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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The Scent of Copper Pennies- By Tim Pratt (3) -完-


The Scent of Copper Pennies- By Tim Pratt (1)

The Scent of Copper Pennies- By Tim Pratt (2)



당신은 그 여자를 만날 뻔 했어요. 그 파티에서. 사랑에 빠졌을 테고, 같이 멀리 떠났을 테고어느 날 밤 중국 음식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그녀가 길을 건널 무렵 모퉁이에서 취한 차가 달려들었어요그녀가 죽는 걸 보았겠죠. 바로 거기 아스팔트 위, 코앞에서.” 목소리에 담긴 팽팽한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순간에 처해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뭔가 일어나요. 차가 그녀를 치기 직전에.” 그녀는 좀더 슬프고 체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구리 동전의 냄새와 타는 모터 오일의 냄새가 퍼지며 종 소리와 함께 수많은 길이 펼쳐져요. 죽음을 목전에 둔 그녀에게. 물론 그 길 중 하나를 골랐겠죠? 죽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을 테니. 그래서 그 여자는, 죽는 대신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을 거예요. 결국 당신은 그녀가 자신을 내버리고 떠났다고 믿기에 이르러요. 사라지는 것 따위 보지 못했던 거라고. 당신은 냉소적으로 변해, 세상에서 물러나 더욱 깊숙이 틀어박히겠죠.” 그녀는 웃었다. 가혹하게. 소리가 빈 건물에 메아리쳐 울렸다. “물론 추측에 불과해요. 세계엔 돌아간 적 없어요. 갈림길이 시작된 바로 그 곳 말이에요. 두렵거든요.”

  그녀는 내 얼굴을 보았다. “, 마이클. 정말 많은 곳에 있었어요. 내가 죽지 않는 곳, 우리가 늘 함께 있을 수 있는 곳을 향해. 우리의 이야기가 영원히 행복한 결말로 끝날 수 있다 여겨지는 곳에. 수많은 세계들 중 그런 세계가 반드시 있다고 확신해요- 하나쯤은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나 정작 거기에 내 자린 없었어요. 그곳에서 당신은 이미 '메릴리'를 만났고, 그녀의 자리에 '내'가 끼어들 순 없었어요. 그런 행복한 세계에서조차 서로가 많이 달랐고, 원치 않은 임신이 일어났고, 새 일자리가 생겼고, 우정이 깨졌고…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을 세계는 아니었어요. 그 차가 없었더라면, 정말로… 뭐든 간에 갈림길의 신, 예측 가능한 양자 사상(事象), 뭐든지간에 그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쨌든 끊임없이 찾아내며 돌아다녔어요. 우리가 만나지 않았을 법한, 내가 당신을 찾아내 처음부터 시작할 만한 세계를 찾아서. 그런 대부분의 세계에서 당신은 대신 샬롯을 만났고 보통은 헤어졌어요. 그래서 여기 내가 있죠. 실패할 걸 뻔히 알면서도 또다시 시도하는.”

  난 그녀를 믿었다. 진정 믿었다- 흡사 신앙처럼 그녀를 필요로 했다. “늦지 않았어요.” 난 입을 열었다. “우린-.”

  당신은 내가 누군지조차 모르고 있어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라는 메릴리는 당신이 사랑했을 메릴리는 아니에요. 너무 많이 봤어요. 난 현실과 지나치게 소원해져 버렸어요아니면 수많은 현실 속에 뒤엉켜 버렸든가.”

  이번만큼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요.” 내가 말했다. “잃어버린 걸 찾아 나설 필요 없어요, 새로워질 수 있으니까.”

  메릴리는 날 바라보았다. 잿빛 눈에 가득히 눈물이 고인 채 그녀는 웃었다. 정말이지 슬픈 미소였다. “아마도요. 일이 그토록 쉬웠다면. 하지만 난 계속 움직여야만 해요, 마이클.”

