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26분까지, 다시 잠들어 8시 55분까지 각각 두 편의 꿈을 꾸었다.
나는 어떤 유럽인 여성 학자로, 아프리카의 들판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두 명의 키가 크고 날씬한 원주민이 나체로 달려 내 앞을 지나쳤다. 뒤에서 말을 탄 두 명의 영국인이 곧장 쫓아오더니 남자 쪽을 생포했다. 습격당하는 와중에 넘어져 꿈틀거리고 있는 여자의 몸에 가늘고 긴 작살을 꿰어 완전히 죽인 후, 축 늘어진 시체를 말에 매달고 그대로 달려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다 문득 옆을 보았다. 거기엔 아프리카 전통 양식의 오두막이 있었고, 열린 대문 앞에 40대쯤 되어 보이는 흑인 여주인이 비통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여기서부터는 이 유럽인 여성 학자의 수기로 진행됨, 물론 있는 그대로는 아니지만 꿈에서 서술된 글을 최대한 발췌(그래서 내용이 조금 이상;)
그녀는 크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내게 외쳤다. "이런 광경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 달라. 그러나 너희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의 땅을 뻇고 우리의 것을 팔아 간신히 먹고 살도록 한 것은 너희들이다. 지금 내 남편은 너희들이 들어찬 번화가에 내려가 술을 팔고 있다."
나는 그 오두막으로 따라 들어갔다. 나무로 지어진 실내는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천장에는 보리가 매달려 있었고 단순한 탁자의 곁에는 단지가 있었다. 제공된 음료는 그 여주인의 분노처럼 쌉쌀한 맛이었다. 벽에는 린드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뺴곡하게. 그것은 유럽인의 저택에 걸려 있을 떄보다 아름다웠다. 과일과 음료, 로버트 린드. 나는 무한한 감명을 받았다. 그들의 슬픔과 정당한 분노와 전통 양식. 나는 그것을 만드는 법을 배우리라.
깨서 얼렁 수기를 옮겨 적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곧 잠듬;
두번쨰 꿈.
여기서의 나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친구 한 명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제일 이름난 식당에 들어섰다. 친구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메뉴판을 돌리고 카운터에 앉아 계산을 하는 사람은 모두 뚱뚱하고 사나운 눈매를 가진 동양인이었다. 메뉴에는 서양 요리도 있었는데, 친구는 8800원어치의 나폴리식 피자를 주문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주위에 돌아다니며 전통 양식으로 시중을 드는 사람은 전부 흑인이었다. 그들은 마르고 왜소하며 기운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중 하나가 정식을 들기 전에 아프리카식으로 먼저 목욕을 하시겠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으나 일단 승낙했다. 정말로 식당 한구석에는 목욕탕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목욕탕은 휑뎅그렁하게 넓었다. 가장 가운데 단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어른 여섯 사람이 들어가도 될 만큼 큰 욕탕에 더운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비누 비슷하게 생긴 것과 짙은 갈색의 고운 가루, 녹차 빛깔의 가루와 하얀 가루들이 있었다. 아프리카 인들이 팥의 껍질로 이를 닦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가루를 어떻게 이용해 몸을 씻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시중드는 흑인들은 바닥을 청소하거나 귀퉁이에 있는 작은 욕탕에 들어가 앉아 있는 등 자신들의 할 일만 묵묵히 하고 있었다.
