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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교토

2009, 교토- 1. 나라, 사슴 공원의 추억



<편당 매우 긴 글이 될 수 있습니다. 긴 글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분은 주의를 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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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는 나무나 꽃은 단 한 그루도 없는, 돌만으로 이루어진 유명한 정원이 있소. 바위와 메마른 개울, 그리고 물은 없고 모래만 있는 폭포로 이루어져 있죠. 이 바위 정원은 웅장함과 황폐함과 접근 불가능한 신성함을 투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승려는 황무지에 가는 대신 도심에 있는 이 정원으로 와 이곳에서 그의 영혼이 명상과 구원을 위해 필요로 하는 사막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니코스 카잔차키스, 천상의 두 나라, 264p



어딘가 떠나고 싶다면 어디로 떠날지를 정해야 한다. 때문에 모든 여행은 늘 지향점을 필요로 한다. 나의 지향점은 대개 추억에서 비롯한다. 어릴 때 읽었던 책의 한 구절, 감미롭던 문장의 여운을 뒤쫓는 것으로 여행은 시작된다. 콩코드의 월든 호수가 그랬고 말라가의 지브롤터 앞바다가 그랬다. 다른 건 모른 채 오직 그 문장이 남겼던 이미지만을 향해, 모든 것이 천천히 각자의 형태를 갖추어 간다. 이번의 교토 여행 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다.

내가 품고 있는 일본의 이미지는 두 장이다. 하나는 위에 적은 카잔차키스의 모래 정원, '잇새에 새끼를 물고 달아나는 호랑이처럼' 겁에 질린 돌과 모래로써 이루어진 세계다. 다른 하나는 수국이 핀 산사(山寺)의 모습이다. 빗줄기가 흐드러지는 가운데 먹으로 그은 듯 선연한 산사의 윤곽, 그 길목에 점점이 피어난 보랏빛 수국이다. 이 두 장의 이미지가 이번 여행을 이끌었다.

스페인 여행 때도 그랬듯 <지금>이 아니면 어쩐지 보러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떠났다. 교토를 향해.



발심(發心)은 서정적이라도 계획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누구와, 언제, 어떻게 떠날까를 차근차근 고려해 보아야 했다. 혼자 훌쩍 떠나고도 싶었지만, 더 늦기 전에 엄마와 둘이서 많이 걸어다녀야 하는 여행을 가 보고도 싶었다. 특히 이런 측면에서 시간은 사람에게 가혹하다. 역시 지금뿐이었다. 랩에서 일하는 처지다 보니 기간과 일정을 잡는 데도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7월 하순에서 8월 말까지 이어지는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주말을 끼고, 가능하면 중순 가까이 3박 이하로 잡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침 비수기 항공편의 커트라인도 그 무렵으로 맞아떨어져, 상냥한 선생님이 일정을 잡으시기 전 적절히 밑밥을 뿌려 허락을 받아냈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환율을 고려해야 했다. 나라에서 해외여행 자제 요청을 공문으로 써서 뿌리며 원화가 백 엔 당 천사백 원을 찍는 이 무렵 교토 한 곳에만 올인하는 것도 사치다 싶었다. 또한 교통의 편의나 숙소의 가격대를 생각할 때 역시 거점은 오사카였다. 조사해 보니 오사카에서 머물며 교토나 나라를 가는 데 드는 시간은 딱 집에서 홍대 가는 그 만큼이었다. 교통비는 간사이 스룻토 패스가 있으니, 자연스레 낙점.

게스트 하우스나 민박이 제일 저렴하겠지만 엄마의 연세를 고려한다면 최소한 비지니스 호텔급은 되어야 했다. 엄청나게 걸어다니고 돌아와서, 기다릴 것 없이 더운 물로 씻고 바로 푹신한 침대에서 뒹굴거릴 수 있는 숙소가 필요했다. 이때 떠오른 건 토요코인이었다. 작년 3월 GRE 때문에 잠시 머물렀는데 컴팩트하면서도 편안했던 기억이 났다. 가격은 세 포함 더블 룸 일박에 6,930엔, 역에서 5분 거리. 마구 저렴하진 않아도 일 인당 최소 2,500엔짜리 민박에 묵느니 1,900엔쯤 더 얹어 주고 깨끗한 욕실과 드라이어와 TV와 더블베드를 택하는 편이 낫다 싶었다. 그렇게 하나씩 구색이 갖추어져 갔다.