  무슨 소리예요? 뭘 찾아 헤매려고요? 절대 찾지 못할-.”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탐색이 아녜요- 그건 의지를 이어나가는 방편일 뿐이에요. 움직여야만 해요. 어쩔 수가 없어. 차에 치였을 때 난 죽었어야 했어요, 마이클. 운명이나 숙명에 대한 물음이 아니에요. 내가 살아 있고 건강한 세계는 얼마든지 있어요. 그러나 죽음도 마찬가지로 일어났어야 할 일이었어요- 수많은 잠재적 결과물 중 하나로서. 그런데 살아났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생존은 우주에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을 남겼어요. 내가 살아 움직이는 매일, 우주는 약간씩 어긋나고 조금씩 더 위험해져요. 이제 올바른 순간에,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죽을 수가 없어요. 더 이상. 그래도 변함없이 난 죽어야 하고, 우주는 날 죽임으로써 최선으로 나아가요. 때때로 걱정돼요. 내가 다세계에서 뭔가 하고 미리 짜여진 온갖 것들에 균열을 낼 때 그렇지만 갈림길들을 헤매 돌아다니는 내 흐름이 또한 정해진 세상의 일부에요, 아닌가요? 내가 원해서 선택한 바는 아녜요.”

  움직여 가길 선택했잖아요,” 난 말했다.

  메릴리의 표정이 완강해지며, 입꼬리가 내려갔다. “차의 그릴이 정면으로 달려올 때 용기를 발휘해 봐요. 또 다른 길이 열렸을 때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해 봐요. 당신은 못 할 걸요.” 그녀는 시선을 돌렸지만, 쓰라리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날 이해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러리란 걸 잊었네요.”

  메릴리-“

  검게 입어요. 보이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삼가듯. 어떻게 보면 날 뒤쫓는 그건, 유령이에요. 내 죽음의 유령, 순간순간 현실로 닥쳐오는 허깨비 가능성. 북이나 가면으로 쫓아버릴 수도 없고, 지금까진 숨을 수조차 없었어요. 당신을 찾아내 나와 함께 데려가, 세계와 세계 사이로 이끌어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 한 명이 아녜요. 샬롯이 당신을 너무 망쳤어요. 내겐 보여요. 이미 다른 곳에서 상처입은 마이클들을 여러 번 만났었죠. 결코 날 믿을 수 없을 거에요.”

  기회를 줘요,” 난 애원했다.

  너무 늦었어요.” 그녀는 거리로 발을 내딛었다.

  차가 오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어떻게 그걸 놓칠 수 있었는지 잘은 모른다. 낡고 말라빠진 겨자색의 코르베어는, 메릴리가 거리에 내려서는 순간 멈춤 신호를 지나쳐 그녀에게 부딪쳐갔다.

  난 타는 모터 오일의 냄새를 맡았다. 자연스럽게. 일 페니, 낡고 더러운 구리동전의 냄새를.

  어딘가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교회 종소리가 어긋난 시각을 알렸다.

  코르베어가 커브를 그리며 빗나가 멎었다. 사나운 눈에 밧줄 같은 뻗청머리를 한 늙은 히피였다. “치었어!” 그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자랑스러운 건지 아연실색한 건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치었다고!”

   난 보았다. 메릴리는 없었다. 시체도, 흔적도. 난 히피가 비틀비틀 거리를 돌아다니는 걸 내버려두었다. 그는 시체를 찾으려고 세워 놓은 차 아래를 흘겨다보았다. 난 느리게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방인들로 가득한 집의 셋방으로. 그 집이 내 삶의 은유라 생각지 않으려 애썼다.

  오늘 밤 짐을 챙겼다. 난 스스로를 갈림길의 신에게 바친다. 지금부터 채플 힐로 돌아간다. 그곳엔 어쩌면 메릴리가 살고 있을지 모른다. 날 만난 적도 없고 죽었던 적도 없는 그녀가. 난 메릴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가 정녕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녀가 나와 운명지어졌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다만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그런 시간이, 장소가있으리라 믿을 뿐이다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 가야 할 방향이자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곳.

  지금껏 그래왔듯 내버려두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 번역후기 -


시리즈로는 두번째로군요..^^ 이 사람 단편들이 서두엔 다소 감을 잡기 어려운데, 읽어나가다 보면 흐트러진 내용이 순식간에 한데 모여 마지막에 던지는 임팩트가 크죠. 베헤모스 다음으로, 다음에 번역할 The Fallen and the Muse of the Street와 우열을 가리기 어렵도록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다층세계를 무한히 방랑하는 여자, 그리고 어떤 세계에선 그녀의 연인일 수 있었던 남자. 베헤모스의 말미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만남, 미묘한 균열... 개인적으로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