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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왜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 매료되었는가




내킬 때까지 안 보고 아껴두었던 하루히 13, 14화를 어젯밤에 연달아 보았다. 장황하게 펼쳐진 이야기의 가닥들을 단 2화 안에 끝맺을 수 있을까 내심 궁금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간만에 정말이지 상쾌한 기분으로 잠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의 전 화를 하나로 엮는 핵심은, 이 마지막 두 화에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왜 이 작품이 '세계대세'라고 불릴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왜 하루히에 매료되었을까, 에 관해 계속 생각해 왔다(영상보다는 활자에 익숙해서, 꾸준히 봐서 1쿨 전부 끝낸 애니는 거의 하루히가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머릿속엔 떠도는 가설 뿐이고, 전자를 증명하기엔 표집대상의 범위 설정 및 자료 수집에 한계가 있기도 하거니와 아니메계에 조예가 깊지도 않아 그만두기로 했다. 다만 후자의 경우라면 세심한 자기 관찰을 통해 얻어질 수 있으니, 가능한 쪽에 포커스를 맞춰 보려 한다. 그저 개인적 의견이지만 몇몇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기쁘겠다.

왜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 매료되었을까?

나는 무엇보다 그 핵심 포인트를, 스즈미야 하루히라는 메인 캐릭터의 성격에서 찾고 싶다.

하루히는 강렬하다. 이 강렬함은 류우구 레나나 인테그라 헬싱이 보여주는 강렬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바라며 전력질주하고, 마침내 손에 넣고 마는 대담함이 하루히가 지닌 강렬한 캐릭터성의 핵심이다. 강한 히로인은 하루히 이전에도 수시로 있어 왔다. 페이트의 세이버도 강하고 총몽의 갈리도 강하다. 그러나 그녀들의 강함은 어디까지나 육체적인 강함으로 한정된다. 갈리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자신을 견디지 못해 무너진다. 세이버는 강한 의지와 기술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터인 시로에게 의지하며 봉사한다.

그러나 하루히는 다르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을 위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캐릭터이다. 그녀는 작중에서 누구에게도 직접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하루히에게 선택당한 대상인 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쿈과 함께 있기를 원하지만, 그에게 기대려 하지는 않는다. 바라는 것은 혼자 분투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기다리기만 하는 여자가 아니라고', 하루히는 13화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힘으로 초능력자, 우주인, 미래인을 끌어당기고 그들은 하루히의 소망을 위해 알게 모르게 노력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사일런트 마이노리티'에서 권력이란, '자신과 타인 모두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게 할 수 있는 힘, 능력, 가능성, 자유 등을 가지는 것'이 아닐지 독자에게 묻는다. 그녀가 공부, 운동, 노래 모두 만능이라는 사실은 차치해두고라도- 하루히는 이런 의미의 '권력'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캐릭터이다. 그것이 그녀의 힘이고, 강렬함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존재에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질투라기보단 선망이다. 13화에서 코이즈미는 인간 원리에 대해 설명한다. 우주는 인간이 발견했기에 비로소 그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즉, 포인트는 외계가 아닌 우리 자신에게 맞춰져야 한다. 그리고 그 인간 원리를 충실히 구현하는 자가 바로 스즈미야 하루히이다. 그것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로. 이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란 중요하다. 그녀가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임을 처음부터 충실히 깨닫고 있는 캐릭터로 등장했다면, 그저 제멋대로 날뛰는 히로인에 불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3화에서 하루히는 쿈에게 이야기한다. '야구장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 사람들이 일본 전체의 고작 1/2000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놀랐어. 난 그때까지 내가 특별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란 걸 그때 깨달은 거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학교 일도, 어떤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인걸. 갑자기 내 주위의 세계가 빛이 바래버린 것처럼 느껴졌어.'

어릴 적에는 누구나 자신을 가장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다가, 시간이 가고 더 많은 것들과 접할수록 그런 생각은 점차 줄어들어 사라져 간다. 난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수많은 개체들 중 하나일 뿐이란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정체성이 최초로 위협받을 때 느끼는 불안감을, 하루히는 저 독백으로 대변하고 있다(그리고 이 독백을 듣는 순간, 비로소 나는 그녀를 진정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 역시 우리들과 같은 불안과 초조를 내면에 품고 있지만, 그녀는 울지 않는다. 포기하지도 않는다. 보다 재미있고, 보다 특별한 사람을 찾으려 끊임없이 애쓸 뿐이다. 그러나 만일 하루히가 자신이 신급 존재임을 깨닫는다면 그것으로 그녀의 불안도, 노력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들 역시 하루히처럼 자기 자신과, 자신에게 숨겨진 잠재력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숨겨진 힘에 대한 무지는 작중의 하루히와 평범한 우리들을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하루히와 우리는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무지를 공유하는 것이다. 선망의 대상과 자신이 아주 조금이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상큼한 일인가.

하루히가 속해 있는 시간과 공간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누가 뭐래도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은 청춘의 추억이다. 그 시절이 얼마나 혹독하고 힘들었든간에, 돌이켜 생각하는 것만으로 미소가 떠오르게 만드는 추억. 그래, 그때의 나는 참 분방했었고 제멋대로였고 감정적이었지. 대부분의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지을 것이다.

