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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전인적 인간의 이상 실현을 위한 방안

우리는 누구나 여유를 갖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어하지만, 생활의 제약 때문에 그렇게 하기 어렵다. 반드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곧 직업이 되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전문직이나 공직에 취직하지 않는 한, 돈을 벌기 위해서는 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 방법이다. 이 기업은 자본주의의 원리에 따라 철저하게 이윤을 추구하며, 최소의 임금 하에 사람들의 노동과 노동력을 최대한도로 이용하려 한다. 자연히 기업에 고용되어 일하다 보면 개인의 자기 실현 욕구는 묵살되며, 심한 경우엔 생존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적인 경제력만 유지 가능하다.

  이것은 단지 한 개인의 일이 아니라 갈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본이 거대해지고 그 힘이 강해질수록, 더욱 많은 평범한 개인들이 프롤레타리아로서 그 아래 종속된다. 작업이 단순화되고 능률적으로 변할수록 개인의 능력이 발휘되는 부분은 적어지며, 사람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부속품에 더 가까워진다. 개인이 단신으로 맞서기에 현대 사회의 자본은 지나치게 거대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대다수가 자신이 어떤 관계와 상황 속에 처해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 및 금력을 지닌 계급과 그들에게 봉사하는 여론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거대 자본에게서 개인의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하는 집단들에 대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대상으로 매도한다. 매스미디어에서 조장하는 사고방식은 부르주아지에 속하지 않는 대다수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단결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레드 콤플렉스 역시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현대의 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일까. 일단 두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합법적이고 철저한 규제와, 무상 공교육의 확대이다.

행정부는 현재 자본주의 원리에서 파생되는 권력에 대응할 만한 권력을 갖춘 거의 유일한 기관이다. 다만 부르주아지의 입장에 선 소수가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원활하고 효과적인 규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번에 큰 개혁을 시도하려고 하면 자연히 거센 반대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결국 큰 구조와 연계된 작은 구조의 문제부터 파악하고 개선하여,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운영되는 행정적 인프라스트럭처를 형성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즉 사사화(私事化)한 사회문제를 다시 공사화(公事化)하는 과정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 자금의 이동 경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필요한 곳에 쓰이도록 감시하는 역할이다. 가령 예로 자연 재해 성금 관리를 들어보자. 이것은 비교적 사소한 문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모아진 금액을 관리할 담당 기관을 정해, 금액의 규모를 파악해 공개하고 각 지역이 입은 피해의 정도에 따라 올바르게 배분하고 시급한 복구에 운용한다면, 정부가 애초에 투입했어야 할 예산을 아낄 수가 있다. 그 남는 예산으로 다가올 재해에 대비할 수 있는 경보 시스템 및 장기적인 안전시설을 구축할 수도 있다. 작은 문제의 해결이 큰 문제의 해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이 정도의 체계와 투명성조차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작은’ 문제가 잘 짜인 구조 속에서 양식(良識)적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며, 더 나아가 장기간에 걸쳐 자본을 규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 정부가 정말로 해야 할 일이다. 누가 1번 문제의 남아도는 유효자금을 끌어내 한국에 공적 투자를 하게끔 만들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런 곳에 ‘정치’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교육은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한다. 여기에 자본이 개입한다면, 자본은 당연히 개인이 지닌 자질과 능력을 우선적으로 배양하기보다는,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노동력의 형태로 키워내려고 할 것이다.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산학협동이 아주 좋은 예이다. 얼마 전의 고대파문은 그 와중에 빚어지는 다양한 갈등 중 한 단면이다)

  일단 교육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의 원리와 그 원리와 개인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폐해는 무엇이며 어떤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가감 없이 가르칠 수 있다. 사회현상에 대한 객관적인 통찰과 비판이 가능한, 의식 있는 다수를 양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일단 무상 공교육이 실시되는 것이 첫번째이고, 입시 과열 등의 다른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결국 과열된 입시경쟁은 좋은 대학을 선호하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직업을 얻기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유상/무상의 여부를 떠나 이미 교육이 자본과 맺고 있는 관계는, 앞서 언급한 정부의 구조 개혁이 어느 선 이상으로 실행되기 전엔 달리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미리 염두에 둔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두번째이다. 이 두 문제가 해결되면 전인격적 성장을 목표로 하는 커리큘럼이 비로소 완성되고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계의 맥락을 바르게 아는 개인이 늘어나 사회와 여론을 형성할 때, 거대 자본에 대항하여 인간적인 삶을 쟁취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본다.

    사람다운 사회란 평범한 어느 누구나 충분한 여유를 갖고 자기 실현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이다. 그것이 더 많은 부와 풍요로움과 진보를 대신하여 진정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이다.

 

 

이 글의 유일한 장점은 copy & paste를 일절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