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늦는 바람에 공연을 놓쳤다. 시간이 잔뜩 남아, 하릴없이 극장 뒤편으로 죽 이어진 길로 들어섰다. 시멘트로 바른 골목길을, 경사를 따라 느리게 걸어 올랐다. 날이 텁텁해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좁은 길은 사람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거칠게 지은 벽돌집과 쌓듯이 올린 축대에 기댄 창과 문틀. 하늘이 손에 닿을 듯 낮았고 공기에서는 말라 가는 빨래의 냄새가 났다. 가면 같은 가게로 가득한 대학로 뒷골목의 모퉁이에서도 누군가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비탈이 둥그렇게 갈라지며 손바닥만한 광장이 나왔다. 한 뙈기의 땅에 돌을 깔고 운동기구며 앉을 만한 것들을 몇 개 얹은 공간이었다. 까만 육면체 위에 앉았다. 덩굴장미가 제멋대로 자라 반쯤 칠이 지워진 붉은 축대를 가리웠다. 돌이끼 위에 흩어진 덜 마른 꽃잎들은 여전히 싱싱한 붉은 색이었다. 윗집에서 심은 능소화 무더기가 횟벽의 바랜 물자욱을 반쯤 덮은 채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나는 서울을 잘 모른다. 다닥다닥 붙은 집에서 살아 본 기억조차 없다. 그런데도 그건 익숙하고 조금쯤은 슬픈 풍경이었다. 좁은 길목에 내놓은 빨랫대에는 교복 몇 점이 걸려 있었다. 사내애의 것이었다. 얼굴 모르는 그애는 매일 아침마다 가방을 메고 그 교복을 입은 채 골목길을 달려 내려갔다가 느지막히 별을 이고 돌아올 것이다. 좁고 낡은, 축대를 끼고 선 오래된 돌집에 몸을 누이고 쉬기 위해. 나는 이럴 때마다 자끄 프레베르의 시가 자꾸 생각난다. 혹은 남신의주 봉방에서 딜옹배기를 끼고 홀로 손을 녹이던 백석이.
혜화. 문득 소리내어 이름을 불러 보았다. 누군가가 거기에 살고 있다. 줄무늬 교복과 미키마우스 셔츠의 주인일 남자 고등학생이. 그리고 그 아이의 가족이.
2.
한국의 여름. 날씨가 더워질수록 대기는 무거워진다. 끈적한 습기는 산 것의 호흡을 연상케 하고 열기는 그 체온을 닮았다. 아주 오래 된 올리파운트나 베헤모스처럼 한낮의 도시는 느리고 거친 숨을 쉬며 살아 있다. 거대한 동물로 화한 세계. 걷고 있으면, 거리에 가득 찬 습기와 열기를 통해 확장된 생명과 교감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내뿜는 생명의 징후들이 더 큰 가상의 생명과 한데 섞이는 감각은 외로움조차 잊게 한다. 체온처럼 따스한 공기 속에 조용히 앉아 있노라면 어디선가 고요한 즐거움이 찾아온다.
언제나 이 계절을 사랑하고 있다. 친절한 밤은 오늘도 내 이름모를 고독을 흔쾌히 그 어깨에 나누어 지고, 자줏빛 어둠을 재촉해 먼 길을 간다.
3.
매 순간마다 두려움과 사랑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무한히 벡터를 그리는 사랑으로 가득하다.
4.
사람에게는 제 나름의 격이 있다. 품위는 수련과 단련과 오랜 실천을 통해 천천히 만들어진다. 알고 있는 것을 행하고, 해야 할 것을 행하는 사람은 품위가 있다.
5.
여성의 마음을 흔드는 결정적인 요소는 다름아닌 남성의 연약함이다. 남성 특유의 연약함은 사랑과 경멸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연약함을 자각하지 못할수록, 그것을 감싼 자의식이 비대할수록, 자의식의 주인은 보다 비천해진다.
6.
고백을 받았다. 거절했다. 누군가가 슬퍼해야만 하는 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분명히 거절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때로 안 되는 건 그저 안 되는 것이다.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을 작년에서야 겨우 알았다. 누군가를 상처입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우유부단함은 때로 지독한 상처를 남긴다. 나는 조금 더 눈 앞의 두려움을 감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7.
내게 섬세한 면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미약하게나마 자신의 방식으로 신호를 보낸다. 내게도 조금은 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앞선 호감이 조용히 익도록 아궁이에 묻어둔 채, 상대의 방식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
소통이 고독을 완전히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소통하고 싶다. 나와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의 다름을 좀더 잘 알고 싶다. 그 사람 고유의 약함을 혹은 강함을 이해하고 싶다. 충동 혹은 당위가 내 선택을, 더 나아가 삶을 이끌어 지금 이 자리에 놓았다. 그러니 조금쯤 더 듣기 위해, 알기 위해 노력해도 괜찮겠지.
