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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란

나 개인에 한해 말하자면 중요한 것은 남편이 남자라는 점이다. 그래서 생활에 색깔이 입혀졌다고 생각하는데 누구든 함께 생활하고 싶다면 동성의 친구라도 상관없고,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편이 간결하고 확실하다. 다만, 남자와 같이 살면 생활에 색깔이 입혀진다.
(중략)
정말 그랬다. 그런 걸 몰랐다. 모른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다. 소름이 끼치도록 야만스럽고, 난폭하고,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나는 몰랐으니까. 남자란 존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연인과 함께 지내는 밤의 달콤한 친밀감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자는 남자의 팔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남자의 단순함, 남자의 복잡함. 남자의 관용, 남자의 안심.
그리고 잠들고 깨어나고, 걷고 물을 마시고 창밖을 내다보고, 얘기하고 한숨을 쉬고 어처구니없어 하고, 고함을 지르고 화를 내고 무관심하는 그 모두가 하나하나의 색이라는 것을.

-色


여전히 에쿠니 카오리의 수필집이다. 따뜻함 더하기 신뢰- 의리 비슷한 믿음과 동질감은 여자들끼리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보물이지만, 확실히 남자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또 다른 종류의 편안함이 있다.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는 틈새의 여백. 남자와 여자. 그 다름의 간극. 깨닫는다. 남자란 존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그리고 남자친구와 여자친구가 혼재하는 세상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독신주의자이면서도 간혹 결혼을 꿈꾸는 건, 그런 남자를, 남자의 존재를 일상을 통해 흠뻑 흡수하고 싶은 열망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