그녀는 질풍노도 시기에 처한 고등학생답게 온몸으로 불안정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세상은 너무나 따분하고, 하고 싶은 건 잡힐 듯 잡히지 않아 짜증이 난다. 좋아하는 남자는 자신을 영 바라봐 주지 않는 듯하고, 세상은 너무나 커다란데 나는 이토록 작아서 불안하다. 어른이 되어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 시기를 온몸으로 겪어냈을 것이다. 제멋대로 달려나가는 하루히의 모습은 추억 속 자기 자신의 모습이며, 한번쯤 다시 돌아가 보고 싶은 꿈 같은 아련함을 불러일으킨다. 사춘기의 불안정함과 욕망을 지향하는 파워는 한데 뒤섞여, 하루히라는 캐릭터성의 정점을 이룬다.

지금까지 하루히의 개성에 대해 장황히 설명했지만, 물론 그녀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 성립이 될 리가 없다.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네 명의 캐릭터는 그녀의 개성을 받쳐 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각자가 상당히 개성적이기도 하다. 익센트릭한 하루히의 맞상대인 쿈은 스스로도 아주 평범한 캐릭터임을 끊임없이 주장한다. 그는 평범한 덕분에, 하루히의 옆에 있으면 오히려 눈에 더 띈다(그러나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꿋꿋한 성격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고 본다). 어딘가 고상한 도련님 같은 느낌을 풍기는 중재자 역의 코이즈미와, 귀여운 누님 타입의 미쿠루, 그리고 이지적이고 과묵한 캐릭터 유키는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잘 맞는다. 하루히의 행동에 보여주는 반응이 제각기 다 다른 것도 지켜보면 꽤나 재미있다. 보완하면서 동시에 개성을 발휘하게끔 만드는 것은 쉽지 않지만, 하루히의 경우 그것을 참 잘 해낸 듯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 함께 만들어 나가는 동아리 활동은,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 중 가장 로망급이다(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러니, SOS단의 평범한 일상 풍경은 그 자체로 로망이다. 매일 얼굴 보는 동아리의 부원들 역시 그 자체로 특별하고, 세상에 오직 한 사람밖에 없는 것 같았던 느낌을 혹시 기억하는가. 밴드부 같은 경우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것도 곡의 주역이 되는 보컬이라면. 문화제에서 마이크를 잡고 열창하는 하루히, 참으로 멋지지 아니하였는가(적어도 내겐 그랬다. 가창력만 된다면 내세에서는 절대적으로 보컬을 하고 싶다! ...현세에서는 락도 발라드로 만들어 버리니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꼽고 싶은 것은 인물들간에 생겨나는 감정선이다. 관계의 감정선은 인물 고유의 매력과 더불어 이야기를 계속 보고 싶게 만드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귀여우면서도 감정이 다 드러나는(때때로 의도치 않은 도발이 돼버려 하루히의 심지를 돋구는) 미쿠루짱의 모습은 전형적인 소녀만화의 히로인답다. 나가토는 과묵한 와중 은근히 쿈에 대한 호감을 표시한다. 안경 없는 게 더 예쁘다고 말했던 한 마디에 안경 속성을 해제시켜 버린다거나, '나라는 개체 역시 네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어' 라는 말이라거나, 모두 쿈에 대한 나가토의 은근한 감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다.

하루히는, 말하자면, 소위 츤데레(최근에 습득한 용어이다. 보리태니커 사전의 설명을 빌리면: 평소에는 냉정하게 굴던 캐릭터가 마음을 연 상대에게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 한다)의 정수다.14화의 보이 밋 걸 장면. 웅장한 관현악과 더불어 거인의 발밑에서 도망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았다. 그리고 전혀 예상못한 순간 이어지는 키스씬도. 과연 그것은 이제까지 있어 왔던 모든 츤데레를 뛰어넘는 대미의 클라이막스라 할 만하여, 이후의 완결까지 아주 순조로운 하강곡선을 그릴 수 있었다. 이러한 감정선의 처리는 깔끔한 결말을 만드는 데 큰 일조를 한다(쿈이 외친 '난 포니테일 모에야!' 라는 한 마디에 바로 다음날 머리를 묶고 오는 하루히의 마지막 츤데레 한 방은 서비스다). 무엇보다 가장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기까지 이어지는 모든 관계의 감정선이 결코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건은 사건대로, 관계는 관계대로 차분히 조금씩 진행되어 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산들바람처럼 쿨하다.

압축하면- 하루히는 삼박자를 모두 훌륭하게 갖춘 애니메이션이다. 하루히라는 캐릭터의 성향(성격 및 선망을 유발하는 요소와의 공유)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되, 달랑 혼자만이라면 어딘가 부족한 그녀를 나머지 캐릭터들이 밸런스 맞게 보완해 주면서, 인물들간의 감정선 또한 스토리의 맥을 지나치게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흥미를 유발하는, 중용의 묘를 지키고 있다는 것.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 매료된 이유는 이것 때문이라고, 혼자만의 과감한 결론을 내려 본다.



P.s 8월호 뉴타입. 살까. 학교 도서관에도, 재도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