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헤모스 (2)
베헤모스 (3)
베헤모스 (4)
우리는 떠났다. 나는 베헤모스의 어깨에 탔고, 추종자들은 찌그러진 두 대의 차를 타고 내가 생전 보지 못한 흙길을 지나쳐 가는 그를 따랐다.
아내는 잘 있니? 베헤모스가 물었다.
거의 거짓말을 할 뻔했다. 수년간의 비지니스 업계 경력 앞에선 그게 자연스러웠다. 50년도 더 된 나쁜 소식을 전하고 싶진 않았지만,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결혼 생활은 금세 끝났어. 솔직히 말하면 거의 다 내 잘못이었지.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은 그녀가 다시 결혼했고, 캘리포니아로 떠나 아이 두엇을 두고 있다는 얘기였어. 그게 벌써 30년 전 일이야.”
베헤모스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말이 없었다. 레비아탄에 대한 그의 사랑은 결코 식지 않았고,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사랑은 자연의 법칙과도 같았다. 나는 어떤 인간이 그토록 강한 감정을 지닐 수 있을지 궁금해졌고… 아마 우리 중 누군가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라면.
미안해. 마침내 베헤모스가 대답했고, 다시는 벨린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기엔 그 모든 이야기가 지나치게 혼란스러운 듯했다.
추종자들은 이따금씩 우리 옆으로 와 빵 덩어리며 과일 바구니를 베헤모스의 넓은 등 위로 던져 올리곤 했다. 늙은 남자는 많이 먹지 않는다. 우리가 북으로 향하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질 무렵, 녀석들은 내게 담요를 가져다 주었다. 이 나라에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이토록이나 넓게 뻗어 있는 게 경이로웠다. 베헤모스는 주요 도시로 향하는 길은 거의 건드리지 않았고, 오직 몇 개의 조그만 마을만을 지나쳤다. 아무도 우릴 보지 못했다. 미국에서 이건 순전한 기적이었다. 가끔씩 난, 그가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발 밑의 땅을 우그러뜨리는지 궁금해졌다. 만일 그의 거대한 크기가 중력에 맞추어 지구 자체의 모양조차 변화시킬 수 있다면 말이다.
베헤모스는 걸을 때마다 점점 커져서, 마침내 양 가장자리를 내려다볼 때마다 현기증이 밀려왔다.
애팔래치아 산맥에 도달할 즈음 추종자들은 더이상 쫓아오지 못했다. 우린 그들을 뒤에 남기고 떠났다. 녀석들은 경적을 빵빵거리고 미친 듯이 손을 흔들어댔다. 베헤모스는 그저 그들을 지나쳐 나아갔다.
그때쯤 베헤모스의 체고는 거의 50피트에 달했고, 그 무시무시한 무게 아래 모든 논리는 무너졌다. 그는 제곱의 법칙에 저항해 (느낄 순 없었지만, 그는 내딛을 수 있는 한 멀리 내딛었던 것 같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강과 협곡을 걸어서 넘었고 부드러운 땅에 갱도처럼 깊은 족적을 남겼다. 이후 노스 다코타에서 캐나다로 넘어가며 우린 눈에 띌 만한 어떤 거주지도 발견하지 못했다.
베헤모스는 멈추고 싶어하지 않았고, 곧 음식이 다 떨어졌다. 지금 나이의 나는 많이 먹지 않았으며, 다만 비가 오면 받아 마셨다. 물은 내 입속으로 떨어졌지만 베헤모스를 건드리진 않았다- 마치 유리 표면을 흘러내리듯, 물은 그의 살갖 위 몇 인치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불가침의 힘이 바닷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그를 지켜주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그가 보여준 영상을 기억할 때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빗물에 작용하는 힘은 자기 의지로 바닷물에 잠기는 데 대해선 내성이 없는 듯 싶었다. 나는 목마를 때만 잠깐잠깐씩 비가 오는 걸 금방 눈치챘다. 굳이 베헤모스에게 물어보진 않았다. 곧 숨을 쉴 때마다 쌕쌕거리는 소리가 났고 끈질긴 기침이 이어졌다. 시야 가장자리가 빨갛게 보일 때쯤 되어 나는 배고픔을 호소했다. 그 즉시 베헤모스의 어깨 주름 틈바구니에 두텁게 쌓인 고대의 흙에서, 작은 갈색 버섯들이 자라나왔다. 그걸 한줌 가득 따서 먹었다. 버섯에서는 나무 향이 풍겼고, 어딘가 삶은 달걀 같은 맛이 났다.
