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좀 둔한 건지 사고방식이 달랐던 건지는 몰라도, 남들은 다 아는 듯 보이는데 나만 이해가 안 갔던 게 몇 가지 있었다. '차가 왜 막히는가' 라는 질문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 외에 '소설이란 무엇인가' '도시란 무엇인가' 등의 자매품이 있지만 여기서는 소개하지 않는다)
모두들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차가 막힌다. 아아, 차가 막히는군요. 귀성길에 사람이 많아서 차가 막혀. 대충 중학생이던가, 고등학생이었던 난 옆에서 묵묵히 들으면서 생각했다: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다. 차가 막히는 순간이란 자동차가 이동 수단으로 기능하는 순간이다. 차가 이동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순간은, 그 자동차가 일정량의 벡터를 지니는 순간과 일치한다(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벡터란 개념은 참 깔끔하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참 스마트하게도 잘 만들었다). 하지만 길 위의 모든 차들이 일정량의 벡터를 지닌다면 정지상태는 일어날 수 없다! 모든 차들이 모든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으며, 그것을 제어하는 것은 신호등 뿐이다. 따라서 일시적인 막힘 상태는 발생할 수 있지만 신호등이 없는 경우라면? 고속국도 같은 경우엔 어째서 지속적인 막힘 상태가 일어나는 걸까?
이 의문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는데, 나중에 와서야 해답을 찾았다. 나는 자동차가 지니는 벡터에만 집중했지, 차체가 지니는 물리적 길이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량의 차가 길로 쏟아져 나오면 각 차가 지니는 벡터의 총량 뿐 아니라 물리적 길이의 합을 고려해야만 한다. 즉 벡터가 정지상태를 유발하는 것이 아닌, 차체의 물리적 길이가 도로를 점유하기 때문에 차가 막히는 것이다. 재정의하면, 차가 막히는 순간은 자동차의 물리적 길이의 총합이 벡터의 총량을 상쇄 혹은 초과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상관관계에 대해 수식을 설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방향성을 띤 무형의 에너지와 실재하는 거리를 동상에 놓고 수식화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문과대생이니까). 그게 가능하다면, 벡터 대 물리적 길이간 상관을 내어 임계점을 찾는다면 언제 어느 순간에 차 막힘 현상이 일어날지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ㅡ 쓸모가 없다. 일단 한 지점에 차 막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예측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변수가 지나치게 많으며, 그런 지점이 한두 곳도 아니다. 또한 예측한다 해도 그 예측이 차 막힘 현상에 어떤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기껏해야 모든 변수가 거의 확실성을 띠는 순간, 막힘이 발생하기 직전일 텐데. 투입되는 예산은 막대할 것이고 결과는 보잘것없다. 학진에도 연구비를 신청할 수 없는데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두는 게 최선책이다. 세상은 우리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여담이지만, 공학도가 경영을 배우는 건, 그냥 내버려둬도 괜찮을 만한 것들을 그렇지 않은 것에서 분별해 내기 위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