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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象

2006.6.27일 자정 무렵의 스케치

저녁 초벌잠에서 깨어, 머릿속에 뭉근한 여운을 간직한 채 부엌으로 갔다. 목을 넘어가는 물에서 미지근한 단맛이 났다. 차가운 핑거마드렌느를 하나 까서 삼키듯 하며 먹어치우자, 비로소 현실세계의 감각이 돌아왔다.

닫힌 베란다에서는 낮 동안 잘 마른 빨래의 기분 좋은 열기와 식물의 호흡이 토하는 살냄새가 뒤섞여 달콤한 향내가 풍겼다. 건조한 여름,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정오에 삼나무의 주름진 그늘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냄새. 

창을 열자 부드럽고 무게감 넘치는 바람이 몸을 감쌌다. 하늘은 불길한 자줏빛이었다. 옥상의 피뢰침이 시라우드shroud를 늘어뜨린 난파선의 메인 마스트처럼 우뚝 서 있었다. 조금 더 멀리, 능선을 탄 겹겹의 건물이 보였다. 자줏빛 물기를 머금은 공기 속에서 윤곽만이 선명했다.

먹지 같은 강물 위로 동그랗게 드리운 가로등의 잔영이 고요한 가운데, 자동차와 수송 열차, 전철의 막차만이 눈을 빛내며 어디론가 흐름을 재촉한다- 유연하고 꾸준하게, 불빛 덩어리진 잔영을 뒤에 남기고. 

별도 없는 밤- 큰숨 한 번에 부서져 녹을 것 같은, 꿈과 현실에 걸친 연약한 순간. 몇 번 더 그 부드러운 맛이 나는 대기를 들이마셨다. 쓸쓸한 꿈처럼 분침이 두어 번 움직여 시간을 조금 더 멀리까지 밀어 보내고, 나는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될 때까지 창틀에 기대 밖을 내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