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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象

자연스러움

벛꽃이 바람에 흔들리듯,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아버지가 주무시다 심하게 기침을 한다. 끊어질 듯 이어져 귀를 가렵게 하더니, 부스스 몸을 일으켜 가래를 토해 내고 다시 잠이 든다. 꼬박 몇 년에 걸쳐, 손톱이 자라나듯 새벽의 기침 소리도 차츰 길어져 가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대학을 들어오기 전 양쪽 발목은 천연 고무로 만든 스프링보다도 생생했었다. 코 옆에 뚜렷이 보이는 모공의 개수가 해마다 늘어 가고, 무리하게 신은 힐에 어느샌가 넷째발톱은 멍이 들었다. 해돌이를 반복하며 닳고, 줄어들어 간다. 생명이. 생명을 담은 그릇이. 느리지만 꾸밈없는 자세로 시간은 발목을 부러뜨리고, 피부를 상하게 하며, 굳은살을 일그러뜨린다.

어떤 책의 구절은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어떤 사람들은 언젠가 사라져야 한다.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아득히, 피상적일 미래를 떠올린다. 파르스름한 슬픔이 고인다. 어떤 슬픔은 삶에 뿌리박은 기근氣根과도 같다. 살아 있다는 건 소멸되는 것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슬픔을 전제로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예정된 소멸. 사랑해 마지않는 자신의 소멸.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삶.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언제부턴가 벛꽃을 꺾지 않게 되었다. 흐드러지게 피어 날리는 꽃잎은 그래도 눈부셨다. 아주 오래 전 어느 가을, 센노 리큐는 마당을 쓸고 있었다고 한다. 가지를 흔들어 낙엽을 떨구는 그 심정을, 가을의 초입에 서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