셀 수 없는 날들의 여정 끝에 우리는 해변에 도달했다. 아마도 알래스카 어디쯤일 것이라 짐작되었다. 산이 바닷속으로 무너져 내리며 만을 이루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암회색의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퍼졌다. 이토록 시끄러운 동시에 고립된 장소는 일찍이 본 적 없었다.
또한 레비아탄에 비길 만한 그 무엇도, 일찍이 본 적 없었다.
베헤모스의 영상은 그녀의 크기에 대해선 아무것도 일러주지 않았다. 레비아탄은 화물열차만큼이나 길게 뻗어 있었다. 백 피트 가량 되는 길이만을 드러내 놓은 채 나머지는 차가운 바닷속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하나하나 노란 보석처럼 빛나는, 젖은 비늘을 번뜩이며, 얕은 물가에서 몸부림쳤다. 하얀 물새들이 끽끽거리며 레비아탄의 거대한 머리 주위를 선회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흰 물보라가 뿌려지며 검게 날이 선 바위들을 적셨다. 독한 소금내와 핏내가 풍겨왔다.
베헤모스는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점점 줄어들었다. 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의 어깨를 붙들어야 했다. 레비아탄은 금빛 수염이 난 머리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눈은 베헤모스만큼이나 컸지만 더 어둡고 짙었다. 그녀는 뭍에 더 다가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육지로 밀어올린 몸뚱어리 아래편에서, 하얗게 찢어진 너덜너덜한 상처가 보였다. 땅이 그녀를 상처내어 몸 속에 든 것들을 쏟아냈다. 그녀는 피로 젖은 길을 따라 기어나오고 있었다.
베헤모스는 몇 야드 직전에 멈추었다. 물이 그의 발 가장자리에 찰싹이자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기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는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안돼, 베헤모스, 그만.” 나는 그의 목덜미 늘어진 살갖을 쥐었다. “소용없을 거야.” 소금기 머금은 젖은 바람이 얼굴에 불어닥쳐 눈에 눈물이 괴었다.
베헤모스는 한 쌍의 이미지를 나란히 보여주었다. 예전에 보았던, 레비아탄이 사랑스럽게 그를 휘감고 있는 장면, 그리고 둘 모두 피와 고깃덩어리로 녹아내리는 장면을. 그는 그녀와 함께하고 싶어했다.
“제발, 베헤모스.” 나는 속삭였다.
레비아탄이 머리를 들고 한번 더 몸부림쳤다. 그녀는 우리 앞 십 피트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떨어뜨리며, 눈을 깜박이고 숨을 토해냈다. 거대한 턱이 바위투성이 바닷가에 떨어졌다. 대가리 뼈가 그 충격에 죽은 나무 쓰러지는 소리를 내며 산산이 쪼개졌다. 나는 베헤모스의 어깨를 꽉 쥐었다. 흰 기둥처럼 번뜩이는 레비아탄의 이빨이 땅에 부서졌다. 검은 모랫벌 웅덩이를 닮은 그녀의 칠흑 같은 눈이 열망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왼쪽 눈이 감기고, 곧 오른쪽이 감겼다. 그녀의 금빛 눈꺼풀이, 관 뚜껑이 닫히듯이, 돌이킬 길 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베헤모스가 울부짖었다. 도저히 묘사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귓가에 들려올 듯하다. 바다와 바위에 메아리치며. 온 하늘에 메아리치며.