일단 겉옷과 바지를 벗긴 했지만 그냥 서 있는 내게 어떤 흑인이 다가와서 방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푸른 가루는 비누의 틈새에 넣어 채운다. 녹색 가루는 물에 개어 몸에 문지른다(니트의 팔을 걷어 팔에 문질러 보았다). 흰 가루를 기포가 이는 틈새에 풀자 물에서 김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책망하는 눈초리로 내게 '유럽에서 왔으면서 이것도 모르냐'고 물었고, 나는 전혀 모른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목욕은 결국 할 수 없게 되었다. 밖에서 한 떼의 흑인들이 우르르 들어왔기 떄문이었다. 그들은 헐렁한 긴 전통 의상을 입고 머리를 화려하게 올린 채 흥분해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모두 젊은 남녀들이었다. 그 중 하나는 복잡하게 땋은 머리를 한데 묶어 위에서 매듭으로 고정시킨 후, '이제 성년식을 맞이할 완벽한 준비가 끝났다' 라며 좋아했다. 그들이 겨우 나가자 이번에는 뚱뚱한 양복 차림에 훈장을 단 열강의 고관들이 들어왔다. 내가 목욕을 해야 하니 나가 달라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예의바르게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 사람들이 스무 명쯤 들어와 웅성댈 무렵, 갑자기 밖에서 난동하는 소리가 나더니 녹색과 붉은 옷을 입은 노동자들이 난입하려 했다. 어느 새 문은 붉은 셔터로 바뀌어 있고 새빨간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각기 셔터 문 양쪽에 서서 그들을 저지하려고 했다. 겨우 문을 내렸다고 생각했으나 노동자들의 힘이 워낙 거세서 결국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샌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떄까지는 목욕탕 가장자리의 사각지대에 서서 하반신을 가리느라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자기 밖에서 새빨간 제복 차림의 사람이 다이너마이트를 던져 넣었다. 왼쪽 문에 하나, 오른쪽 문에 하나, 구석에 하나.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한꺼번에 나가려는 사람이 많아 오히려 더뎠다. 나도 순식간에 밀치고 닥치며 금세 문 쪽에 밀어붙여지기 시작했다. 폭사와 압사를 동시에 당할 것 같은 기분으로 고개를 돌리자, 문득 좁고 긴 틈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밖이 언뜻 보였다. 몸을 밀어넣어 보았지만 지나치게 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옆에서 폭탄이 터지면 건물이 붕괴되면서 틀림없이 무너지는 두 벽 사이에 끼어 죽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밖에서 누군가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 밖에서 손을 뻗고 있었다. 더 생각할 것 없이 나는 그 손을 잡고 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빡빡 끼다 탁 하며 튕겨나가는 순간, 뒤에서 소리도 없이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구 달렸다. 어느새 사방은 푸르고 싱싱한 풀들이 가득 자라는 들판이었다. 식당은 흔적도 없었다.
눈 앞에 내 또래의 한 여자애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검은 단발머리에 안경을 썼는데, 내가 지금까지 본 얼굴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나를 인도한 것이다. 그녀가 뛰어가자 나도 따라서 달렸다. 하늘은 해질녘의 우아한 보라색이었고 신선하고 풍요로운 녹색의 들판 너머로 능선이 푸르게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멀고 가까운 정경 곳곳에 가로등처럼 환하고 둥근 무엇이 몇 개씩 떠서 빛을 뿜었다. 눈 앞에는 마지막 석양이 흐릿한 주홍색으로 번지고, 거기서부터 연하게 보랏빛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처음이었고, 자유롭다는 안도감과 기쁨에 마음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 한 순간 나는 정말이지, 자유로웠다.
계속 펼쳐진 초원과 나 사이에 나무로 만든 울타리가 있었다. 군데군데 끊어졌다 이어져 있어서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저 울타리를 뛰어넘지 않으면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여자애는 이미 울타리를 뛰어넘어 달리고 있었다. 나도 달려가서... 풀쩍... 뛰어넘었다. 놀랍게도 성공했다 싶어, 신이 나서 계속 뛰기 시작했다. 들판은 사방으로 무한정 넓었고, 짙어진 청보라색의 하늘에는 어젯밤에 본 목성이 붉게 빛을 내었다. 그 옆으로 달이 있었는데 별보다도 작아 보였다. (그만큼 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증거다). 옆으로 뻗은 다소 나지막한 분지에 넓은 호수가 있었는데, 등불과 달빛에 비쳐 잿빛 은색으로 반들거리고 출렁거렸다.
호수가 끝날 무렵 눈앞에는 산과 숲이 나타났다. 여전히 푸르고 아름다웠지만 먼 앞에 포크레인과 아파트, 그리고 인간이 만든 가로등이 보였다. 그녀가 문득 멈춰서서 나에게 물었다. 네 눈에 저것들도 아름답게 보이니?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눈썹을 찌푸리며 인공 구조물들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저것들을 없애버리고 말 거야.
어느새 눈 앞에는 하얀 길이 있었다. 길 변에는 맑고 투명한 냇물이 졸졸 흘렀다. 사방은 이미 어두웠다. 조약돌이 깔린 하얀 길을 걸으며 그녀가 말했다. 나는 우리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기억이 잘 안난다)의 검시 컨설턴트야. 내 또래의 아이들이 우리 사람들을 위해 이 직책을 맡고 있어. 저것들을 막아내고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역할이지. 어른들은 늘 우리에게 말해. 우리가 지고 있는 책임은 너무나도 막중해서, 만에 하나 놓치는 날엔 붓꽃의 비료가 될 거라고.(그녀는 웃었고 나는 길가에 장식으로 놓여 있는, 큰 유리 샬레에 담긴 토피어리를 밟을 뻔했다)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으면... 자기가 자기 땅에서 난 것을 먹고 집을 지어 살아가지 않으면.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저것들은 우리를 죽이고 있어(포크레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걷고, 또 걸으면 그녀의 사람들에게 도착할 것이라 믿었다.
