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학기. 지지난 학기에 들었던 폭탄수업처럼 ∑n (n: 소설의 수) 이면 낭패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취향이었다. 교재는 포스터의 Aspects of the Novel인데, 강의록을 옮겨 놓은 듯 슥슥 읽히는 게 재미있다. 가령 Chevalley의 정의를 예로 들면서 "If a French fritic cannot define the English novel who can?" 같은 대목에선 빙긋이 웃음이 나온다. 수업으로 들었다면 본토 학생들도 낄낄댔겠지. 시詩의 산과 역사의 산이 장려하게도 마주보고 선 가운데, 낮은 저지대에 습지를 이루며 뒤엉켜 흐르는 무수한 지류야말로 소설의 영토다. 강은 흐르고 흘러, 오스틴과 엠마, 새커리와 에스몬드를 지나 마침내 도달하는 곳은 모비 딕의 바다. 재기 넘치는 표현이다.
오늘은 2강, story로 들어갔는데, 문득 선생님이 칠판에 이렇게 쓰셨다.
"Rose is a rose is a rose is a rose."
자, 이게 무슨 뜻일까. 이것도 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선생님은 질문하셨다. 아. 기표는 네 개지만 기의는 무한한데... 하지만 나, 사실은 데피니션을 정확히 얘기 못하는걸. 우물쭈물하며 노란 장미 빨간 장미 장미 무더기의 이미지만 잔뜩 떠올리는 찰나, 선생님은 다시 칠판에 한 줄을 더 적었다.
Excitingness of pure being.
아 !
머릿속에 반짝 불이 들어왔다. 그래, 리얼리티. 오전의 장미, 오후의 장미, 봉오리, 만개한 꽃, 향기, 시든 꽃잎, 여름날 그 담벼락의 기억, 의미의 극한. 갑자기 너무 즐거워졌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선선한 아름다운 6월의 낮이었다. 소설은 언제나 도시처럼 신비하다. 고마워요, 거트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