간밤에 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꿈은 몽십야처럼 스산한 기운을 풍기는 것으로, 얼굴조차 모를 마르고 안경 쓴 남자의 뒤를 따라 바람이 섯도는 어두운 대숲에 들어섰다. 하늘은 자줏빛이었고 내 손엔 온기가 도는 팥떡이 들려 있었다. 그가 어두운 길목을 향해 손을 내밀 때, 차마 들어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문득 알람에 정신을 차렸다.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바나나 하나를 삼킨 후 엄마의 재촉과 함께 문을 나서니 세상이 꼭 그 대숲마냥 어두웠다. 찰기 없이 고요한 녹색 먹빛을 뚫고 달리던 차는 이윽고 공항버스 뒤켠에 섰다. 첫 차에 짐을 싣고 내다보는 창밖 풍경은 그 어떤 것보다도 짜릿했다. 여행에서 가장 섹시한 순간을 고르라면 하나, 이륙하는 순간 최고점을 달리는 비행기의 가속도가 견갑골을 덮칠 때, 둘, 공항 버스에 갓 올라 차창을 넘겨다보는 이 때를 들겠다.

머릿속에 온갖 상념이 스쳤다. 그 중 제일번은 역시나: '아, 선생님께 메일 안 드렸는데. 전날 분석한 RT값의 그래프가 앵글 60도에서 얼마의 비율을 두고...' 이때- 모든 여행자를 수호하는 세인트 크리스토퍼께서 초자아의 입을 빌어 자비롭게 말씀하셨다. 이제 그만 닥쳐요. 

...그렇다,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정말로.  

잠이 제대로 들 리 없었다. 깜박 깨어나니 버스는 이미 인천공항 진입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익숙해진 출국 수속을 하나하나 밟으며 생각해 보니 마침 그 날이 J오빠의 근무일이었다. 대한항공 쪽으로 가서 인사라도 할까 했는데, 게이트가 너무 많아 결국 그만두었다. 뭐니뭐니해도 여행의 시작이므로 고픈 속은 사치를 좀 부려 스무디킹 패션프루츠로 달랬다.




<JAL 747-200의 기내식. 밥은 차고 계란말이는 짰다. 그리고 쁘띠첼의 압박.
역시 기내식은 태평양을 건너야 한다.>






<간사이 국제공항의 천정. 구조가 오밀조밀 특이해서 찍어보았다.>



비행기는 순조롭게 날아, 예정 시각 열 시 반에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세관을 통과하자 우리는 여행지에 도착한 여행자 특유의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자, 뭐부터 하지, 일단 스룻토 패스부터 끊어야겠는데, 지도는 어디서 받지? 영어는 통할까? 우왕좌왕 헤매다 패스와 지도를 챙겨 오사카 시영 지하철에 오른 게 열한 시.




<간사이 국제선에서 기타 전철 및 사철로 갈아타는 대합실의 입구. 여기까지 오는 데 꽤 바둥바둥했다.>



지금도 조금 아쉬운 것 중 하나인데, 방값이 저렴한 데를 고른다고 고른 게 타니마치 욘초메였다. 그떈 오사카의 지리 정보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니 마냥 싼 게 좋았다. 낯선 곳에서 훅 끼치는 더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지하철을 갈아타는 데는 상당한 심력이 소모된다는 사실은 실전에 처해서야 깨닫게 된다. 미도스지센에서 츄오센으로 환승하는 길목은 신당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는 길의 두 배쯤 되는 듯싶었다. 히라가나 정도만 읽으시는 엄마는 만면에 꿋꿋이 미소를 띤 채 무거운 짐을 끌며들며 따라오는 수밖에 없었는데, 앞장서서 걸으면서도 죄송하기 그지없었다. 아 씨. 3천 엔쯤 더 내고 그냥 난바에 묵을 걸. 그러나 훗날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오사카 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출발일 아침마저 오롯이 관광에 투자할 수 있었으니, 과히 나쁘진 않았다.

보라색 타니마치센의 욘초메 역에 내리니 무려 토요코인이 셋. 헷갈려서 엉뚱한 숙소로 갈 뻔했다. 땀에 절은 상태로 더듬더듬 일본어로 카운터 담당에게 짐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참고로 토요코인은 네 시 전엔 체크인이 안 된다). 이후 영어는 일절 통하지 않아, 모든 것은 후유소요의 초급 일본어로 해결하게 된다. 전자사전도 가져오지 않아, 필요한 단어는 외우고 있는 노랫가사들을 떠올려 가며 해결했다. 다행스럽게도 내 생각보다 나는 일본어를 잘했다.-_-; 혹은 일본인들의 이해력이 빨랐든가. 그땐 대처하느라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뭔가 안쓰러운 추억이다. 



