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유난히 남중고도가 높아서, 한낮의 태양은 둥근 공처럼 아슬아슬하게 하늘의 꼭대기에 걸려 있다. 저무는 시간도 늦다. 고개를 뒤로 젖히지 않아도 눈부시게 선명한 세상. 사람도 버스도, 버스 안의 사람들도 하나같이 한가롭고 너그럽다. 비현실적인 빛에 잠긴 거리를 걸으며, 아주 가끔씩 이곳이 현실임을 생각한다. 요즘의 나는 모든 마음과 생각의 무게를 놓아 버리고 다만 이렇게 상냥한 꿈 속을 떠돌고 있을 뿐이다.
UBC에서 그랜빌, 그랜빌/펜더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버너비로 돌아오는 여정. 벨르 앤 세바스티안의 노래는 비오는 날, 맑은 날 모두 잘 어울린다. 내려서 바라본 하늘은 옅은 황금색이 섞인 백색이었다. 파르스름한 양털구름과 길게 펼쳐진 마천루의 지평선. 길가에 뜨락에 핀 들꽃을 스치는 산들바람. 귓가에 음악이 있어 모든 것이 이제 완전해졌다.
한 뼘 깊이의 안식 속에서 신과 믿음- 그리고 그외 풀리지 않은 채 영원히 순환할 많은 것들에 대해 질문한다. 물론 그 과정이 언제나 기쁜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달콤한 슬픔이 차오르는 고통에 울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을 갖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책을, 몰입을 버리고 대신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 버릴 수 없었던 것을 버리고 그 이상의 가치를 얻을 준비가 되었다.
2004. 8. 16
초월주의의 영향은 중학교 때 흡입했던 소로우 덕분인 것 같다.
UBC에서 그랜빌, 그랜빌/펜더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버너비로 돌아오는 여정. 벨르 앤 세바스티안의 노래는 비오는 날, 맑은 날 모두 잘 어울린다. 내려서 바라본 하늘은 옅은 황금색이 섞인 백색이었다. 파르스름한 양털구름과 길게 펼쳐진 마천루의 지평선. 길가에 뜨락에 핀 들꽃을 스치는 산들바람. 귓가에 음악이 있어 모든 것이 이제 완전해졌다.
한 뼘 깊이의 안식 속에서 신과 믿음- 그리고 그외 풀리지 않은 채 영원히 순환할 많은 것들에 대해 질문한다. 물론 그 과정이 언제나 기쁜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달콤한 슬픔이 차오르는 고통에 울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을 갖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책을, 몰입을 버리고 대신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 버릴 수 없었던 것을 버리고 그 이상의 가치를 얻을 준비가 되었다.
2004. 8. 16
초월주의의 영향은 중학교 때 흡입했던 소로우 덕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