늦는 바람에 공연을 놓쳤다. 시간이 잔뜩 남아, 하릴없이 극장 뒤편으로 죽 이어진 길로 들어섰다. 시멘트로 바른 골목길을, 경사를 따라 느리게 걸어 올랐다. 날이 텁텁해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좁은 길은 사람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거칠게 지은 벽돌집과 쌓듯이 올린 축대에 기댄 창과 문틀. 하늘이 손에 닿을 듯 낮았고 공기에서는 말라 가는 빨래의 냄새가 났다. 가면 같은 가게로 가득한 대학로 뒷골목의 모퉁이에서도 누군가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비탈이 둥그렇게 갈라지며 손바닥만한 광장이 나왔다. 한 뙈기의 땅에 돌을 깔고 운동기구며 앉을 만한 것들을 몇 개 얹은 공간이었다. 까만 육면체 위에 앉았다. 덩굴장미가 제멋대로 자라 반쯤 칠이 지워진 붉은 축대를 가리웠다. 돌이끼 위에 흩어진 덜 마른 꽃잎들은 여전히 싱싱한 붉은 색이었다. 윗집에서 심은 능소화 무더기가 횟벽의 바랜 물자욱을 반쯤 덮은 채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나는 서울을 잘 모른다. 다닥다닥 붙은 집에서 살아 본 기억조차 없다. 그런데도 그건 익숙하고 조금쯤은 슬픈 풍경이었다. 좁은 길목에 내놓은 빨랫대에는 교복 몇 점이 걸려 있었다. 사내애의 것이었다. 얼굴 모르는 그애는 매일 아침마다 가방을 메고 그 교복을 입은 채 골목길을 달려 내려갔다가 느지막히 별을 이고 돌아올 것이다. 좁고 낡은, 축대를 끼고 선 오래된 돌집에 몸을 누이고 쉬기 위해. 나는 이럴 때마다 자끄 프레베르의 시가 자꾸 생각난다. 혹은 남신의주 봉방에서 딜옹배기를 끼고 홀로 손을 녹이던 백석이.
혜화. 문득 소리내어 이름을 불러 보았다. 누군가가 거기에 살고 있다. 줄무늬 교복과 미키마우스 셔츠의 주인일 남자 고등학생이. 그리고 그 아이의 가족이.
2.
한국의 여름. 날씨가 더워질수록 대기는 무거워진다. 끈적한 습기는 산 것의 호흡을 연상케 하고 열기는 그 체온을 닮았다. 아주 오래 된 올리파운트나 베헤모스처럼 한낮의 도시는 느리고 거친 숨을 쉬며 살아 있다. 거대한 동물로 화한 세계. 걷고 있으면, 거리에 가득 찬 습기와 열기를 통해 확장된 생명과 교감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내뿜는 생명의 징후들이 더 큰 가상의 생명과 한데 섞이는 감각은 외로움조차 잊게 한다. 체온처럼 따스한 공기 속에 조용히 앉아 있노라면 어디선가 고요한 즐거움이 찾아온다.
언제나 이 계절을 사랑하고 있다. 친절한 밤은 오늘도 내 이름모를 고독을 흔쾌히 그 어깨에 나누어 지고, 자줏빛 어둠을 재촉해 먼 길을 간다.
3.
매 순간마다 두려움과 사랑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무한히 벡터를 그리는 사랑으로 가득하다.
4.
사람에게는 제 나름의 격이 있다. 품위는 수련과 단련과 오랜 실천을 통해 천천히 만들어진다. 알고 있는 것을 행하고, 해야 할 것을 행하는 사람은 품위가 있다.
5.
여성의 마음을 흔드는 결정적인 요소는 다름아닌 남성의 연약함이다. 남성 특유의 연약함은 사랑과 경멸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연약함을 자각하지 못할수록, 그것을 감싼 자의식이 비대할수록, 자의식의 주인은 보다 비천해진다.
6.
고백을 받았다. 거절했다. 누군가가 슬퍼해야만 하는 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분명히 거절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때로 안 되는 건 그저 안 되는 것이다.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을 작년에서야 겨우 알았다. 누군가를 상처입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우유부단함은 때로 지독한 상처를 남긴다. 나는 조금 더 눈 앞의 두려움을 감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7.
내게 섬세한 면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미약하게나마 자신의 방식으로 신호를 보낸다. 내게도 조금은 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앞선 호감이 조용히 익도록 아궁이에 묻어둔 채, 상대의 방식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
소통이 고독을 완전히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소통하고 싶다. 나와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의 다름을 좀더 잘 알고 싶다. 그 사람 고유의 약함을 혹은 강함을 이해하고 싶다. 충동 혹은 당위가 내 선택을, 더 나아가 삶을 이끌어 지금 이 자리에 놓았다. 그러니 조금쯤 더 듣기 위해, 알기 위해 노력해도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