나는 어떤 유럽인 여성 학자로, 아프리카의 들판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두 명의 키가 크고 날씬한 원주민이 나체로 달려 내 앞을 지나쳤다. 뒤에서 말을 탄 두 명의 영국인이 곧장 쫓아오더니 남자 쪽을 생포했다. 습격당하는 와중에 넘어져 꿈틀거리고 있는 여자의 몸에 가늘고 긴 작살을 꿰어 완전히 죽인 후, 축 늘어진 시체를 말에 매달고 그대로 달려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다 문득 옆을 보았다. 거기엔 아프리카 전통 양식의 오두막이 있었고, 열린 대문 앞에 40대쯤 되어 보이는 흑인 여주인이 비통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여기서부터는 이 유럽인 여성 학자의 수기로 진행됨, 물론 있는 그대로는 아니지만 꿈에서 서술된 글을 최대한 발췌(그래서 내용이 조금 이상;)
그녀는 크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내게 외쳤다. "이런 광경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 달라. 그러나 너희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의 땅을 뻇고 우리의 것을 팔아 간신히 먹고 살도록 한 것은 너희들이다. 지금 내 남편은 너희들이 들어찬 번화가에 내려가 술을 팔고 있다."
나는 그 오두막으로 따라 들어갔다. 나무로 지어진 실내는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천장에는 보리가 매달려 있었고 단순한 탁자의 곁에는 단지가 있었다. 제공된 음료는 그 여주인의 분노처럼 쌉쌀한 맛이었다. 벽에는 린드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뺴곡하게. 그것은 유럽인의 저택에 걸려 있을 떄보다 아름다웠다. 과일과 음료, 로버트 린드. 나는 무한한 감명을 받았다. 그들의 슬픔과 정당한 분노와 전통 양식. 나는 그것을 만드는 법을 배우리라.
깨서 얼렁 수기를 옮겨 적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곧 잠듬;
두번쨰 꿈.
여기서의 나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친구 한 명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제일 이름난 식당에 들어섰다. 친구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메뉴판을 돌리고 카운터에 앉아 계산을 하는 사람은 모두 뚱뚱하고 사나운 눈매를 가진 동양인이었다. 메뉴에는 서양 요리도 있었는데, 친구는 8800원어치의 나폴리식 피자를 주문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주위에 돌아다니며 전통 양식으로 시중을 드는 사람은 전부 흑인이었다. 그들은 마르고 왜소하며 기운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중 하나가 정식을 들기 전에 아프리카식으로 먼저 목욕을 하시겠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으나 일단 승낙했다. 정말로 식당 한구석에는 목욕탕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목욕탕은 휑뎅그렁하게 넓었다. 가장 가운데 단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어른 여섯 사람이 들어가도 될 만큼 큰 욕탕에 더운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비누 비슷하게 생긴 것과 짙은 갈색의 고운 가루, 녹차 빛깔의 가루와 하얀 가루들이 있었다. 아프리카 인들이 팥의 껍질로 이를 닦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가루를 어떻게 이용해 몸을 씻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시중드는 흑인들은 바닥을 청소하거나 귀퉁이에 있는 작은 욕탕에 들어가 앉아 있는 등 자신들의 할 일만 묵묵히 하고 있었다.
