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토론에서, 지능과 지능지수를 구분하여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지능이라는 '개념'을 양적인 척도로 '환산'한 것이 지능지수이므로 둘은 전혀 별개의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량화 과정에서의 신뢰도나 타당도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정량화된 결과물이 본래의 개념을 압도하여 사회 내에서 인습적인 방식으로 사용될 때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간과하면 안 된다- 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다.
...이것은 몸-정신 문제body-mind problem을 연상시킨다: 비정량화된 개념 (혹은 대상) 대 정량화된 결과물 간의 괴리는 심리학이라는 장대한 변주곡의 주제나 다름없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질적인 속성을 양적인 속성으로 전환하는 것인데- 물론 앞에서 말했듯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원하는 속성을 취할 수 있다. 다만 분석 과정에서 채택된 속성이 본래의 개념(혹은 대상)을 정확히 반영하는가 여부가 문제가 될 뿐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정량화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함이므로, 정량화하는 입장에서는 지능지수의 활용 여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이때 지능지수가 지능이라는 개념을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는가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된다. 이런 경우, 비정량화된 개념과 정량화된 결과물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생겨나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에 따르면, 일부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동일률에 의거한다면 질적인 속성은 결국 질적인 속성이다. 질적인 속성이 일정한 과정을 거쳐 다른 무엇으로 변환된다면, 그것은 (모순율을 일부 적용해) 더이상 '질적인 속성'일 수 없으므로 본래 지니고 있던 '질적인 속성'으로서의 온전한 가치 역시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양적/혹은 기타 다른 형태로의 변환은 늘 불완전한 반영을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불완전한 반영을 반복적으로 거듭하는 이유는 그것이 지적인 목적이나 현실적인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일단 정량화된 결과물은 언제나, 다방면에 걸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뇌내 신경전달물질의 양과 SSRI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 혹은 중앙집권 국가의 형성과 도량형 제정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
다시 지능의 문제로 돌아간다면, 특정 지능지수가 지능이라는 속성을 완전히 반영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의 접근 방식이 반영하지 못하는 지능의 특정 요소를 다른 방식을 통해 반영할 수는 있다. 다양한 지능검사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바로 그러한 점에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도 의의를 지닌다. 지금까지의 지능지수에서 배제되었던 요소- 신체지능, 음악지능, 인성지능(섈로비의 EQ 역시 같은 맥락으로 취급하고 싶다) 등을 지능의 영역 안에 포함시킴으로써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 것이다.
위 다양한 지능의 개념들이 얼마나 유의미한 정량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무정형의 음악지능 혹은 인성지능을 측정한다 해도 지능이란 개념의 전부를 완벽하게 반영할 수 없을 것이란 점은 확실하다. 개념의 모든 측면을 반영하는 완벽한 정량화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물론 끊임없이 시도하고 추구할 수 있다, 우리는 브루노와 다윈과 윌슨의 피를 이은 과학도이니까!) 괴리 자체를 제거하는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지능의 정량화는 불완전하되 여전히 '쓸모는 있다'. 그러한 결과물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가장 좋을 것인가는 가치판단의 문제이며, 이 문제는 엄격하게 따져 실상 다른 맥락에서 생각해야 옳을 것이다. 과학자로서의 관심사에 가장 가까운 것은 보다 완전에 가까운 정량화와 그것을 위한 방법적 체계일 것이며, 정량화된 결과물이 사회 속에서 일으키는 현상 혹은 담론에 대한 해석은 인문학자의 몫일 것이다. 나아가 해석을 바탕으로 직접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은 또 다른 역할에 종사하는 이들의 몫일 것이다. 물론 우리의 인지 기능을 좀더 폭넓게 사용하는 데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과학도가 인문학적 시각을 지니는 것, 더 나아가 실세계의 현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 아니한가.
이것은 간만에 재미있는 논쟁을 했던 날 다른 블로그에 정리해 적었던 글을 옮겨온 것이다. 누가 보느냐/보지 않느냐에 따라 글의 느낌 자체가 많이 달라진다. 쓸 때는 그러했는데, 읽을 때는 어떨지 모르겠다. 긴 글을 쓸 때 타인의 관점이나 코멘트가 궁금하면 이곳에 적고, 순수하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면 그쪽에 적는다. 그쪽의 글을 이곳에 옮겨왔다는 것은 이 블로그에 들러 글을 읽을 타인들의 견해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지각하는 것과 같은 차이를 느낄까?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그 블로그에 글을 잘 적지 않는다. 안타깝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