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내가 우연하게도 이미 가진 자들 사이에 세계의 부를 순환시키고 있는 거대한 파이프에 구멍을 뚫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파이프에서 어마어마한 속도와 힘으로 돈이 쏟아져 나오면서 내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나는 <작은 것들의 신> 속의 모든 감정, 모든 작은 느낌이 모조리 은화(銀貨)로 교환되어 버렸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조심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나 자신이 은으로 된 심장을 가진 은색의 형체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 아룬다티 로이, 9월이여, 오라, 6p
이 글귀 자체를 처음 접한 것은 작년 8월이지만, 책을 다 읽은 것은 오늘이었다. 다시 한번 앞으로 돌아가 펼쳐보았다. 두 번 읽고 다섯 번 읽어도, 그 어떤 소설의 구절조차 능가할 정도로 아름답다.
비밀 블로그에 적어두었던 첫인상을 다시 옮겨본다.
<... 개인적으로는 몹시 마음이 아팠다. 세상 어딘가에 은화의 홍수에 상처를 입는 고결한 마음이 존재한다. 어떤 존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타는 듯한 기쁨을 남긴다. 그 기쁨은 때로 아픔에 가까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자본주의 논리를 따르기 때문이며 그 논리에 따라 살지 않는다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추상적인 형태의 자본, 소비, 소유가 가하는 폭력을 깨닫는 것만으로 가끔은 여기, 우리 자신에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리고,
"예를 들어, 한 학자가 학자이기를 그만두고 남들의 절망과 불행을 먹고사는 기생충이 되는 것은 어떤 순간일까요? 연구비의 출처가 학문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요? 우리는 세계은행의 돈으로 행해진 연구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연구들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은 세계적 상황에 대해 공평무사한 관찰자일까요? 세계은행이 지원하는 연구들은 아무 사심이 없는 것들일까요?"
- 같은 책, 40p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이라는 주박은 이 바닥에도 알게 모르게 깔려 있다. 지금 하고 있고 앞으로 하게 될 연구가 빈곤과 기아에 대한 방치, 소수자에 대한 착취로 연결될 가능성은 상당히 적어 보인다. 그러나 과연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연구하는가- 연구 결과가 누구의 손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 것인가는 반드시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적어도 사회과학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