<sub, semi-express 나라 행. 출발 지점이라 사람이 없다. 나라까지는 약 50분쯤 걸렸다.>


3시에 긴테츠 나라 역에 도착했다. 배가 몹시 고파, 허둥대다 역 구내에서 초밥 도시락을 샀다. 나라 공원에 들어서면 매점도 없을 뿐더러 사슴들이 밥을 빼앗아 먹는다는 말 때문이었는데 웬걸, 역을 나서니 편안히 앉아 식사할 수 있는 카페나 식당이 늘어서 있지 않은가. 성급함을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어, 일단 나라 공원으로 들어섰다.




<진주조갯빛 하늘과 추녀의 실루엣.>


하늘은 우아한 연잿빛의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한여름의 햇빛이 쨍쨍 내리덮치지 않는 것을 감사하며, 휴게소 의자에 앉아 무릎 위 도시락을 펼쳐들었다. 위 풍경은 앉은 자리에서 도시락을 다 먹어치우고 한가로운 기분으로 카메라를 들어 찍은 것이다. 비록 사진엔 없지만 건물의 규모가 크고 부지 자체가 넓게 펼쳐져 있어 장쾌한 느낌을 주었다. 타월처럼 두껍게 감겨드는 따스한 공기 사이로 관광객들이 도란도란 얘기를 하거나 웃으며 지나갔다.   




<왼편, 고후쿠지 절의 난엔도로 들어서는 가족.
많은 일본인들이 오 엔짜리 동전을 던져 넣거나 향을 피우고 있었다.
손가락 자국은 못 본 것으로 부탁합니다.>

배부른 채 느긋하게 하늘을 감상하고 있으니 지친 마음에도 슬슬 흥이 나기 시작했다. 오층탑을 향해 걸음을 옮기다, 우리가 본 것은-




<오 예.>


카잔차키스는 '사슴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자부심에 찬 모습으로 행인들에게 다가와 속눈썹이 긴 눈으로 바라본다' 라고 적고 있었지만, 그 사실이 백 년쯤 흐른 후에도 문자 그대로 변함없을 줄은 몰랐다. 곁에 쪼그려 앉아 살살 쓰다듬어도 졸린 듯 미동도 않는 야생 사슴의 존재는, 경이 그 자체였다.





<늘어진 사슴더미. 아마도 그늘을 찾아 다같이 누운 것 같다.
날도 더운데 누가 좀 만진다고 일일이 반응하기엔 귀찮지 않았을까.>


사슴을 쓰다듬으며 마냥 신난 나와는 달리 엄마는 어떤 사슴이든 반경 일 미터 내로 접근하길 거부하셨다. 그 모습에 자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공원 내로 들어섰다.



<고후쿠지 절. 규모가 크고 고아한 맛을 풍긴다. 훗날 방문한 교토의 절과는 또 다른 무게감이 있었다.>




<경내에서 고요한 눈으로 돌아보던 사슴.
정적인 신비감에 더불어 먹이(혹은 먹이를 주는 인간)에 서슴없이 다가드는 천진함이라니,
과연 영물이다.>



<둘레둘레하며 먹이(혹은 먹잇감)을 노리는 영물의 뒷꽁지.>


이 영물은 곳곳에 포진하여 끊임없이 사람들의 손을 노렸다. 위와 같은 좌판 가게에선 '시카센베이', 속칭 사슴떡밥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열 개들이가 150엔이었다. 당장 혹해서 지갑을 열려는 나를 엄마가 황급히 말렸다. "저거 샀다가 온 동네 사슴이 다 몰려들려구! 저 떡밥이 무려 이천 원씩 하는데 열 개밖에 안 들어 있고! 넙죽넙죽 다 받아먹고 끝나지!" ... 구름떼처럼 몰려들게 하려고 사는 건데요. 마음 같아선 호쾌하게 삼사십 개쯤 사서 뿌리며 한 무리 낚고 싶었건만 행여라도 그리 했다간 엄마는 절대 내 반경 10미터 안에 들어오려 하지 않으실 것이고, 핸드폰도 없는 모녀는 서로 길을 잃을 것이고, 그 뒷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할 수 없을 테니, 그만두었다. 아아, 지금도 아쉽다.