레비아탄의 부서진 머리가 현실을 일깨웠다. 그들은 최후의 날 함께 얽히지 못할 것이었다. 그녀의 피는 길을 닦는 데 실패했다. 베헤모스가 죽길 바랐다면, 그저 물에 뛰어들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그의 피가 레비아탄의 피와 섞이는 걸 상상했다. 그 섞인 피는 어쩌면 둘 모두를 살려, 레비아탄의 찢어진 비늘과 그의 타들어간 발을 낫게 했을지 모른다. 나는 부활과, 그들의 기꺼운 희생으로 도래할, 오랫동안 기다려온 계시를 상상했다.
그러나 그날 더이상의 죽음은 없었고 부활도 없었다. 나는 왜 베헤모스가 그녀의 뒤를 따라 죽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의 마음엔 어떤 영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베헤모스는 무릎을 꿇고 줄어들어, 악어대가리를 땅에 뉘었다. 그는 레비아탄을 응시했다. 난 꺼끌꺼끌한 감촉을 느끼며 그의 머리를 쓸다가, 떨면서 젖은 기침을 했다. 물새들이 날아들어 레비아탄의 몸 위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돌렸다. “가자, 베헤모스.”
그는 일어나, 마지막으로 레비아탄의 부서진 육신을 쳐다보고, 온 길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의 베헤모스는, 알래스카로 향할 때의 거대한 크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작은 크기로 남아 있었다. 등에 타고 가는 내내 그는 내게 한 마디 말도 걸어오지 않았다.
마침내 숲에 도착했다. 베헤모스는 친숙한 흙바닥 속 우울로 침잠했다. 그는 여러 날 동안 내게 이미지를 보내지 않았다.
추종자들은 우리가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딘이 죽었다고 전해왔다. 어떤 죽음이었는진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언성을 높였고 내 곁을 조심조심 돌아다녔으며, 그만 가 보라는 말에 심히 안도한 듯 싶었다. 나는 그들에게 한 달 이내로 신선한 식료품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녀석들은 날 창립자로서 우러러보았고 (딘이 내게 남긴 최소한의 유산이었다), 거기에 복종했다. 호리호리한 소녀는 떠나기 전에 울면서 베헤모스의 주둥이에 입을 맞추었다.
그날 아침 나는 딘의 무덤으로 향했다. 추종자들은 커다란 바위*로 그의 무덤가를 표시해 놓았다. 나는 그가 정말 스스로 선택한 삶을 즐겼을지 궁금했다. 베헤모스가 한 번도 요구하지 않은 부름에 응하기 위해 기다린 삶. 사랑 외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던 존재를 위해 바쳐진 삶. 딘은 내게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그가 최후의 순간에도 그렇게 느꼈길 바란다.
나는 바위 곁에 앉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보려 했으나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딘의 헌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난 다른 사랑을 선택했고, 과연 더 현명한 결정을 했을진 알 수 없다고 해도, 선택은 내 것이었고 나는 그걸 받아들였다.
난 베헤모스의 둥지로 돌아갔다.
“베헤모스, 난 곧 죽을 거야. 느낌이야. 내가 있을 수 있는 한 여기 머물게.” 난 담요를 깔고 그의 옆구리에 기대 누웠다.
한밤중이었다. 기침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등과 콩팥이 쑤시고, 매 호흡마다 폐가 타들어가듯 아팠다. 숲에 머문다면 죽음은 보다 빨리 찾아오겠지만, 나는 늙었고 죽음보다 더 고약한 무엇을 상상할 수 있었다.
홀로 죽어가는 것.
베헤모스와 레비아탄을 지상에 보내어 미뤄진 계시를 기다리게 한 그 힘이, 어째서 그녀를 그토록 의미 없이 죽어가게 놔두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가르침을 주려는 의도였다면 대체 교훈은 무엇일까. 어쩌면 난 죽음에 이르러서야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라면, 적어도 그 질문이 나를 더이상 괴롭히지 않길 빈다.
내가 머물겠다고 말한 지 얼마쯤 후 베헤모스는 살짝 뒤척였다. 잠시 후 그는 내게 보여 주었다: 내가, 그에게 기대어, 잠든 그와 함께 잠드는 그림을.
“잘 자, 베헤모스.” 나는 말하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