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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아아.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라는 통속적인 멘트로 시작하는 근황이네요.


이상심리학 시간에 불안장애 환자를 연기했는데 호응이 좋았습니다.

지하 강의실 계단을 뛰어올라가다 넘어져서 무릎이 찢어졌습니다.
(피를 철철 흘리며 일단 강의를 듣고, 병원에 걸어가 다섯 바늘을 꿰맸습니다)

문화방에 쳐들어가 한교수님께 인사를 올렸습니다.

최교수님께 시험번역한 것을 드리고 책 선물을 받았습니다.

심리학과 기획단에서도 일하게 되었습니다.

프래그머티즘과 달밤에 씨름을 했습니다.

소개팅을 주선했습니다.

편집팀 사람들을 모아 밥을 먹고 일을 시켰습니다.

고교수님과의 저녁 모임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식지 & 찌라시를 양산하고, 심리학과에서는 과티 도안을 응모했습니다. (채택된 것 같습니다)

제 종교가 대우주의 의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MMPI 자가해석 보고서를 여섯 페이지 써서 냈습니다.

로르샤흐 검사 채점하는 법을 배우며 몸서리를 쳤습니다.

시간을 쪼개어 스폰지하우스 영화제를 다녔습니다.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고 간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The Ketchup Song을 완벽하게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택광 선생님의 콜로키움에 참석해 일곱 장짜리 필기를 했습니다. 사인도 받아왔어요 (수줍)

노래자랑 예선에 신청을 했습니다. (...)

흄을 읽고 있습니다.

내일 밤 아홉 시까지 오성에 관하여 2부 발제가 있는데, 아직 반밖에 읽지 않은 채 이렇게.

무수한 실의 가닥이- 조금 더 보일 듯 말 듯,

세계는 전과는 완연히 달라져 너무나 눈이 부시고,

무심한 사계화는 밤그늘에 피어 오월의 밤은 향기롭고.



영원히 학교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지식의 흐름이 무수한 지류로 갈라져 교차하는 여기, 이곳에...

내 모든 역량과 재능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데 쓰리라고.

그것을 위해 다른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스스로를 제물로 내어놓겠다고.

이렇게 기브 앤 테이크식으로 맹세하면- 메피스토펠레스가 어디선가 듣고 있을까요? 하핫.



정신없고, 그러나 여유로운, 이상한 나날, 들, 이에요.

저는, 언제까지 이글루에서 도망치고 있을까요 ?

누구도 보러 오지 않는다 해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이런 기분은.

하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와서, 모두에게 진심으로 인사할 날이 오겠지요.

이곳을 말소해 버리지 않는 한은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