<행상에 걸려 있던 깃발. 아주 오래 전 그림책에 나와 있던 '여름' 편에서 이 깃발을 본 적 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그림책에서 얻었던 무수한 이미지는 결국 '왜색'풍 삽화였던 것이다.
이후 전철에서 그리운 옛 이미지들을 다시 보게 된다.
달리 생각하면 간사이 쪽의 분위기가 옛스러운 걸지도 모르겠다.> 


슬슬 발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라 지도를 보면 거리를 대강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날의 목표는 맨 끝점의 카스가타이샤, 즉 카스가 대사(大寺)였다. 첫날부터 조금 무리했다 싶지만 이와 같은 무리는 앞으로의 일정에도 도를 넘어 계속된다.



<가는 길목마다 이끼로 덮인 석등이 늘어서 있었다.
총 2천 개쯤 된다고 하는데, 정확한 갯수는 셀 때마다 매번 달라진다고 한다.
석등마다 불이 밝혀지면 장관이겠다.>


만요슈 식물원이 있었지만 500엔 앞에 망설이다 포기했다. 일본 전통의 시가 만요슈에 등장하는 식물만 전부 모아 놓은 정원이라고 했다. 열린 문으로 산나리며 원추리, 신선한 여름꽃이 들여다보여 한 순간 머뭇거렸지만, 돈도 돈이거니와- 시간은 이미 네 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다리도 버텨 줄지 알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카스가타이샤를 향해 계속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카스가타이샤 앞, 도오리. 가까이 서면 사람이 콩알만치 작아 보인다.>



엄마는 너무 지쳐, 타이샤 앞 행상에 앉아 쉬어 가겠다고 하셨다. 혼자 도오리를 지나 계속 올라갔다. 왼편에 물이 솟는 작은 샘이 있었는데, 물을 떠다 손을 씻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새파란 대나무 시렁에 놓인 함석 국자를 들어 손을 적시니 차가운 기운이 올라왔다.



<사슴 모형을 들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신사의 사제들. 마츠리라도 준비하려는 걸까.>


계단을 따라, 이끼 낀 석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종종 햇살이 비추어 석등을 진한 녹색으로 물들였다. 몇몇 사람들이 계단참에 붙어 이름을 적은 종이를 석등의 창 구멍에 정성스레 바르고 있었다. 아마 시주를 하고 등불을 올리는 신자가 아닐까 싶었다. 오늘 밤이든 혹은 언제든, 바른 종이 안켠에선 누군가의 염원을 담은 불이 밤새도록 타겠지.




<신사의 정문. 오직 붉은 빛으로 선명한 단청이 이채롭다.>


어렵사리 본당에 들어섰다 싶었는데, 내부를 구경하려면 500엔을 더 내란다. 나 안해. 그리고 다리 아파. 시모가모 진쟈는 공짜라는데. 지금 생각해도 딱히 아깝진 않다. 밖에서 맴돌다, 다른 일본인들이 하듯 오 엔을 나무통에 던지고 박수를 두 번 친 다음 어설프게 고개를 숙였다. 내 곁에 있던 머리를 길게 기른 중년 아주머니는 정성스런 동작으로 합장을 하고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절했다.



<신사에서 팔고 있는 각종 부적.
이 날은 그냥 지나쳤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카스가타이샤의 부적들이 가장 예뻤다.
그리고 가장 비쌌다.-_->

알록달록하고 오종종한 부적에 혹해 클로즈샷을 찍고 있자니 날카로운 일본어가 정수리에 꽂혔다. "사진 찍으시면 안됩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이마에 등꽃을 드리운 무녀가 좌판 너머에서 나를 한껏 째려보고 있었다. 쫄아서 물러나다, 바로 옆의 오미쿠지를 발견했다. 오오 이것은 플래시로도 해봤던 일본 전통의 점복이 아니던가.



<무서워서 감히 사진 찍어도 되겠냐는 말도 못하고, 먼 곳에서 줌인으로 초상권을 침해한 사진.
주홍색에 백색이 어우러진 무녀복, 이마에 단 등꽃까지, 여기의 오미쿠지가 제일 그럴싸했다.
그리고 가장 비쌌다.-_->

"오미쿠지 오네가이시마스" 를 외치고 육각형 통을 흔들었다. 뽑았더니 나무패에 한자로 19라고 적혀 있었다. 조심스레 받아든 무녀가 장을 뒤지더니 한 장을 뽑아 내밀었다. 영어도 있었던 것 같은데 건네받은 건 일본어 쪽지였다. 점괘는 末吉. 좋은 건가? 일단 흉이 아니라 길에 속하니 만족하고 접어 품에 넣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대강- 오늘의 기분으로 살아가면 언제든 즐겁지 아니하리이까. 기타 남쪽과 동쪽이 길하다, 잃어버린 물건은 손 닿는 데 있다, 싸우면 손쉽게 이긴다, 등이었다. 훗날 키요미즈데라에서 백 엔에 한번 더 오미쿠지를 본다. 과연 어느 쪽의 신력이 더 좋을 것인가. 오미쿠지 배틀! 결과는 이후 이어질 여행기에서.




