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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 이야기

요즘은 식사를 마치면 저도 모르게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는 자신을 발견한다. 오렌지색 등을 켜고 밥이며 국을 데워, 책을 곁에 끼고 맛있게 식사를 한다. 느긋하게 후식까지 가져다 놓고 책의 말미를 마저 읽은 후- 반찬은 뚜껑을 닫거나 원래의 통에 쏟아넣고 착착 쌓아 냉장고에 넣는다. 먹을 수 없는 것은 나누어서 밖의 쓰레기통에 버린다. 밥그릇에는 물을 담아 불려 놓고, 기름은 한번 닦아낸 다음 세제로 거품을 낸다. 그릇을 전부 씻고 난 다음 마지막으로 물 튀긴 자국을 행주로 닦아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불을 끄고 전자레인지의 코드는 뽑고, 의자는 집어넣는다.

사실, 게으른 성격이었다고 생각한다(지금도 상당부분 그렇다). 어릴 때부터 억지로 이것저것 시키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고 주변은 엉망진창, 먼지구덩이. 그래서 자발적으로 기쁘게 집안의 잡일을 하게 된 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아마 대학에 와서 많은 것들을 혼자서도 잘 해나갈 수 있게 된 시점이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새롭게 깨달은 이유가 있었다.

여러 가지 잡일은 매일의 삶을 꾸리는 수단이다. 빨래를 하지 않으면 더러운 옷을 입어야 하고,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다음 식사를 할 수가 없다. 지저분한 방 속에 들어 있으면 마음까지 어수선해진다. 일상을 좀더 업그레이드하고 싶다면 소소한 잡일을 제때제때 해치워 주어야 한다. 그릇을 윤기나게 깨끗이 닦아 놓고 갓 빨아 보송보송한 스웨터를 입고 외출하는 것과, 설거지거리를 쌓아둔 채 그저께도 입었던 땀에 절은 셔츠를 입고 나가는 것은 분명코 다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일상 속에서 산다. 살면서 매일매일의 풍경과, 몸담는 공간에 영향을 받는다. 자신이 속한 공간을 조금 더 깨끗하게 가꾸는 일은 자신을 가꾸는 일과 같다. 작은 것부터 잘 가다듬어 두면 스스로가 좀더 똑부러지고 명료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 좀더 바른 자세로 걷고, 좀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책임감의 문제다. 얼마나 자신을 잘 돌보고 있는가- 에 대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간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은 더 큰 일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다. 청소, 세탁, 요리, 설거지는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자신을,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책임지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것은 남녀 모두에게 해당된다.

내가 먹은 식사를 설거지하는 것은, 내 일이다. 늘 지내는 공간을 청소하는 것도 자신의 일이다. 그래서 설거지를 하고 정전기 걸레로 방을 닦으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책상을 정돈하고 먼지를 털어내는 것은 뿌듯해서 좋다. 날씨 좋은 날 따스한 창가에 앉아 빨래를 개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게으른 남자를 위해 이 모든 일들을 해줄 의향은 절대로 없다는 것. 함께하는 공간은 함께 책임지는 게 당연지사. 자기 앞가림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애는 결혼상대로 절대- 사절. 배틀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응할 용의 있다. 이쪽도 과거 한 게으름 했던 타입이니, 언제건 자유자재. 아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