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비가 내린 다음날은 맑았다. 거리엔 촉촉함을 머금은 바람이 부드러웠다. 이래서야 봄 날씨네, 생각하며 어슬렁어슬렁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외투 대신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나와, 휘몰아치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반 펠트 앞 경사진 잔디밭에 드러누웠다. 검은 흙이 언뜻언뜻 보이는 녹색 잔디에서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비스듬히 몸을 덮은 햇살은 기분 좋게 따사로웠다. 구름이 몇 점, 어디론가 경쾌하게 미끄러져 간다. 뜯어먹다 놓친 솜사탕 같다.
새파란 하늘에 비친 수많은 가지들은 선명한 회백색이었다. 가는 꼭대기가 바람에 차락였다. 생명력이 넘치는 여름의 나무는 누구의 눈에도 아름답지만, 잎 없는 가지도 그것대로 시원한 매력이 있다. 겨울의 딸들. 거칠 것 없이 홀가분한 기백. 어릴 적 어느 정월에 아빠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연을 날리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날의 방패연은 눈 깜짝할 사이에 쑥쑥 올라가, 우표보다도 더 작아져 흔들거렸다. 날선 바람이 상쾌하게 볼을 스쳤다. 마른 가지 끄트머리에 저도 모르게 까치며 까치밥을 그려보는 건 아마도 한국인의 심사일 터이다. 문화유산답사기를 몇 장 넘겨보다 배에 얹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토록 한가해서 아름다운 시간. 감은 눈가에 늦은 오후의 빛이 일렁였다.
새파란 하늘에 비친 수많은 가지들은 선명한 회백색이었다. 가는 꼭대기가 바람에 차락였다. 생명력이 넘치는 여름의 나무는 누구의 눈에도 아름답지만, 잎 없는 가지도 그것대로 시원한 매력이 있다. 겨울의 딸들. 거칠 것 없이 홀가분한 기백. 어릴 적 어느 정월에 아빠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연을 날리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날의 방패연은 눈 깜짝할 사이에 쑥쑥 올라가, 우표보다도 더 작아져 흔들거렸다. 날선 바람이 상쾌하게 볼을 스쳤다. 마른 가지 끄트머리에 저도 모르게 까치며 까치밥을 그려보는 건 아마도 한국인의 심사일 터이다. 문화유산답사기를 몇 장 넘겨보다 배에 얹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토록 한가해서 아름다운 시간. 감은 눈가에 늦은 오후의 빛이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