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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일의 꿈 이야기

본래 또 꿈 이야기를 쓸 의도는 아니었는데, 공교롭게도 인상이 강렬해서 일어나자마자 글로 남겨놓는다. 그리고 이 꿈 때문에 알람도 못듣고 늦잠 잤다. 옌장.


나는 마켓-프랭크포드 블루 라인을 타고 창가에 서서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본래는 지하철이지만 마침 지상구간에 올라와 있어, 창 밖으로 낡은 역사나 푸른 하늘이 내다보였다. 마침 역에 도착해 문이 열렸다. 밖에 서 있던 사람들이 문으로 들어오려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범한 지하철 풍경 속에 사람들은 평온하게 앉거나 서 있었다. 밖의 한 아주머니가 안쪽의 사람 하나를 떨리는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요. 얼른 거기서 내려요. 손가락질을 당한 상대는 영문을 모르고 그저 당황스럽게 웃기만 했다. 밖의 또다른 사람이 외쳤다. 지금 지하철 밖에 뭐라고 써 있는지 알아요? '그' 열차라구요. 이걸 타고 있으면 절대 못 내려. 나 역시 영문을 알 수 없어, 그저 밖의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평소보다 유난히 오래 열려 있던 자동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열차의 정체를. 그리고 최후로 서는 곳은 다음 역이라는 걸. 그때 내리면 돼,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은 운이 나빴다. 다음 역은 더이상 없었다. 열차는 부단히 달리고 있었지만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서서히 달라져, 익숙한 구간의 풍경이 아니었다. 지하구간으로 내려가지도 않았다. 평범한 주택가와 공원을 지나쳐, 열차는 천천히 쇠락한 공장 지대 같은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섭도록 새파란 하늘 아래 짓다 만 집이나 자재, 자재를 공급하는 조그만 상가들과 거대한 시멘트 믹서나 물탱크, 등이 녹슬고 낡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종종 그러한 건조물 중 큰 것의 좌우 가장자리에는 페인트로 반복되는 커다란 표식이 써 있었다. 마치 그 건조물들을 통해 어떤 방향이나 의도를 드러내려 했던 듯, 글씨는 단정한 정자체였다. 일상-비일상. 혹은 끝-끝이 아님. 가게들의 간판엔 글자가 없었다. 종종 아주 힘겹게 글자가 남아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것도 곧 낡아 떨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중 한 가게 간판에서 부서져 가는 내 이름을 발견하고 나는 몸서리를 쳤다.


사람들이 불안하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로 '그' 열차란 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도망쳐야 하지? 내릴 순 없나? 문이 열릴 때까지 내릴 순 없어요. 우리는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러나 놀랍게도 불안감은 그 수준에서 안정을 유지했다. 사람들은 걱정하고, 앞으로의 운명에 대해 염려했지만 누구도 행동하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열차가 정지했다. 사람들은 문에 몰려들었지만 역사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레일이 한순간에 끝나버린 듯, 밖은 여전히 황량했다. 잠시 멈춰 있던 열차는 다시 오던 길을 거슬러 출발하기 시작했다. 짧은 안도감이 공기 중에 퍼졌다. 레일을 따라 반대로 돌아간다면 본래 있던 장소에 도착하지 않겠어, 라고 나 역시 생각하며 안도했다.

우리는 공장지대를 지나쳤다. 이상하게도 풍경은 아까와 또 달랐다.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서 거의 무너져 가는 인간의 자취. 기차의 뒷문이 열려 덜컹거렸다. 열린 문 틈으로 모래바람이 한 줄기 쉬익, 하고 불어들어왔다. 말라비틀어진 뼈와, 뼈 근처에 널브러진 작은 흑인 아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금세 사라졌다. 녹이 슬고 페인트가 벗겨진 연청색 물탱크에 써 있는 글자를 보며 나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우리는 지금 일상 쪽으로 향하고 있어.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돌아가고 있는 거야.

열차는 주택가로 들어섰다. 주택가가 끝나자, 사방은 푸른 잔디가 깔린 드넓은 사유지로 들어섰다. 군데군데 철조망이 쳐 있고, 그 안에는 사슴 여러 마리가 돌아다니며 눈망울을 빛내고 있었다. 나는 문득 열차에 관한 전설 중 한 대목을 상기했다. 어떤 인간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기어코 도달하지 않는 한, 너는 결코 창밖으로 녹색 풀을 볼 수 없다. 문득 절망감이 밀려왔다. 가까운 녹색 구릉 위에 오래된 저택이 서 있었고, 그 저택의 주위에 거대한 사자가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며 한번씩 포효했다. 사자를 에두른 철조망의 일부가 뜯겨나가 있었다.

열차가 정지했다. 오후 세 시쯤의 나지막한 햇살이 낡은 시골 역사를 비추고 있었다. 레일 앞에는 작은 벤치가 있고 머리가 벗겨진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서는, 본래의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게 끝인가?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낯선 여기는 어디지? 윌리 웡카처럼 작고 영리한 까만 수염의 남자가 비죽이 웃으며 나타났다. 운행은 여기가 끝이오. 종착역이란 말이오. 완전한 종말이오. 영원히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어. 이건 '그' 열차거든.

나는 벤치에 앉아 있던 늙은 남자에게 물었다. 방법이 없나요? 그는 이빨이 다 빠진 입을 벌리며 징그럽게 웃어 보였다. 하나 방법이 있긴 해. 가끔 여기서 출발하는 열차가 있지. 어쨌거나 종착역은 종착역이니까. 그러나 언제인지는 나도 몰라. 그러나 그렇게 살아서 본래 속한 세계로 돌아간 인간이 있었어. 나는 여기서 아주 오래 기다렸어. 마음 속에 작은 희망이 생겨났다. 일단은 살아남아서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 밤이 되면 틀림없이 사자가 내려와서 불운한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이다. 이곳에 있는 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테지만, 어쩌면 나는 늙어갈지 모른다.

사람들은 기다리기 시작했다. 아이 셋을 둔 어머니는 자식들을 달래고, 젊은 아기 아빠가 어린애의 기저귀를 가는 것을 한 늙은 남자가 도와주었다. 그 모습을 아까의 윌리 웡카가 비웃듯이 이를 드러내며 지켜보고 있었다.




잠이 깨자 더이상 그 장소가 아니라 내 방 내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하늘은 여전히 파랬지만. 오늘의 과제는 열심히 하겠어요. 꿈에서는 모든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마치 예전에 읽은 소설에 그런 대목이 있었지, 라고 상기하듯. 하지만 저런 열차 문제에 얽힌 전례나 데자뷰나 기억 따위 현실의 내게는 없으니. 꿈의 세계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종종 본래의 루트를 벗어나 제멋대로 달리는 지하철에 타고 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딱 잘라서 죽음의 코앞까지 데려다 준 적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