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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Literature

영단어의 섬세함



영어엔 높임말이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서로를 부를 때 'you'를 쓴다고 한다. 우리말은 '빨강'하나만 해도 '불그죽죽한' '발그레한' '시뻘건' 등등 다양하게 발달한 색채형용사가 있는데 영어는 오직 'red' 하나뿐이라고 한다. 보통 이 둘은 한국어의 섬세함(혹은 우수성)을 논할 때 자주 사용되는 루머 아닌 루머다.

글쎄, 요즘은 오히려 이런 의문이 생긴다. 존칭어(honorific)의 경우는 문화특수적인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색채형용사가 부실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한 언어의 표현력을 처음 평가절하한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bliss. 지복의. buoyant. 둥실 뜬 듯 가벼운 느낌으로 발랄한. puckish. 명랑하지만 장난기가 심한. jocund, jovial, jocular, merry. 밝고 쾌활한. sanguine. 혈색이 좋고 낙천적인. hilarious. 우스워서 자지러지는. elated. 의기양양한. sprightly. 명랑한 기운으로 가득한. 

loquacious. 말이 많은. voluble. 말 많고 유창한. verbose. 쓸데없이 말 많은. prolix. 장황하게 말 많은. forthcoming. 말 많고 직설적인. chatty. 사적인 자리에서 수다스런. garrulous. 얼핏 유창해 보이지만 깊이가 없고 솔직하지 못한. redundant. 글이나 말에 군더더기가 많은. pompous. 허세부리며 말하는. grandiloquent. 거짓 약속과 허풍을 섞어 말하는. turgid. 과장이 심하게 말하는. prate. 영 의미가 없는 지껄임. babble. 너무 빨라서 알아들을 수 없는 지껄임.

dodder. 나이가 들거나 해서 힘이 없어 비틀거리는 모양새. stagger. 현기증이나 음주 때문에 비틀거리는 모양새. falter.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새.

각기 '즐거움' '말 많음' '비틀거림'에 해당하는 영단어의 표현들이다. 사람의 속성- 현명함, 우둔함, 금욕, 방탕-에 해당하는 단어들도 비슷한 형편이지만 일단 생략한다. 솔직히 놀랐다. '말이 많다'는 개념 하나에 저렇게 다양한 단어가 존재한다니, 지금까지 배운 것도 일부에 불과할 텐데- 새삼 영어란 언어에 대해 미안해졌다. 모국어처럼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언어를 우습게 생각했으니. 그 원인은 전적으로 내 무지함 때문이겠다.

어째서 이렇게 다양한 단어가 있을까. 위에 예로 늘어놓은 형용사를 보면, 각 단어마다 일대일로 대응하는 한국어 단어가 거의 없다. 전부 풀어쓴 설명이다. 어휘력 부족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스스로가 한국어가 모국어인 화자로서 지난 10여년간 고등교육을 받아왔으니 이 정도 수준이면 일반적일 것 같다. 영어에 색채형용사가 없다고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하면 이 경우는 이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대응되는 단어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면, 그만큼 상대 언어의 표현력도 떨어지는 걸까. 여기에 대해 어줍잖은 지식을 바탕삼아 생각을 좀 해 보았는데:

1. 한국어와 영어가 속한 언어유형이 서로 다르다.

한국어는 교착어로, 어근에 다양한 접사를 붙이고 떼며 뜻과 문법을 구성한다. '밥 먹었니', '밥 먹었지만', '밥 먹었으니까' '밥 먹었는데' 가 제각기 다른 것처럼, 한국어에선 접사를 바꾸기만 해도 아주 쉽게 서로 다른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다. 반면 (지금은 고립어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영어는 굴절어에 해당한다. 즉 뜻이나 문법에 변화가 있을 때, 문장에 사용되는 단어의 모양이 통째로 바뀐다. 의미가 달라지면 단어의 모양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is가 was로, take가 took으로(위의 '었'은 과거시제 선어말어미로 따로 추가된 사항이며, 먹다-의 어근인 먹-은 애초에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둔다).  

유형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의미 전달의 방식도 다르게 나타나리라 생각된다. 영어 같은 경우 의미 전달을 위해 단어의 형태를 수시로 바꾸는 와중에 새로운 파생어가 생겨날 가능성이 더욱 높지 않았을까. 즉 한국어처럼 접사의 종류를 발달시키는 대신, 접두/접미어를 활용해 한 단어에 두셋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거나(incarnate, incorporeal, irrelevant), 보다 구체적인 의미로 나누는(iridicent, glitter, dazzle)등, 의미에 할당된 어휘를 늘리는 방법으로 소통가능한 의미의 폭을 넓혀 갔을 것이라 생각된다.

