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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 조모임이 미뤄졌다. 컴퓨터를 켜놓고 멍하니 있다가 문득 대화로그를 틀었다. 6월부터의 기록이었는데, 6개월도 채 못 된 시간에 한 사람에게 세 번이나 쓸쓸하다, 는 요지의 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말을 터놓는 사람이 많을 리 없지만, 역시 지나치게 잦았다. 보통 밖에서 사람을 대할 땐 쓸쓸하다거나 외롭다거나 하는 말을 안 하고 지낼 뿐더러 친한 사람 앞에서도 외롭다는 하소연은 하지 않으며 살아 왔는데.

문득 대화로그 아래 창이 불쑥 올라왔다. 독일에 있는 친구가 엠에센으로 말을 걸어온 것이다. 평소에 자주 만나지 않아도 끄덕없었고, 자기 비참함이며 슬픔을 아무렇게나 풀어놓는 녀석도 아니었는데, 오늘은 좀 달랐다. 그나마 있는 한국인 몇 명이 생각도 없고 왜 거기까지 갔는지도 모르는, 의지도 열정도 없는 비지떡 같은 애들이라 어울려 보려다 지쳤단다. 기숙사에 동양인도 하나 없어서 답답한데 쓸쓸했단다. 참 뭐라 말을 하기 어려웠다. 존경할 가치가 있는 사람 찾아나서기도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느니 힘을 그러모아 고독에 맞서라- 고 격려하고 싶었지만, 미국에서의 나날을 떠올리니 차마 그렇게만은 말할 수 없었다. 말 한 마디 안 통하는 타지에서 밀려드는 고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쓰고 무겁다. 놀 것도 볼 거리도 많았던 미국의 캠퍼스와, 저녁 여섯 시면 도시의 모든 불이 꺼지고 침묵에 잠기는 독일의 기숙사는 완연히 다르다. 몸의 과로가 병을 불러오듯 마음의 과로는 영혼을 좀먹는다. 의미 없는 소통이라도 곁에 두는 편이 오래 건강하게 버티기엔 낫지 않을까.

대화를 마치고 생각했다. 올해 가을은 다들 유난히 바쁘고 외롭구나. 대학에서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은 취업 준비하러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든지, 독일이나 미국으로 떠나 버렸다. 그나마 남은 사람들도 각자의 세계에 파고들고, 개중 두엇은 가을바람처럼 꼿꼿하게 날이 섰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포도 익듯 부풀어오르는 쓸쓸함에 몸부림치면서도 책을 놓을 형편이 못 된다. 알 수 없는 미래가 겨울처럼 시나브로 찾아들어, 외로울수록 더욱 필사적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계절. 다들 한창 젊다. 젊어서 쓸쓸하구나.

'사회 나가면 인간관계도 다 경제적인 걸로 환원되고, 가까운 사람의 장례를 치르면 결국 갈 땐 혼자라는 걸 알게 되고.' 오라버니가 지나가듯 한 말이었다. 그게 진실이겠지. 진실을 대할 땐 정직해야 한다. 삶은 혼자 사는 것, 혼자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것. 사람은 별처럼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새 사람은 결코 옛날과 같지 않다. 홀로 남겨진 자신을 몇 번이고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공부가 외로워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을 때마다 옛 추억을 되새긴다. 한창 연애를 하고 애인을 몇이나 두고 지낼 때도 외로움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다. 아무리 사랑을 받아도 받는 것만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결국 한 치도 성장하지 못했다.

고독에 맞서며 사람은 자란다. 견딜수록 마음의 폭도 넓어진다는 그 말을 믿는다. 쓸쓸해도 책을 놓지 않고 이대로 나아가, 내년 이맘때는 그런 말도 입에 좀 덜 담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사지 달린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실밥 터진 꾸리 아닌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오롯이 서서 인내하고, 인내한 만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길. 그래도 역시, 몇 안 되는 학교에 남은 사람들이, 연락이 닿는 사람들이, 내겐 정말로 소중하기 그지없다. 거기 그렇게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고독을 이기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녀는 결국 마음을 더 굳게 먹고 홀로 지내기로 결심했단다. 공부를 하러 갔으니 공부만 하겠다고. 강한 사람에겐 강한 생활이 약이 된다. 선택이 그녀를 강하게 하길, 부디 고독을 약으로 쓸 만큼 충분히 강하기를. 언제나 연락이 닿는 곳에 있을 테니까.



P.s. 능률과 외로움이 꼭 반비례하는 건 아닌갑다. 외려 정비례 관계일지도.