<길목마다 신록이 아낌없이 푸르렀다.>

푸르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에 반해, 다리 아픈 것도 잊고 슬슬 돌아다녔다.





<파란 하늘이 보여 얼른 찍어 보았다. 한여름날을 상징하는 한 폭의 그림 같다.>




<이것이야말로 코모레비,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일까.
짙은 붉은색이 오후의 빛에 도드라져, 에워싼 신록과 더불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본당으로 돌아 나서는 길. 꽤 높이 올라갔던 터라 이쯤에서 다리가 몹시 저려왔다.>


내려오자 엄마가 서성이고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물이라도 마실까 하고 가방을 여니 사슴 몇 마리가 기세 좋게 다가와 주둥이를 들이밀었다고 한다. 떨쳐내도 또다시 주머니에 뭐 있나, 코끝으로 뒤지는 통에 기겁을 하셔서 못 앉아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꾸 웃음이 나오는지. 목도 마르고 기력도 떨어져 말차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려고 하자, 엄마가 역시 황급히 말렸다. 사슴들이 덤벼들어 널름널름 다 뺏어 먹을 거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냥 걷고만 있어도 저절로 곁에 와서 허리춤에 부비는데, 하물며 아이스크림을 든 타겟이 된다면... 조금 두려워졌다. 콘을 건네받자마자 발을 재게 놀려 사슴 무리에서 멀리 떨어졌는데, 다행히 습격하지는 않고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으음.
말차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걷는 맛은 각별했다.

돌아가는 길은 과연 멀었다. 거쳐온 루트는 대략 나라 역사박물관을 지나, 왼편으로 도다이지 절을 두고 직진해서 바로 카스가타이샤까지다. 그 길을 되짚어 역까지 가자니 눈 앞이 캄캄해서, 적절히 빠져나와 버스를 잡아탔다. 시간은 다섯 시로 슬슬 공원도 닫을 무렵이었다. 건너편 도다이지 절 앞, 너른 풀밭엔 사슴들이 저녁밥 먹기 전에 회의라도 하려는 양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정말이지 물 반 고기 반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정류장 앞에 늘어선 일본 택시들. 전통 가옥 모양의 식당이며 행상들.
마구 뛰어가 버스를 탔는데 시 버스가 아니라서 돈을 더 물어야 했다. 젠장.>




<긴테츠 나라 선은 이처럼 푸른 풀밭을 끼고 달린다. 풀빛 푸르기가 윈도우즈 XP 같다.
마치 계란과 사이다가 필요할 것만 같은 풍경.>


정신없이 맨 앞의 특급을 잡아 탔는데, 어쩐지 너무 좌석이 고급이다. 문득 스룻토 패스로 통하지 않는 '일부' 선이라는 데 생각이 미쳐, 마침 들어오던 차장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추가요금을 지불해야 한단다. 우리가 난감해 하니 돈을 받지 않고 다음 역에서 내려 갈아타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저 푸른 풀밭은 잘못 탔다고 발을 동동 구르던 와중에 건졌던 사진이다.





<하늘을 끼고 찍은 일본 역사. 나쁘게 말하면 촌스럽고 좋게 말하면 정취 있다.
대성리의 추억이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갈아타서 자리에 앉자 비로소 한시름 놓았다. 이거야 원, 오전부터 밀린 잠이 생각났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대로 어떻게 내일의 교토 여행을 할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내일 일. 일단 오사카에 도착하면 저녁부터 먹으리라. 그렇게 나라, 혹은 사슴 공원의 추억은 막을 내렸다. 전혀 역사적이지 않은 관광 루트에 소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나라에 갈 일이 있다면 니시노쿄부터 찬찬히 돌아볼 수 있을까. 오히려 그때야말로 좀더 사슴을 품에 안아볼 수 있으려나.

다음 편은 내일이라기보단- 오사카에서 묵은 그날 저녁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사진을 정리하고 여기까지 한달음에 써내려가는 데 무려 세 시간 반이 걸렸다. 내일은 좀더 빨리 걸린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