2. 대응 가능한 단어의 영역이 따로 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한국어의 색채형용사와 일대일 대응하는 영단어는 많지 않다. 위에 늘어놓은 '말 많은'이라는 예시에 일일이 대응하는 단어 역시 찾기 힘들다. 그러나 라틴어에 그 뿌리를 둔 단어- 죄(culpa)에서 파생된 exculpate, culpable, culprit 등은 각기 한자어인 면죄, 유죄, 범죄자로 대응시킬 수 있다. 한국어의 50%이상을 차지한다는 한자어의 어휘 풀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또한 문화의 특수한 영향력을 비교적 덜 받는 범세계적인 분야의 경우, 각 언어에서 적절한 어휘를 찾아내 일대일 대응시키기가 비교적 쉽다. 그 좋은 예가 영단어 consilience에 상응하는 '통섭'이라는 새로운 한자어다. 원활한 소통의 필요성 때문에 새롭게 대응 단어를 만들어낸 케이스다. 문화에 따라 기준이 달라질 수 있는 영역- 가령 사람의 성품에 대한 평가나 선/악의 잣대에 관련된 어휘들을 상호 대응시키기 어렵다고 해서, 반드시 어느 한 언어의 lexicon이 부족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즉 어휘의 절대량이 각 언어의 표현 수준을 결정할 수는 있으되, 유형이나 영역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일부만을 표집하여 서로 표현 방식이 다른 언어간 표현력의 우열을 결정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어의 기원을 흔히 앵글로-색슨이 영국으로 처음 건너온 449년으로 잡는다. 지금이 서기 2008년이니 생겨난 지 약 1500년 가량 된 셈이다. 본래의 게르만어 베이스에 라틴어와 로망스어 등 다른 갈래의 언어가 이것저것 섞여 지금의 형태를 이루었다. 언어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발달 기간이 긴 만큼 한국어가 겪지 못한 다양한 변화를 거치며 그 나름의 체계를 확립했을 것이다. 반면 생겨난 지 약 500여년 되는 한국어는 비교적 신생언어인 만큼 문법적 체계 확립이 부족한 면도 있다. 백석이 활동하던 시기만 해도 통일된 표준어 표기법이 없었다고 하니까.

하고픈 말은 결국 이거다. 우리가 한국어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잡하며 풍요로운 언어라고 생각하듯, 다른 언어에도 그 언어만이 지닌 고유한 복잡성과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이 있다. 뭔가 늘 그렇듯 평범한 결론이 되고 말았지만. 하긴, 요즘처럼 영어 열풍이 지독한 세상에선, 애국심을 최우선으로 가르쳤던 내 어린 시절처럼 남의 언어를 깎아내려 가며 한국어의 아름다움이나 중요성을 강조하지는 않을 것 같다. 혹은 그것도 또 아니려나. 결국 써먹으려고, 남들보다 돈좀 잘 버는(요즘은 그야말로 굶어죽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몸이 되어 보려고 하는 게 대다수의 목표니까. 이러나 저러나 사건의 핵심은, 풍요로운 언어 표현의 재발견에 있는 건 분명코 아닌 듯하니.


뭔가 부드러운 글을 생각하며 쓰기 시작했는데(영어가 생각보다 섬세해서 감동했어요) 팩트를 좀 섞다 보니 어느샌가 딱딱한 내용(난 이 고정관념 반대요)이 되어 버렸다.대체 뭘 쓴 거냐 난 요즘은 이런 내용을 생각하며 산다. 아무래도 최근에 머릿속에 구겨넣고 있는 게 저런 것들이니까. 제법 지겹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할 만 하다. 가끔 미국인 학생들이

[구식]의 반대말은:

ㄱ. 첨예
ㄴ. 첨부
ㄷ. 첨가
ㄹ. 첨단
ㅁ. 첨삭

등등의 문제 앞에서 머리를 싸쥐고 괴로워하는 상상- "다 첨으로 시작하는데 왜 의미가 제멋대로야!" -을 하며 혼자 즐거워하는 게 낙이다. 너무 시니컬한가. 아참, 이 홈을 종종 들르는 국어학도가 한 분 계신데 눈에 밟히지 않게 팩트 활용 잘 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