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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象

찬 밤의 고독

부모님은 용평에 계신다. 밤에 집에 아무도 없으면 왠지 설렌다. 흐린 달빛이 어두컴컴한 방을 가방을 멘 채 한 바퀴 빙글 돌다, 문득 무서워져 불을 켠다. 거실도 부엌도 환한 게 좋다. 냉장고 속의 밥에 레토르트 양송이 소스를 얹어 전자렌지에 올리고, 옷을 대충 벗어놓고 맨 속옷 바람으로 베란다에 나간다.

공기가 차다. 하늘에 가까운 곳, 정면에 달이 있다. 비죽이 웃는 월면의 미소. 천구의 가장자리에서 구름이 스믈스믈 펼쳐지며 올라가는데, 별이 반짝, 빛난다. 시원하다. 깨물면 아그작, 하고 상쾌한 소리가 날 것 같다. 먼 하늘엔 언제나 빠른 바람이 불지. 속으로 생각한다.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부드러운 솜털 같은 대기의 장막이 한없이 늘어나, 달을 가리고, 마침내 머리 위를 지나쳐 알 수도 없는 아득한 곳으로 뻗어나간다. 밤이 시리다. 손을 뻗으면 쥘 수도 있을 것처럼 강렬한 실재로 다가와, 강한 저항감에 가슴이 고동친다.


젊은 여자의 머리채는 올올이 밤을 품고 있다. 개인 비처럼 나도 머리카락에 밤을 가둔 채 방으로 들어오면, 이미 건물의 경계고 벽이고 사라져 어딜 가나, 구석마다, 시간의 상념이 맴돈다. 호젓한 직선시간축의 미학.


가득 찼던 무언가를 게워 내, 홀가분하고 초라한 자신이 여기 뒤늦게 남는다. 그것은 텅 빈 것인지, 혹은 아니 빈 것인지, 나아가고 있는지 뒤처지고 있는지 알 수도 없어, 머리가 굳어 버렸나, 라고 중얼거려도 대답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올가미와 사회의 덫에 잡히고 싶지 않아, 웅크리고, 또 웅크리고, 언젠가 그렇게 말했었다- 글이 내게 기대고 내가 글에 기대 쾌속으로 달려갈 때의 느낌을 잊지 않고 싶다고. 이렇게 멈칫거리다, 시간이 마냥 흘러가 버리면, 그땐 어떡하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스물 두 살인데, 어째서 이토록 허전한지, 어째서 이토록 밤은 서늘하고 호젓한지, 그저 이렇게 의자에 비죽이 기대어 ㅡ.

예쁜 사진에 예쁜 폰트로 연애를 포스팅하는 사람은, 혹은 복잡한 개념 따위 골치아파 싫다는 사람은, 실존에 더 가까울까? 말이 무딜수록 의미는 깊어지나?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에 회의 없이 자신의 모든 무게를 걸고 임하는 것일까, 그 사람들은.

소비하지 않아도, 시끄럽게 먹고 마시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