성큼 걸어가 카드를 꽂고픈 유혹이 간헐천 발작하듯 내면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왔다. 자, 어서 꽂아. 이렇게 깔끔한 플라스틱 카드꽂이가 생겼는데 네가 감히 꽂지 않고 배길쏘냐. 게다가 잠긴 로커 앞엔 전부 일치하는 번호의 카드가 꽂혀 있다구. 읽으며 웃을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정말 오래 망설였다. 평소 즐겨 쓰는 25번 로커를 바라보다 손에 들린 카드를 쳐다보기 몇 번,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가방을 어깨에 맨 채 엉거주춤 서 있었던 것이다.

왜 나는 그렇게 행동했을까? 로커 앞에 조그만 카드꽂이가 하나 생겼다는 이유로 나의 행동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 카드꽂이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잠긴 로커마다 그처럼 순순한 자태로 카드가 꽂혀 있었겠는가. 이것은 시지각(visual perception)- 단순히 봤느냐 보지 못했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카드꽂이 대신 같은 크기의 회색 직사각형 플라스틱을 달아 두었어도 물론 볼 수야 있었겠지만, 내 행동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카드꽂이와 회색 직사각형 플라스틱의 근본적 차이는 이것이다: '카드를 갖고 있다면 번호가 일치하는 로커 앞에 꽂으시오' 라는 암묵적 명령을 담고 있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카드꽂이는 그러한 명령- 즉 사회적 규범을 담고 있는 기물이며, 우리는 의식하기도 전에 그러한 규범을 파악하고 올바른 번호의 로커 앞에 카드를 꽂게 된다. 내가 즐겨 쓰는 로커가 비어 있다 해도 말이다. 즉 사회적 지각(social perception)을 통한 행동의 수정이 일어난 것이다. 타인 역시 규범에 따라 행동하고 있음을 '발견'할 때 거부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만큼 사회적 규범의 힘, 나아가 규범을 따르게 만드는 사회적 지각의 힘은 강력하다. 이것이야말로 '상황은 의지보다 강하다'는 사회심리학의 캐치프레이즈를 반영하는 사례다.

그런데 왜 똑같이 사회적 규범- '카드 번호에 맞는 로커를 쓰세요' -을, 그것도 심지어 글씨로 똑똑하게 명시하고 있는 공지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입구에 붙어 있는 종이쪽지는 우리가 로커룸에 들어가서 어떤 로커를 고를지, 손에 쥐고 있는 카드를 어떻게 할지와 관련된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카드꽂이는 '카드를 꽂아야 올바를' 상황을 만들어낸다. 반면 문구는 그저 문구로 남을 뿐이다. 쓱 보고 지나쳐 로커룸으로 들어가 버리면 끝이다.



2.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사회적 지각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사례는 꽤 다양하다. 가령 체육관에 올라가려면 도서관 옆의 정류장에서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데, 학기 중엔 이용객이 많아 언제나 붐빈다. 이때 가장 먼저 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셔틀버스 입구의 오른편을 선점하면 된다. 사람들은 대개 왼편에 줄을 서서 들어가려 하는데, 정작 나오는 사람들은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을 먼저 내딛기 때문에 몸의 움직임 자체가 약간 오른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왼쪽에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내리는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주춤하며 물러서게 된다. 내릴 사람이 전부 내린 직후, 그들이 주춤하는 짧은 휴지(pause)를 이용하여 잽싸게 올라타면 되는 것이다.


3.

1과 2의 사례를 생각할 때, 각기 한 가지씩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번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명시적 규범이 아니라 상황에 관련된 암묵적 규범이다. 두번째, 인간의 움직임은 다소 오른쪽으로 편향된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결론을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최근 지하철에서 홍보 중인 우측보행 문제로 생각이 쏠린다. 지금 지하철엔 우측보행의 장점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광고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계단엔 감색 바탕에 하얀 글씨로 '우측보행'이라고 새긴 스티커들이 붙어 있다(가 떨어져서 사람들의 발에 채이기도 한다). 돈도 꽤 많이 들었을 텐데, 정작 우측보행을 실행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사실 이번 뿐 아니라 이전의 에스컬레이터 두줄서기 홍보도 딱히 효과를 본 것 같지 않다.
 
나는 이러한 난항의 원인을, 앞서의 두 사례를 통해 언급한 사회적 지각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싶다. 우측보행이 유용한 이유를 아무리 열심히 벽보에 써서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한 설명이 사람들이 실제 걸어다니는 '상황 속'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행을 할 때 자연스레 오른편으로 움직여 걸어가도록 상황을 조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상황을 조정하려면 사회적 지각을 유발하는 무언가를 설치하여 의식하기도 전에 몸이 '알아서' 규범에 반응하게끔 해야 한다.

가령 상하 에스컬레이터의 운행 방향을 바꾸는 것은 의미 있는 사회적 지각을 불러일으키는데, 보통의 에스컬레이터는 왼편이 상향이기 때문이다. 오른편 에스컬레이터가 위로 올라가도록 바꿔놓으면 나아가던 사람은 움찔하며 오른편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하지만 그러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던 모 역 에스컬레이터는 출퇴근 한 시간 외엔 가동을 완전히 중지하고 있기 때문에 분노를 사고 있다. 제발 보행자를 위해 예산을 좀 써라!).

공지와 스티커에 돌아갈 예산을 조금 떼어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돌아가게 되는 장애물이나, 보행에 영향을 미치는 기물을 설치하는 편이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훨씬 효율적일 수 있지 않을까. 사례 2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람의 몸은 다소간 우편향이며(이는 대다수의 사람이 오른손잡이인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혹시나 관련 논문을 발견하게 된다면 보고하겠다), 이는 우측보행으로 유도하기에는 유리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정확히 같진 않지만 지하철의 설명도 다소 비슷한 구석이 있다). 특히 모퉁이를 도는 순간이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 무의식중에 먼저 내딛게 되는 발이 오른발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좋겠다.

이와 같이 사회적 지각에 대한 연구와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 간에 작은 접점을 제시해 보았다. 지하철 공사에서 사회심리학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을 한번쯤 고려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웃음)



뭔가 큰 이슈는 아니지만 사회적(?)인 글이라 뉴스비평에 보내보았다. 사람들이 괴롭히면 그때 내려야지. 후후.


P.s. 1번 관련하여- 그래서 결국 그날 어떻게 했냐고? 카드를 꽂고자 하는 강력한 유혹을 마구 흔들어 떨쳐내고 25번 로커에 가방을 놓으며 씩 웃었다.상황이 강요하는 규범의 존재를 파악하고 의식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를 드러내 보이고 싶었거든. 하지만 두 번은 못할 것 같다. 다음엔 굴복해 드릴테니 이번만큼은 기념으로 반항하겠어. 어쨌든 카드를 앞에 꽂아두면 이제 앞으로 샤워박스에 넣고 잊어버리는 일은 없겠지. 여러모로 편리한 좋은 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