일단 겉옷과 바지를 벗긴 했지만 그냥 서 있는 내게 어떤 흑인이 다가와서 방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푸른 가루는 비누의 틈새에 넣어 채운다. 녹색 가루는 물에 개어 몸에 문지른다(니트의 팔을 걷어 팔에 문질러 보았다). 흰 가루를 기포가 이는 틈새에 풀자 물에서 김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책망하는 눈초리로 내게 '유럽에서 왔으면서 이것도 모르냐'고 물었고, 나는 전혀 모른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목욕은 결국 할 수 없게 되었다. 밖에서 한 떼의 흑인들이 우르르 들어왔기 떄문이었다. 그들은 헐렁한 긴 전통 의상을 입고 머리를 화려하게 올린 채 흥분해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모두 젊은 남녀들이었다. 그 중 하나는 복잡하게 땋은 머리를 한데 묶어 위에서 매듭으로 고정시킨 후, '이제 성년식을 맞이할 완벽한 준비가 끝났다' 라며 좋아했다. 그들이 겨우 나가자 이번에는 뚱뚱한 양복 차림에 훈장을 단 열강의 고관들이 들어왔다. 내가 목욕을 해야 하니 나가 달라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예의바르게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 사람들이 스무 명쯤 들어와 웅성댈 무렵, 갑자기 밖에서 난동하는 소리가 나더니 녹색과 붉은 옷을 입은 노동자들이 난입하려 했다. 어느 새 문은 붉은 셔터로 바뀌어 있고 새빨간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각기 셔터 문 양쪽에 서서 그들을 저지하려고 했다. 겨우 문을 내렸다고 생각했으나 노동자들의 힘이 워낙 거세서 결국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샌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떄까지는 목욕탕 가장자리의 사각지대에 서서 하반신을 가리느라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자기 밖에서 새빨간 제복 차림의 사람이 다이너마이트를 던져 넣었다. 왼쪽 문에 하나, 오른쪽 문에 하나, 구석에 하나.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한꺼번에 나가려는 사람이 많아 오히려 더뎠다. 나도 순식간에 밀치고 닥치며 금세 문 쪽에 밀어붙여지기 시작했다. 폭사와 압사를 동시에 당할 것 같은 기분으로 고개를 돌리자, 문득 좁고 긴 틈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밖이 언뜻 보였다. 몸을 밀어넣어 보았지만 지나치게 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옆에서 폭탄이 터지면 건물이 붕괴되면서 틀림없이 무너지는 두 벽 사이에 끼어 죽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밖에서 누군가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 밖에서 손을 뻗고 있었다. 더 생각할 것 없이 나는 그 손을 잡고 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빡빡 끼다 탁 하며 튕겨나가는 순간, 뒤에서 소리도 없이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구 달렸다. 어느새 사방은 푸르고 싱싱한 풀들이 가득 자라는 들판이었다. 식당은 흔적도 없었다.
눈 앞에 내 또래의 한 여자애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검은 단발머리에 안경을 썼는데, 내가 지금까지 본 얼굴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나를 인도한 것이다. 그녀가 뛰어가자 나도 따라서 달렸다. 하늘은 해질녘의 우아한 보라색이었고 신선하고 풍요로운 녹색의 들판 너머로 능선이 푸르게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멀고 가까운 정경 곳곳에 가로등처럼 환하고 둥근 무엇이 몇 개씩 떠서 빛을 뿜었다. 눈 앞에는 마지막 석양이 흐릿한 주홍색으로 번지고, 거기서부터 연하게 보랏빛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처음이었고, 자유롭다는 안도감과 기쁨에 마음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 한 순간 나는 정말이지, 자유로웠다.
계속 펼쳐진 초원과 나 사이에 나무로 만든 울타리가 있었다. 군데군데 끊어졌다 이어져 있어서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저 울타리를 뛰어넘지 않으면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여자애는 이미 울타리를 뛰어넘어 달리고 있었다. 나도 달려가서... 풀쩍... 뛰어넘었다. 놀랍게도 성공했다 싶어, 신이 나서 계속 뛰기 시작했다. 들판은 사방으로 무한정 넓었고, 짙어진 청보라색의 하늘에는 어젯밤에 본 목성이 붉게 빛을 내었다. 그 옆으로 달이 있었는데 별보다도 작아 보였다. (그만큼 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증거다). 옆으로 뻗은 다소 나지막한 분지에 넓은 호수가 있었는데, 등불과 달빛에 비쳐 잿빛 은색으로 반들거리고 출렁거렸다.
호수가 끝날 무렵 눈앞에는 산과 숲이 나타났다. 여전히 푸르고 아름다웠지만 먼 앞에 포크레인과 아파트, 그리고 인간이 만든 가로등이 보였다. 그녀가 문득 멈춰서서 나에게 물었다. 네 눈에 저것들도 아름답게 보이니?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눈썹을 찌푸리며 인공 구조물들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저것들을 없애버리고 말 거야.
어느새 눈 앞에는 하얀 길이 있었다. 길 변에는 맑고 투명한 냇물이 졸졸 흘렀다. 사방은 이미 어두웠다. 조약돌이 깔린 하얀 길을 걸으며 그녀가 말했다. 나는 우리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기억이 잘 안난다)의 검시 컨설턴트야. 내 또래의 아이들이 우리 사람들을 위해 이 직책을 맡고 있어. 저것들을 막아내고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역할이지. 어른들은 늘 우리에게 말해. 우리가 지고 있는 책임은 너무나도 막중해서, 만에 하나 놓치는 날엔 붓꽃의 비료가 될 거라고.(그녀는 웃었고 나는 길가에 장식으로 놓여 있는, 큰 유리 샬레에 담긴 토피어리를 밟을 뻔했다)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으면... 자기가 자기 땅에서 난 것을 먹고 집을 지어 살아가지 않으면.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저것들은 우리를 죽이고 있어(포크레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걷고, 또 걸으면 그녀의 사람들에게 도착할 것이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