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피험자로서 다른 팀의 실험을 도왔다. 랩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웹베이스로 제작된 영어학습 프로그램을 테스트하는 일이었는데, 40개 가량의 단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매칭하며 습득한 후 나중에 학습 여부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뜻-단어 매칭, 그림-단어 매칭, 음성-단어 매칭 등을 거듭할수록 단어에 해당된 게이지가 차는데, 다 차면 그 단어는 사라지고 새로운 단어가 제시된다. 단어는 어쩐지 낯이 익은 것이 한지 5.5에서 출제한 것 같았다 (웃음) 반응 스피드에 따라 "Incredible" "perfect" "good" 등등이 뜨는데 처음엔 참으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3일 연속 테스트였는데 2회차를 테스트하고 나니 패턴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전의 정신물리학 피험 경험을 통해 자가체감을 시도한 바, 약 200-300ms 내에 반응하면 Incredible이 뜨면서 일련의 고정된 매칭 순서가 이어진다. 그렇게 300ms 내 매칭을 반복하면 단어 하나를 최단시간에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다. 그 결과 학습 여부와는 상관없이 2회차에서 총 RT를 17분이나 감소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건 분명 잔차에 해당할 제 3의 요인으로서 실험의 타당도를 낮추는 동시에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었다. 3회차까지 하고 나니 알고리즘이 눈에 보여서 아예 플로우차트로 그린 후 문제점도 함께 적었다. 실험자인 오빠에게 보여 주자 놀라워하면서 복사를 해 갔다. 아마 현재 진행 중인 실험을 당장 수정하기는 어렵겠지만(구동하는 데 뜨는 에러 고치는 것만도 일이었을 테니) 앞으로의 실험 재구성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대신 컴교과 애들이 좀더 고생하겠지. 코딩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2.
학교 도서관은 놀기엔 좋아도 공부하기엔 슈레기다. 일단 통계 관련 서적에 할당된 란이 서가 두어 칸뿐이고, 그 서가에서 SPSS 전용이 10권 남짓이며, 그 책들 전부 RM ANOVA mixed model에 대해선 챕터 할당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다. 충격과 공포다. 그 시간에 차라리 교보에 가거나 구글링을 더 할 걸 그랬다. 이래서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유학을 가야 한다. 반 펠트 3층의 한가운데 서서 서쪽 끝(혹은 동쪽 끝)을 지그시 노려보면 소실점이 보였단 말이다. 여하튼, RM ANOVA의 user-friendly method조차 생략하는 형편에 syntax 짜는 법이야 오죽하겠어. 옆자리 친구가 내 인상쓰는 모습을 보더니 자기가 쓰던 책을 내밀었다. 오오. 고마워. 누군가에게 뭔가 신세지는 데 서툰 나로서는 참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결국 syntax는 나만의 상상력과 SPSS 자체 내 도움말에 힘입어 짤 수밖에 없다는 걸 재확인하긴 했지만.
3.
<개성의 탄생>을 읽고 토론했다. 사실 기존의 실라버스에 올라 있는 매트 리들리나 스티븐 핑커, 도킨스 등이야 그 유명세를 감안하더라도, 2006년에 출간된 이 '무명' 단행본이야말로 정말 제대로 건진 대어였다. 토론을 바탕한 서평은 언제나 심리학과 커뮤니티에 정리해서 올린다. 지금까지 총 10개의 서평을 올렸는데, 한 시간 남짓 잡아 잡스럽게 적어 내려간 것들이라 다른 곳에다는 올리지 않았다. 나중에 정리할 여유가 생긴다면 이곳에도 업로드할지 모르겠다. 이제 2학기 실라버스도 슬슬 짤 준비를 해야겠다. 1학기의 핵심이 본성(유전) 대 양육(환경)이었고, 방학 때는 폭넓은 분야 접근이었으니, 2학기엔 본격 인지심리학/행동유전학/신경과학으로 재편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