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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象

2008. 7. 15.



목요일이 시험이다. 예전부터 말했던, Aspects of the novel의 번역... 이었지만, 열심히 듣는 여자아이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웃음) 나는 번역을 찬성했지만, 얼굴이 새하얗고 눈이 크고, 선생님께 말을 걸 때마다 유독 혀짧은 소리를 내는 어떤 언니가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았는데 영어를 잘 해서 시험을 잘 보면 우리가 곤란해요' 라고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의 나는 눈에 띄게 게으르니까. 헤에. 그럼, 좋을 대로 하세요. 하지만 번역 쪽이 더 도전적이라서 재미있는데. 빙그레 웃었다. 어느 쪽이든 난 상관없으니까. 즐거웠거든요.

 수업은 엉망으로 지각을 해버렸지만 (사실은 수업도 굉장히 재미있었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책은 정말이지 즐겁게 읽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잘 될 것이다. 수업에 늦었으니 점수를 깎는다, 라고 하면 깎는 편이 좋다. 내 점수와는 상관없이 그 편이 공정하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선생님이 내건 (유일한) 제일목표는 책의 완독이었고, 덕분에 실제로 깎일 일도 없었으니 좀 지각을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웃음) 이렇게 무한정 지각해보고 싶었어요. 아마 인생에서 마지막이겠지. 책은, 열심히 읽고 있어 내일이면 엔딩. 보통 두 번 정도는 읽어야 하겠지. 다 읽고 나면 재미있는 부분을 추려 포스팅하고 싶어.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다. 오늘은 45분 동안 8km를 뛰었는데(놀라지 마세요. 절반은 사이클), 중간에 시속 8.5km로 맞춘 게 무리였는지 집에 올 때까지 늑골 아래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물 먹는 걸 잊어서 피부도 살짝 까칠해지고. 그렇지만 즐겁다! 요가도 드디어 효과를 보고 있다. 지금 팔의 근육은 미국에서의 사서보조와 드로잉 덕분이지만, 이렇게 단련한다면 내년의 공기총 사격은 70%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3년 연속 60%를 깨지 못했다, 조금 아쉬워.


오늘의 기분은, 꽃처럼 해맑다. 여름의 쨍쨍한 햇살과 무더운 공기는 신록의 자양분이다. 차분한 에너지는 매일의 광합성 덕분이다. 별 것 아닌 일에 우는 건 바라지 않는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열심히 해낸다. 축 처지거나 슬퍼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도기 인형처럼 연약하게 만들어진 아가씨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언제나 지켜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자연스럽게 손 내밀어 도움을 받는, 그런 삶. 그러한 삶엔 온화하고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아쉽게도 내겐 그런 기회가 허락되지 않아, 중요한 순간엔 눈물도 괴로움도 혼자서 참아내야 했다. 뜻하지 않게 상처입은 밤이면 의자에 앉아 밤물 같은 창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얼른얼른 자라서 약한 마음을 지닌 누군가를 지켜줘야겠다고. 안아줄 누군가를 절실하게 원했던, 그러나 정작 곁에 아무도 없었던 그때의 나처럼. 

그런 시간을 거쳐온 지금의 나는, 조금은 덜 아름답지만, 결국 나답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는 대신 쓰게 웃고 만다. 자신의 몫은 확실히 해낸다. 벌레가 나타나면 맨손으로 집어 그늘에 놓아 준다. 남자아이들의 고민상담을 들어 준다. 어쨌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주어지지 않은 기회는 잊고서. 그러니 낯선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랑을 한다면 열렬하게 하고 싶다. 맑은 기운을 뿜어내어, 눈 앞의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날이다. 미래는 알 수 없고 슬픔은 언제나 깊다 ㅡ 그 슬픔마저도 한없는 에너지로 바꾸어 빛처럼 뿜어내고 싶다. 당신의 장점을 먼저 보고 싶다. 사람의 참 모습을 바닥까지 꿰뚫어, 치졸하든 안타깝든 더럽든 어떻게든, 이해해 버리고 싶다. 그런 욕망에 충실하게, 달려가는 것이다. 

단지 그뿐이라면 남의 탓을 하지 않아도, 영어를 더 잘하는 누군가를 겁내어 혀짧은 소리를 내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내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준다면 언젠가 내 눈물을 닦아줄 누군가도, 나타나 주겠지. 그냥 그런 믿음. 나이브해서 오히려 지치지 않는 믿음. 그런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